처음엔 정말 사소한 것들이 계속 헷갈렸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4층을 누르려다 손이 멈췄다.
4는 없고, 대신 3A가 있었다.
L층은 1층이었고, G는 또 다른 시작점처럼 보였다.
몇 번을 오르내려도 머릿속 층수는 맞지 않았다.
지금 내가 몇 층에 있는지보다,
이 나라가 층을 세는 방식이 더 궁금해졌다.
TRX쇼핑몰에서도 비슷했다.
유심을 샀던 곳을 다시 찾으려고
구글맵을 켜고 층수를 따라 움직였는데,
지도가 가리키는 위치와
내가 서 있는 층이 계속 어긋났다.
분명 맞게 온 것 같은데,
더딘가 한 박자씩 빗나가 있었다.
숫자는 같아 보여도 쓰임은 달랐다.
우리는 숫자를 정리와 효율의 언어로 쓰지만,
이곳에서는 숫자가 감정을 피해 가는 방식처럼 보였다.
불길하다고 여기는 숫자를 비켜 가고,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중간층을 만들고,
시작을 조금 다르게 정한다.
처음엔 비효율처럼 느껴졌다.
왜 이렇게 돌아갈까 싶었다.
그런데 그 돌아감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한 선택처럼 보였다.
효율보다 기분을 먼저 고려한 흔적 같았다.
표지판도 비슷했다.
방향은 분명 표시돼 있었지만,
늘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 박자 모자랐다.
외곽으로 갈수록
영어 표기는 줄어들고
말레이어가 기준이 된 이정표들이 늘어났다.
비상구와 출구 표시도
말레이어로만 적혀 있었다.
글자는 읽지 못했지만,
그림 덕분에 뜻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알 수는 있었지만,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자주 멈췄다.
지도를 다시 보고,
주변을 한 번 더 살피고,
방향을 천천히 맞췄다.
이 나라에서 길을 잃는다는 건
완전히 길을 잃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체계가 조금 느슨한 대신,
서둘러야 할 이유도 적었다.
우리는 점점
정확함보다 여유에 익숙해졌다.
빨리 찾는 것보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쪽으로 마음이 옮겨 갔다.
숫자와 표지판이 다르다는 건,
결국 이 나라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차이는
숫자나 표지판 말고,
사람들이 서고 움직이는 방향에서도
조용히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