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아이들은 어디서나 아이였다

by 앨리스킴


이 나라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자유분방해 보이거나,

유난히 얌전해 보이지는 않았다.


지하철역의 매끄러운 바닥에서도,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화려한 쇼핑몰 한복판에서도

아이들은 뛰다 멈추고,

뜬금없이 떼를 쓰고,

갑자기 울다가도 금세 웃었다.


국적이 달라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그냥 아이였다.

세상에 막 도착한 얼굴로.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였다.

우리가 먼저 올라타 목적지 버튼을 눌렀을 때,

곁에 서 있던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갑자기 떼를 쓰며 울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서 울음소리는 금세 부풀어 올랐다.

아이 엄마는 당황한 기색으로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아이를 달래느라 애를 썼다.


그제야 나는

아이의 시선이 머물던 곳을 알아차렸다.


버튼 하나.

아이에게는 그 순간, 세상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이 버튼을 ‘내가’ 눌러야 했다는 것.


그 나이의 아이에게

“내가 할래”는 고집이라기보다 연습에 가깝다.

세상을 자기 손으로 건너보는 연습.


내가 무심코 눌러버린 버튼 하나가

아이에게는 꽤 중요한 순서를 빼앗아버린 셈이었다.


나는 얼른 “쏘리.” 하고 웃으며

아이에게 버튼을 가리켰다.

이미 불이 들어와 있었지만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제 손가락을 꾹 눌렀다.


딸깍.

그 소리 하나로 울음은 멎었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었고

엘리베이터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장소가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아이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그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특별히 감동적인 일도 아니었고

유난히 귀여운 아이도 아니었다.

너무 익숙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장면.

아이도, 엄마도,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나 같은 사람도.


다른 게 있다면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속도였다.


한국이었다면

속으로 시계를 한 번쯤 봤을지도 모른다.

‘왜 애를 빨리 안 달래지’ 하면서.


그런데 이곳에서는

아이의 리듬이 끝날 때까지

잠깐 서 있어도 괜찮았다.





모스크 근처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보았다.


기도 시간이 시작되자

어른들은 조용히 자리를 지켰지만

아이들은 그 사이를 오가며

뛰고, 웃고, 장난을 쳤다.


그 누구도 아이를 나무라지 않았고

날 선 눈총도 없었다.

아이들을 어른의 시간에

억지로 맞추려 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그 자리에

그냥 있어도 되는 존재처럼 보였다.


그건 방임이라기보다

“아이란 원래 저런 속도로 자라는 존재”라는

조용한 동의에 가까웠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를 볼 때

어디에 있는지보다

어떤 리듬 안에 있는지를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어른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으면

아이의 울음이 조금은 다르게 들린다.


말레이시아의 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소한 버튼 하나로 나는,

타인의 시간을 조금 느리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