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영어는 같았고, 귀는 달랐다

by 앨리스킴


처음 KL에 와서, 카페부터 찾았다.

스타벅스가 눈에 띄길래

익숙하다는 이유로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들었고,

나도 이참에

영어회화 공부한 걸 써먹어 볼 기회라 여겼다.


여행 와서 “하우 머치?” 말고,

제대로 된 문장으로 주문해 보고 싶었던 거다.


다행히 주문하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었다.

속으로 연습한 문장을 되뇌며 직원에게 다가갔다.

혀를 최대한 꼬아가며 말했다.


“캐나이게런 아이스드 아메리카노 플리즈…”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통했구나 싶어 잠깐 안심했는데

이내 나를 보며 되물었다.


“호라이~?”


“… 왓?”


“호라이~?”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한다.

아, 답답. 도대체 뭐라는 거야?


조금 천천히 말해 달라고 했더니

그제야 들려왔다.


Hot or iced?”


아— 이제 알았다.

핫이냐 아이스드냐고 다시 묻는 거였다.


말레이시아식 영어 발음에서는

hot’이 거의 ‘홋’처럼 들리고,

거기에 ‘or iced’를 빠르게 붙이니

내 귀에는 ‘호라이’로 들린 거였다.




베이커리 카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쟁반에 빵을 담고 계산대에 섰는데

직원이 “홋?”이라고 했다.


내가 알던 그 ‘핫’이 아니라서,

나는 그걸 “컷?”으로 알아듣고 괜찮다고 했다.

빵을 잘라 주겠다는 줄 알았다.


‘이걸 굳이 잘라 주겠다고?’


내가 고른 빵은

굳이 자를 필요가 없어 보여서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그냥 넘겼다.


마침 같은 빵을 고른 사람이 있어 슬쩍 지켜봤다.

전자레인지에서 데워진 빵을 보고서야

그게 ‘cut’이 아니라 ‘hot’이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웜도 히트도 아닌, 또 그 ‘홋’.

헛—! 또 한 번 속은 셈이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유심 문제로 서비스 센터에 갔을 때였다.

직원들은 모두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묻자

담당 직원이 속사포처럼 말했다.


“에순에스.”


‘에순에스? SNS?’


잠깐 멍해졌다.


알고 보니

“as soon as possible”을 줄여 후루룩 말한 거였고,

내 귀에는 ‘에순에스’로 들린 거였다.


남편과 나는 서로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똑같은 영어인데, 나라를 건너면

이렇게 다르게 들릴 수 있구나 싶어서.


이건 ‘누가 맞고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도 그 나라의 리듬을 닮아 간다는 걸

그때 알았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영어에는

말레이어의 숨결이 묻어 있었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겪은 일들은

오해라기보다

조금 어긋난 박자 같은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휴대폰을 꺼내

AI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했다.


말레이어식 영어와 한국식 영어,

그리고 인공지능 영어가

한 문제를 두고 나란히 서 있던 그 순간이

묘하게 재미있었다.


소통은 꼭 말로만 하는 게 아니었다.

표정과 몸짓, 손짓으로도 충분했고,

미소 하나면 다 통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잘 못 알아들으면

말보다 먼저 표정을 살피고,

미소로 대신했다.


스타벅스 앞에서 “호라이?” 한마디로,

그날의 영어 수업은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