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한마디에 되살아난 ‘고마’라는 말
모임에 갔던 남편이 예상보다 빨리 돌아왔다.
“왜? 2차까지 하고 온다더니.”
“고마 왔어. 다들 피곤하대.”
(‘고마’는 경상도에서 ‘그냥’ 정도로 쓰는 말이다.)
기억 너머로 밀어두었던 ‘고마’라는 단어를
남편의 입에서 듣는 순간
열네 살,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던 한 조각이 다시 떠올랐다
깡촌 시골학교에서 도시 중학교로 막 전학 갔을 무렵,
학교 전체가 축제 준비로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반마다 포크댄스 연습하느라
운동장이 시끌벅적했다.
여중이라 남녀 역할을 나눠 마주 선 아이들은
경쾌한 왈츠에 맞춰 서툰 스텝을 밟느라
웃고 떠드는 소리가
꽃밭 울타리를 넘어 교실 안까지 전해졌다
내가 뒤늦게 합류하기에는
진도가 많이 나가 있었고,
이미 짝을 정해 손발을 맞춘 상황이라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교실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빈 교실에 남아
아이들 연습을 지켜보며
약간의 소외감과 부러움으로 운동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반 반장이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가지러 온 모양이었다.
뽀얀 피부에 곱슬한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누가 봐도 도시 소녀처럼 보이던 그 아이가
다정하게, 그것도 부드러운 서울말로 내게 말을 건넸다.
“넌 왜 안 나가고 교실에 있니?”
한창 운동장에 정신을 팔고 있던 내 입에서
얼떨결에
“고마~”
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고마’가 무슨 뜻이야?”
라고 되묻는 반장의 맑은 눈동자 앞에서
순간 아차 싶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새하얀 교복에 묻은 김치 국물 자국을
들켜버린 것처럼 낭패스러웠다.
대책 없이 툭 튀어나온 ‘고마’라는 말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고마’라고 대답한 그 순간,
시골에서 갓 전학 온 나에게는
감추고 싶던 촌스러움이 통째로 들통 나 버린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 ‘고마’라는 단어는
내 사전에서 영영 추방되었다.
하지만 사십 년이 훌쩍 지나
남편의 입을 통해 돌아온 그 말을 들으며,
세상이 무너질 것 같던 그때의 사춘기 소녀를 다시 만난 듯했다.
어른의 눈에는 고작 단어 하나일 뿐이지만,
아이의 세계에서는
그 단어 하나에
자신의 전부가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아주 작고 연약한 마음들이 숨어 있다.
어른이 된 우리가 그 사소한 머뭇거림을
조금 더 정중하게,
여유롭게 기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때 그 하얀 얼굴의 반장 아이는
기억조차 못 하겠지만,
지금 다시 묻는다면
나는 이제 웃으며 말할 수 있겠다.
“고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