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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미 Nov 22. 2021

엄마와의 연남동

사는 곳에서 별도의 환승을 하지 않아도 갈 수 있어, 홍대입구역을 유난히 자주 간다.

그중에서도 홍대 쪽 보다는 연남동 쪽. 출구로 나누자면 9번 출구 쪽이 아닌 3번 출구 방향으로 정말 많이도 다녔다. 적게 잡아도 50번은 넘게.

자주 들른 덕분에 연남동에 단골 가게들도 생겼고, 개인적인 공간이 보장되는 카페도 알고 있어, 이 시국 약속 장소로 더 선호하곤 했다.


"어디 다녀와?"

"연남동."

"연남동? 거기가 그렇게 좋아~~?"

한 두 번 물었다면 둔감한 나는 눈치채지 못했을 텐데, 벌써 다섯 번 정도 들은 질문이어서인지 모를 수 없었다.

"왜, 가보고 싶어? 같이 가볼래?"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우 난 너무 좋지~~"


생각보다 더 좋아하는 엄마를 보니 괜히 막막했다.

'그냥 밥집 있고, 카페 있고 그런 곳인데.. 별로 특별할 건 없는데..'

많고 많은 연남동 핫플 중 엄마와 함께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일지 고민했다.

엄마와의 연남동은 처음이라, 새삼스럽게 검색도 했다.


후보가 몇 군데 있었는데, 엄마의 점심메뉴와 겹치지 않는 곳으로 선택하기로 했다.

그날 점심 칼국수를 먹었다는 엄마의 말에 밀가루는 제외했다.

밥을 먹어야 한다면 생각나는 곳은 딱 한 곳.

나만 알고 싶은 집,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가도, 더 유명해져서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집이 연남동에 있었다.

내 지인이라면 대부분 한 번씩 나를 따라 가본 식당으로, 그들 모두가 굉장히 만족한 후 각자의 지인을 데려가는 단골로 거듭나는 그런 곳이다. 

가게의 홍보가 아니므로 굳이 상호명을 적지는 않을 테지만 음식은 첨부한다.

겹치지 않는 메뉴의 사진으로 골라봤는데, 저 모두는 사진당 2만 원이 넘지 않는 가격이다.

연남동이 아니라 동네 식당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가격에,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주시니 계속해서 찾지 않을 수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엄마 역시 이 식당을 굉장히 만족해하셨다.

단골 특전으로 제공받은 화이트 와인과 함께 주문한 요리를 아주 맛있게, 가뿐히 비워냈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다던 엄마는 음식이 나오자 배가 부른데 계속 들어간다는 말과 함께 다 먹을 때까지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내가 남긴 샐러드까지, 더 안 먹을 거면 엄마가 먹는다며 다 드셨다.

아주 뿌듯하고도 다행스러웠다.


곁들인 화이트 와인 덕분에 살짝 취기가 오른 엄마는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 

굳이 사장님께 다시 돌아가 한마디를 건넸다.

"식기들도 너~~ 무 이쁘고 음식도 너무 맛있어요! 행복한 식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식사 덕분에 한껏 기분이 업된 채로 연남동 거리를 걸었다.

식사를 일찍 한 덕분에 아직은 어두워지지 않은 거리는, 꽤나 추운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상쾌하게 느껴졌다.




다음 코스는 연남동의 소품샵들!

무언가를 사지 않아도 꼭 한 번씩 들러보게 되는 장소인 것 같다.

'소품샵'의 존재도 잘 모르는 엄마일 테니 한 번쯤 함께 가보면 좋을 것 같아, 카페를 향하는 길목에 있는 소품샵들을 방문했다.

"어머 너무 귀엽다!" "어머머"를 연발하는 엄마를 보니 함께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것들에 별 감흥이 없는 스타일이지만 나와는 달리 감성적인 우리 엄마는,

이런저런 소품들에 꽤나 오랜 시간 시선을 빼앗겼다.


그렇게 소품샵을 구경하며 거리를 걷다 보니 카페에 도착했다.

고민 끝에 카페는 엄마가 부담 없이 아주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으로 선택했다.

"여기 맞아? 남의 집 아니야..?"

"엘리베이터 문 딱 열리면 달라~"




남의 집, 혹은 남의 작업실 그 어디쯤의 분위기인 공간이 나오자 엄마는 만족했다.

'여기 너무 괜찮다~'를 연발하면서도 예약제로 운영하면 사람이 적을 것을 우려했다.

17시 오픈이라는 말에 귓속말로 '그렇게 하면 월세는 괜찮을까..?' 하며, 처음 보는 청년 사장님의 손익분기점을 걱정하는 오지랖을 보였다.

'누가 보면 우리 오빠가 하는 카페인 줄...?'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는 열심히 설명을 들은 후 묵직한 바디감의 드립 커피를 주문했고,

나는 시원한 밀크티를 주문했다.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은 엄마는 곳곳의 그림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는 평소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아주 많았는데, 이곳의 책상과 소품들에도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나중에 창이 큰 전원주택에 이런 일자 테이블을 두자"

"원목에 테이블이 좀 높았으면 좋겠다"

엄마와 나는 마치 내일 당장 테이블을 구매할 사람들처럼 디테일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쇼핑이 아닌 마우스 쇼핑(?)을 실컷 하다가,

한 장 한 장 펼칠 때마다 알파벳이 순서대로 입체적으로 보이는 책을 펼쳐 보며 즐거워하고,

화장실 핸드크림이 참 좋은 거더라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늦은 저녁이었다.


엄마의 첫 연남동이니만큼 고르고 골라 좋은 곳들로만 데려가야 한다는 괜한 사명감이, 

저곳에서야 비로소 잦아들었다.

고민이 무색했을 만큼 모든 게 완벽한 하루였다.

만난 모든 사람들이 친절했고, 걱정했던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걱정은 아주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는데, 

가령 카페에 혼자 앉아있을 엄마에게 전도하는 사람이 찾아와 말을 건다거나, 

엄마가 화장실에 간 사이 엄마가 챙겨간 아이패드가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것들이었다.

일어날 리도 없고, 사실 일어나도 엄청나게 큰 일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혼자 있는 엄마가 낯선 곳에서 평화롭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괜한 우려였다.

엄마는 혼자인 카페에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패드 드로잉에 몰두했다고 하니 말이다.



대망의 마지막 코스는 인생 네 컷!

연트럴 파크 길가에는 인생네컷을 찍을 수 있는 곳들이 아주 많다.

사실 계획했다기 보단 너무도 당연한 연남동의 루틴이라 언제나처럼 그곳으로 향했다.

혹여 너무 기대할까 봐 "사람이 많으면 못 찍을지도 몰라"하는 말을 덧붙이며.


운 좋게도 특히나 넓은 자리가 비어있었다.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지 두리번거리는 엄마에게 마스크를 벗고, 바구니에 짐을 두고 렌즈를 쳐다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바깥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나도 모르게 행동이 빨라졌다.

툭툭 결재하고 몇 칸의 사진을 할지 고르고 있자니 엄마는 다음에 아빠와 해볼 테니 천천히 알려달라고 했다.

"음.. 그냥 내가 또 따라올게."

잠시 가르쳐드릴까 생각하다, 이것의 난이도는 엄마 아빠가 최근에야 성공한 서브웨이 주문하기보다 어려우니, 다음에도 내가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서 아빠에게 인생네컷 후기를 전하는 엄마를 보며 내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인생 즉석사진 찍었어."

당당하게 아빠에게 오늘의 일을 전달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말 그대로 박장대소했다.

"엄마 우리가 뭐 찍었다고??"

"아닌가..? 맞잖아 즉석사진 네 번? 인생의 즉석사진 네 개?"

"엄마 우리가 찍은 건 인. 생. 네. 컷 이야"

이름을 듣더니 아빠가 알은체를 했다.

"그건가보다 인생의 나를 찍어보는 그거."

어디서 프로필 사진 같은걸 찍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다보다. 

'아빠... 그거 아니야...'내'컷이 아니라 '네'컷이야..' 




원래라면 리모컨으로 빠르게 사진을 찍었겠지만, 엄마와 함께하니 포즈를 잡고 렌즈를 바라보기까지 15초가 길게 느껴지지 않아 장당 15초를 가득 채워 사진을 찍었다.

8장 중 4장을 함께 고르고 엄마가 원하는 주황색 테두리까지 선택하고 나니 아주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왔다.

정말이지, 4000원 그 이상의 행복이었다.


연남동에서 맥주 한 잔을 더 하고 갈까 고민하다 혼자 집에 있을 아빠께 서프라이즈를 하기로 했다.

아빠께 카톡을 보냈다

-엄마랑 와인까지 먹고 10시에 출발하려고

천천히 놀다 들어오라는 어제의 말과는 사뭇 다른 대답이 도착했다.

-그렇구나.. 엄마는 좋겠다..


아빠의 부러움과 아쉬움 가득한 답장을 보고는 엄마와 킥킥대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빠는 어리둥절해하시며 현관으로 나왔다.

"아니 왜 벌써..?"

"뻥이었어ㅋㅋ 우리 그때 카톡 보내 놓고 바로 출발했어~"


다 함께 모여 피자랑 참치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두 메뉴를 펼쳐놓고 먹으며 각자의 하루를 나눴다.

오늘 어떤 것을 먹었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를 쉴 새 없이 아빠에 전해주는 엄마를 보며 좀 더 자주 함께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날의 연남동보다 만족스럽기는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다음에 또 가자! 코로나 끝나면!"

"뭐어..? 너무 나중인 거 아니야?"


정확한 날짜를 특정해두면 한껏 기대할까 싶어 이 정도로만 기약해두었는데,

아마도 조만간일 듯하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당연한 장소에서 엄마와 함께였던 건 색다른 경험이었고,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수십 번의 연남동중 가장 기억에 오래 자리하겠구나' 엄마와 함께 연남동을 걸으며 생각했다.

그만큼 손에 꼽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엄마와의 인생네컷 사진을, 시위하듯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은 아빠와도 조만간 '핫플'을 가야겠다. 

아빠와의 후기도 머지않아 남길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엄마와의 연남동 추억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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