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다녀갔고, 마음에선 바람 한 줄기 스칩니다

“나, 잠깐 왔어 “

by 앨리스킴



“나 왔어~~”


여느 때처럼 아침에 출근했다 퇴근해서 돌아온 듯, 딸은 예사롭게 캐리어를 들고 들어섰다.

우리도 “어서 와~” 하며 반갑게 맞았다.


조잘조잘 밀린 일상을 주고받다 보니 딸이 없던 시간이 잠시였던 것처럼 느껴졌다.

하긴, 출국한 지 겨우 넉 달 남짓.

그 사이 나도 한 번 다녀왔고, 영상통화며 카톡으로 매일같이 소통하다 보니

마음의 거리감이 끼어들 틈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딸은 일 때문에 며칠 짬을 내 휴가를 온 것이었고,

그 짧은 시간에 꼭 처리해야 할 일과 피할 수 없는 약속들로,

마치 선거 유세하는 후보들처럼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래도 양심상(?) 가족과 함께할 하루 반나절은 남겨두었다며 선심 쓰듯 말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완전체’가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낮에는 자전거도 타고, 산책도 하며 쉴 새 없이 깔깔대며 웃었다.

한 달 전부터 딸이 작성한 ‘엄마표 요리 리스트’ 과제도 차례로 해치웠다.


밤이면 네 식구가 모여 *루미큐브 게임 삼매경에 빠졌다.

(*루미큐브는 1부터 13까지 숫자 타일로 패턴을 만들어 조합하는 두뇌 게임이다.

원래는 2,4명이 하지만, 4명이 하면 숫자가 복잡해져 더 흥미롭다.)




딸이 오기도 전부터 현관 앞엔 택배 상자가 줄을 섰다.

한국에서만 살 수 있는 것들 위주로 꼭 필요한 물건만 골랐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많았다.

살다 보면 혼자이건 여럿이건 없어선 안 될 것들이 꼭 생긴다.


며칠이 금세 흘렀고

딸은 출국 하루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거실은 마치 이삿짐이라도 풀어놓은 듯 어수선하고 분주했다.


남편은 집에 있는 저울에 몇 번이고 올라섰다, 짐을 들고 다시 올라섰다를 반복하며

항공사 규정 무게를 맞추느라 분투했다.


무게는 맞췄는데 이번엔 부피가 문제였다.

종이 박스 두 개를 연결하고 테이프로 감고, 랩으로 덮고,

다시 테이프를 감고 또 감고…단단하게 마무리했다.

‘저걸 혼자 어떻게 들어?’


짐을 핑계 삼아 남편과 나는 함께 공항까지 따라나섰다.

인천공항의 새벽 공기는 5월 중순치고 제법 차가웠다.

공항 로비는 새벽인데도 북적였고 들떠있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도 합류했다.


체크인 줄에 서 있는 딸을 바라보며 남편과 나는 말없이 서 있었다.

별말이 오가지 않아도, 아쉬움은 서로의 눈빛에 담겨 흘렀다.





체크인을 마친 딸은 출국장앞에서 올 때처럼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다녀올게. 빠이~~”


우리도 언제나처럼 “잘 다녀오고, 도착하면 톡해~” 담담하게 말하며 4층으로 향했다.

온 김에 운동삼아 공항 안을 한 바퀴 돌아볼 작정이었다.


딸이 맛있다고 추천했던 계란빵과 커피를 먹고 싶었지만, 이른 시간이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너무 이른 새벽에 깨어서인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들어 그냥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딸이 여섯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이 실감도 안 났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열린 딸아이 방에 들어가 봤다.

옷들만 빠져나간 텅 빈 옷걸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걸 보는 순간 내 마음에 바람 한 줄기 스친다.

어디엔가 휑한 구멍이 난 듯,


“당신도 그래?”


나만 유별난가 싶어 남편에게 물었더니,

딸바보 남편도 허전하기는 마찬가지란다.




딸을 보내고 나니, 문득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왈칵 솟구쳤다.

당신 딸이 차에 타고 떠나는 모습을 한 점이 될 때까지 바라보며 손 흔들던 엄마.

딸이 온다고 설레며 기다리다가,

정작 떠나고 나면 뒤숭숭한 마음을 붙잡으려고

그리 넓지 않은 집안을 몇 번이고 쓸고 닦고…. 엄마는... 그랬을 테지.


그 마음을 헤아리기엔, 그땐 내가 너무 철이 없었고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흐트러진 일상을 추스르느라,

엄마의 마음까지는 닿지 못했다.


*내리사랑*이란 말, 엄마가 되어보니 이제야 알겠다.




딸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오늘만큼은 내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조금 귀찮아졌다.

이 얄궂은 마음을 그냥 잠으로 덮을까 싶다.

새벽잠을 설쳤더니 눈도 쓰리다.


남편도 “일단 자자~” 하며 자리에 누웠다.

나는 눈을 감았는데도 정신은 더 말똥거린다.


그래도 남편 마음은 내 마음보다 말을 잘 듣는 편인가 보다.

어느새— 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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