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전설과 함께 걷는 5월의 산책

떨어지는 꽃잎마다 쌀밥을 그리던 마음

by 앨리스킴




5월 중순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 동네 길가에는 이팝나무꽃이 한창이다.

두 줄로 늘어선 가로수엔 하얀 꽃들이 갓 지은 쌀밥처럼 고슬고슬 피어올랐다.


“여긴 벌써 이팝나무꽃이 다 지고, 초록잎만 가득해~”

4월 말쯤, 남쪽에 사는 언니가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난다.


언니가 사는 남쪽 마을엔 봄이 일찍 찾아온다.

우리는 해마다 그곳에 먼저 봄을 보러 다녀오곤 하는데,

그로부터 보름쯤 지나야 우리 동네에도 서서히 봄기운이 퍼지기 시작한다


덕분에 우리는, 한 해에 두 번 봄을 맞는

조용한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지금은 육지가 되었지만, 예전엔 섬이었던 이곳.

그래서인지 바닷바람이 매서워 봄은 늘 조금 늦게 찾아오고, 겨울은 먼저 다가온다.

숲이 깨어나는 시기도,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는 시기도 남쪽보다 한 박자 느리다.




길가를 걷다 보니, 밥알 같은 하얀 꽃잎들이 바람에 밀려 길모퉁이에 모여 있었다.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자 꽃잎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붙든다.

문득, 이 나무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팝나무. ‘이 밥나무(쌀밥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엔

가슴 뭉클한 전설 하나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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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가난한 마을에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흉년이 들어 아들은 한 번도 쌀밥을 먹어보지 못한 채 병이 들어 누웠지요.


병상에 누운 아이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마지막 소원을 말했습니다.

“엄마… 죽기 전에 하얀 쌀밥 한 그릇만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하지만 집엔 쌀 한 톨 없었고, 어머니는 타는 가슴으로 하늘에 간절히 빌었습니다.

“하느님, 제발 이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쌀밥을 먹게 해 주세요…”


그 순간, 마당의 나무에 하얀 꽃이 눈처럼 피어났습니다.

그 꽃을 본 아이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지요.

“엄마, 쌀밥이… 나무에 피었네요.”

그리고는 고요히 눈을 감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마지막 길에 쌀밥 대신 그 하얀 꽃잎을

조심스레 입에 넣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이밥나무’, 지금의 ‘이팝나무’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이팝나무가 하얗게 만개하는 시기가 공교롭게도 어버이날 즈음이라,

이 나무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얗고 고운 꽃이지만, 그 유래를 알고 나니

떨어지는 꽃잎마다 밥알이었으면 했던 옛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겹쳐 보여

괜스레 마음이 아릿해진다.


봄의 끝자락, 이팝나무 아래에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걷는 지금 이 순간.

이렇듯 덤처럼 주어진 하루가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흩날리는 꽃잎처럼, 오늘이라는 시간도

언젠가 스르르 흘러가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를 것 같다.

기억 속 어느 봄날의 향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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