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때문에 억울한 개망초-
-이름 때문에 억울한 개망초-
풀작업을 끝낸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도로가 한쪽에서 하얀 꽃들이 다시 고개를 내밉니다.
개망초입니다.
풀 베는 사람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쑥쑥 자라나 식구를 늘리더니, 어느새 온통 하얀 꽃밭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둘 피어 있으면 잡초라 여길지도 모르지만,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모습은 묘하게 단정합니다.
누군가 일부러 가꾼 듯한 느낌.
그래서일까요, 괜히 함부로 꺾지 못하겠습니다.
그 수수하고 청초한 모습이
오히려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옵니다.
담벼락 사이든, 수풀 속이든,
틈만 있으면 뿌리를 내려 하얀 꽃을 피우는 개망초는
어쩐지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누구의 관심도,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피었다가
때가 되면 말없이 사라지는 나그네처럼요.
누구에게도 길을 묻지 않고,
사랑받지 않아도 스스로 피고 지는 자유로움.
그런 소박함이야말로 들꽃이 가진 가장 큰 아름다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개망초는 참 예쁜 얼굴을 가졌습니다.
하얀 갈래꽃잎 가운데 동그란 노란 중심은 꼭
계란 프라이 같기도 하고,
삶은 달걀노른자를 반으로 자른 듯한 모습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계란꽃’이라는 별명도 있지요.
길가에 환하게 웃고 선 개망초를 보고 있으면
이웃집 꼬마를 본 듯, 괜히 웃음이 지어집니다.
하얀 꽃무리 사이로
간간히 연한 보랏빛을 띤 꽃들도 눈에 띕니다.
‘봄망초’라는 어여쁜 이름처럼,
화사하게 단장하고 봄마중 나서는 수줍은 소녀 같아
더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하얀 꽃무리 속에 수줍은 듯 화사한 ’ 봄망초‘>
이렇게 예쁜데,
이름에 ‘개’ 자가 붙으면
왠지 모르게 천대받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개망초 입장에선 좀 억울할 것도 같아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왜 하필, 이름이 ‘개망초’일까?
알고 보니, 개망초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종입니다.
우리나라엔 일제강점기 무렵, 일본을 통해 들어왔고
강한 번식력으로 들판과 길가를 빠르게 점령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그 시절,
우리 삶을 잠식해 들어오던 일제의 모습과 겹쳐져
‘나라를 망친 풀’이라는 의미로 불리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식물학적으로는 조금 다릅니다.
‘개’라는 말은 우리말에서 ‘야생의’, ‘덜 순한’이라는 뜻으로
개나리, 개다래, 개수국처럼 흔히 쓰이곤 했지요.
그러니 개망초란 이름도 토종 ‘망초’와 닮았지만
기존의 망초보다 더 작고 흔하며, 야생에서 거침없이 자라는 생김새가
이름 속에 고스란히 담긴 셈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개망초는 단순히 외래종이나 무례한 침입자가 아닌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가며
묵묵히 피고 지는 생명력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이맘때쯤 되면
자전거 타다 길에서 만나는 노란 금계국과
그 곁에 어우러진 하얀 개망초를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어느새 여름 문턱에 들어섰다는 신호처럼,
그 꽃들은 조용히 우리 곁에서 계절을 알려줍니다.
이름이 비슷해서 종종 헷갈리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물망초와 개망초인데요.
둘 다 끝에 ‘망초’가 붙어,
어쩐지 사촌쯤 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식물 분류상 전혀 다른 식물입니다.
물망초는 지치과, 개망초는 국화과에 속하고
꽃의 생김새, 피는 시기, 서식지까지도 꽤나 다릅니다.
물망초는 작은 하늘빛 꽃잎에 노란 중심을 가진
감성적인 분위기의 원예종이고,
개망초는 들이나 도로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얗고 수수한 들꽃입니다.
비슷한 점이라면,
둘 다 아주 작고 여린 꽃이지만 생명력만큼은 의외로 강하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꽃이라는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남남이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정말 사촌쯤 되는 사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름은 조금 억울할지 몰라도,
개망초는 오늘도 어디에서든 소박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피어납니다.
그 자체로 계절을 알리고,
우리의 마음을 잠시 쉬어가게 해주는 작고 아름다운 존재로요.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언덕에 올랐습니다.
바람 따라 스스로 피어난 개망초처럼,
우리도 자연스럽게 오늘을 피워냅니다.
별일 없는 하루였지만,
그 곁에 머문 마음 덕분에 충분히 좋았습니다.
그렇게 또 하루, 조용히 피고 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음을 느낍니다.
<길가에 무리를 이루며 핀 개망초>
<물망초 ‘나를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