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해서 참 다행이에요-
-말이 통해서 참 다행이에요-
아침 걷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단골 마트에 들렀습니다.
“운동 다녀오세요? 오늘은 혼자시네요?”
평소 눈인사 정도만 주고받던 계산대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습니다.
“같이예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정말 궁금해서 묻는 질문은 아니겠지만, 저는 곧이곧대로 대답했어요.
“늘 함께 다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그런데… 두 분, 소통이 잘 되시나 봐요?”
“네. 뭐든 함께 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동갑이라 친구 같고요.”
그때 그 직원이 한 말이, 아직도 마음에 남습니다.
“요즘은 남편과 말이 안 통해, 신경 끄고 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제야 저는,
그 질문이 단지 사이가 좋은지를 묻는 게 아니라
정말 ‘말이 통하는’ 사이냐는 뜻이었구나 싶었습니다.
부부는 촌수도 없을 만큼 가까운 사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놓쳐버리면 남보다 더 멀어질 수도 있는 관계입니다.
우리 부부도 항상 평화롭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다만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멈추는 법을
조금씩 배우며 살아온 것뿐이지요.
남편은 낙천적인 편이고,
저는 욱하는 기질이 있어 말보다 감정이 먼저 나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남편은 대체로 그런 저를 받아주는 편이에요.
참고, 기다려주고, 때론 조용히 모른 척하며 시간을 벌어줍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이상적인 관계는 아니에요.
때론 얄밉고, 서운하고, 거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순간엔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키려고 애써왔습니다.
시간이 쌓이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눈빛과 분위기로 알아채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마음.
그것이 오랜 시간을 함께한 부부만이 누릴 수 있는
느린 이해의 특권이 아닐까요.
‘이제 우린 가족이야. 가족끼리 무슨 사랑타령이야.’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꼭 웃자고만 한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결혼 후 몇 해가 지나면
사람들은 흔히 “사랑이 식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조금 달라진 거라고요.
연애 시절이나 신혼의 사랑이
서로에게 푹 빠져들던 말랑말랑한 핑크빛이었다면,
지금의 사랑은 연분홍과 회색이 어우러진 노을빛 같아요.
하루 끝에서 조용히 물들어오는 노을처럼,
조금은 묵직하게 ,
눈부시지 않게 다가오는 그런 사랑 말이에요.
신혼 초엔
기싸움을 하며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서로의 눈가에 잔주름이 더 깊어졌다는 걸 알아보게 될 때,
희끗하던 머리카락이
검은색보다 더 많아졌다는 걸 인정하게 될 때,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도 모르게 ‘아이구~’ 소리가 새어 나오는 걸 함께 웃게 될 때,
그런 순간들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이 자라납니다.
그런 게 바로,
노을빛 같은 사랑이 아닐까요.
같은 시각,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
그 평범한 반복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조금씩 사랑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단단한 사랑의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