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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Apr 07. 2022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해서......

미안함이 너무 커서 아프고 또 아프다.

 <전원일기 다시보기 - 개에 대한 명상>


 푹푹 찌는 더운 여름날, 김 회장은 전에 비해 농사일에 힘들어하며 땀을 쏟아내고 휘청거리는 몸짓으로 마당에 들어선다.

"뭐를 자시고 싶으세요? 뭐를 자시면 힘이 날 것 같으세요?" 하며 김 회장 부인은 안타까워한다

이를 지켜보던 일용어머니는 김 회장 부인에게 힘을 낼 수 있는 보양식을 해 드리라며 뭐니 뭐니 해도 몸보신엔 개고기가 제일이라 하고 김 회장 부인은 어머님이 싫어하셔서 안된다고 한다.


 둘째 아들 용식은 낮에 먹은 개고기로 소화가 안되고 속이 더부룩하다며 약을 찾고 부인 순영은 어떻게 그런 혐오식품을 먹냐며 잔소리를 하고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한다. 외국에서 비하하는 한국문화라는 말에 용식은 이것도 엄연한 우리나라 식문화라며 맞선다. 밥을 잘 먹지 못하는 용식을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순영은 남편이 개고기를 먹어서 그렇다며 일러주고 김 회장의 어머니는 절에 다니는 집에서 절대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라며 용식을 나무란다.


 슬기는 흰둥이에게 오징어를 먹이며 순길이와 함께 강아지를 예뻐하고 놀고 있다.

"이 놈 토실토실하니 근수 나가겠구먼." 하며 개장수가 다가오고 슬기 아빠에게 값을 잘 쳐주겠다며 개를 팔라고 한다. 솔깃하던 슬기 아빠에게 슬기는 울며불며 팔지 말라고 하고 다시는 개를 판다는 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받아낸다. 딸이 제일 좋아하는 강아지를 어떻게 팔 생각을 하냐며 슬기 엄마에게도 잔소리를 듣고 슬기 아빠도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흰둥이에게 미안해했다.


 며칠 째 김 회장이 더 힘들어한다.

김 회장 어머니는 손주 며느리들이 모시고 가겠다고 해도 극구 사양하며 혼자 외출에 나서고 다른 식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급히 돌아온 할머니는 부엌에서 직접 아들 김 회장을 위해 바쁘게 요리를 한다.

"어서 드시게. 기가 딸릴 때는 이거만 한 게 없어."

김 회장은 모르는 척 어머니의 요리를 먹는다.


 "할머니, 절에 다녀오신 지 얼마 안 되셨는데 또 가시고 싶으세요?"

이번엔 혼자가 아닌 손주 며느리를 대동하고 할머니가 길을 나선다.

"나땜에 절에 가시는 거 같아."  김 회장의 말에 김 회장 부인은 대문을 나서는 시어머니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본다.


 슬기네 흰둥이는 요즘 말로 시고르자브종이다.

대문 밖에 줄로 묶여 있어 흰둥이의 생활 반경은 1미터 내외이고 제대로 된 건강한 음식이 제공되지 않았다.

강아지에게 올바른 방식으로 조리된 오징어는 신체에 적절한 기능에 필수적인 영양소의 원천이지만 말린 오징어는 짠 음식으로 위장 장애를 유발하고 혈액의 나트륨 함량을 증가시켜 구토와 설사에서 발작과 혼수상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기가 내민 말린 오징어는 흰둥이에겐 최상의 간식이었던 그런 환경이다.


 그래도 괜찮다.

강아지에게 자신이 제일 맛있어하는 것을 내어주는 슬기의 마음이 예뻐서 흰둥이는 행복하다.

슬기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아껴주니 흰둥이는 행복하다.

나쁜 사람들(개장수)로 부터 지켜주고 흰둥이를 위해 울어주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흰둥이는 행복하다.

학교만 갔다 오면 흰둥이와 놀아주고 함께 하는 시간이 많으니 흰둥이는 정말 행복하다.

그래서 슬기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슬기가 정말 부럽다.


절에 다니는 집안이라 절대 개고기는 안된다.

불교에서는 인간으로 환생하기 직전 단계가 개라서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가 개고기 먹는 것을 돌길라죄(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악업)로 지목하여 개고기를 먹지 말 것을 명했다고 하니 부처를 모시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개고기를 절대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기로 했다.

내 아들, 나이 많은 아들이 너무 힘들어하니 어쩔 수 없다.

이번 한 번 눈감기로 했다.

식구들에게 개고기는 안된다고 엄포했고 자신도 그러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지은 죄를 스스로 벌하기 위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

불공을 드리며 마음의 죄를 씻는다.

개에 대한 미안함을 빌고 또 빌어가며 개를 위해 기도한다.

미안해 할 수 있고, 미안함을 전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는 김 회장 어머니가 정말 부럽다.



 

우리 집 막내, 나의 셋째 아들이었던 우리 사랑이가 작년 여름 하늘나라로 떠났다.15년 동안 우리 가족을, 특히 엄마인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우리 사랑이를 보내고 가을, 겨울이 지나 봄이 되었다. 사랑이가 함께 한 마지막 봄이 생각나, 사랑이가 없는 이 새로운 봄은 예쁘게 피는 꽃도 아프다.


그래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슬기가 부럽고,

미안해 할 수 있고, 미안함을 전할 수 있는 김 회장 어머니가 정말 부럽다.


 사랑이를 보지 못하는 슬픔보다 사랑이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커서 아프고 또 아프다.

 나는 괜찮지 않아도 된다.

 아니 괜찮아서는 안된다.


나도 슬기만큼 아니 슬기보다 훨씬 더 사랑이를 사랑했지만

슬기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서

슬기처럼 위기의 순간에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슬기처럼 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나도 김 회장 어머니처럼 사랑아 미안해를 수천번 말하지만 전할 수 없는 미안함은 마음의 짐을 더할 뿐이다.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미안한 내 마음이 사랑이에게 전해졌으면 하고 간절히 바래본다.

수 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하지만 나는 여전히 미안하고 아플 뿐이다.


 15년 동안 사랑이를 향한 내 마음을 사랑이도 알 것이다.

엄마를 향한 사랑이의 눈빛이 그러했고 사랑이의 몸짓도 사랑이었으니 사랑이 또한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미안하다.

한결같이 엄마만 향해 있던 사랑이의 눈빛을 뒤로하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주지 못해서,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함이 죄가 되었다.


그 먼길,

엄마 없이 아무 데도 가지 않던 아이가 그 낯선 길을 혼자 가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겁쟁이 우리 사랑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래도 똘똘이 우리 사랑이, 하늘나라 잘 찾아가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아가, 우리 아가 사랑아!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가 없어도 밥 잘 먹고 잘 놀고 아프지 않고 잘 지내다가 나중에 엄마 만날 때 꼭 마중 나와줘.

우리 사랑이를 늘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엄마가 있다는 거 꼭 기억하고 엄마 잊지 말아 줘.


사랑! 사랑해! 정말 정말 사랑해!!!

사랑!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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