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 두 갱년기
“오이가 냉장고에서 시들어가고 있네. 얼른 먹어야겠다.”
“이달에 카드값이 너무 많이 나온 것 같아”
“사랑이 샤워 좀 시켜야겠다. 얼굴이 너무 꼬질꼬질한 거 같아”
“oo 이한테 빨리 전화해봐. 퇴근 시간 지났잖아”
“올해 매실청 또 담을까? 작년에 한 것도 아직 남아 있는데~~ 해야 하나 고민이네”
“ 오늘 저녁엔 뭐 먹을 거야?”
이것은 우리 집 갱년기 남자가 하는 말이다.
그것을 나는 잔소리라 칭하고 전지적 아내의 시점에서 번역해본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확인하고 식재료를 사라.
소비를 줄여라.
강아지를 깨끗하게 관리해라.
딸아이는 일찍 집에 와라.
남편이 매실청을 해주었으니 열심히 잘 활용하며 챙겨 먹어라.
남편의 반찬을 맛있게 해주어야 한다. 어제 먹은 것을 또 먹기 싫다.
어느 해부턴가 매실청을 담는다고 본인이 직접 매실과 설탕을 주문할 때부터 의심을 했어야 했다. 난 그저 매실청을 담지 않는 마누라를 대신해서 그 수고로운 일을 해주는 착한 남편인 줄 알았다. 아마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남자도 갱년기가 있는 줄은 몰랐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모두 이상하게 변한다 해도 내 남편만은 그러지 않을 줄 알았다. 그는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얼굴에 착하다고 쓰인 호인상이며 연애 때나 결혼 30년이 지난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정다감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 믿었다. 부부싸움은 늘 내가 신경질을 내고, 내가 잘못한 일도 결국은 남편이 사과를 하면서 끝이 나는 패턴이었는데 내게 잔소리를 하다니 ~~~~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남편의 갱년기는 나의 갱년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트리플 A형에 감성이 예민한 내가 폭풍 갱년기를 맞을까 걱정해주시던 선배 선생님은
“여자들 갱년기는 누구나 다 맞는 것인데 그러려니 하고 지나갈 수 있도록 마음을 편히 먹고 받아들여야 해”를 늘 말씀해주셨다.
유난히 갱년기를 힘들어하여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는 물론 우울증까지 겪는 사람들도 보았지만 나는 40대 초부터 교육을 해주신 덕분에 미리 많이 마음의 준비를 하여 감정적인 부분의 갱년기는 아무런 동요 없이 잘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신체적인 홍조나 열감, 무기력함 등은 어쩔 수 없어 호르몬제를 복용하며 갱년기를 건강하고 이겨내고 있는 중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집안 두 갱년기가 공존하는 상황이 되었다.
갱년기라는 것이 조절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의 큰 착각이었던가?
남편은 나도 모르게 그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는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니 자신이 잔소리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 내게, 왜 이런 상황에서 잔소리를 하냐고 얘기하면 자신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왜 오해하냐고 되묻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짜증이 나면서 내 갱년기 화도 늘어나게 된다.
두 갱년기가 맞붙으면 어떻게 될까?
최소한 그런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지 하면서 나는 남편의 잔소리를 내 시점으로 번역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귓등으로만 흘려버리는 태도를 들켜버리면 그것도 그의 갱년기 증세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 성의 있는 대답과 적절한 리액션도 해주어야 하니 나 또한 갱년기를 겪으면서 슬기롭게 혜쳐나가기가 난감하다.
슬기로운 갱년기 생활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