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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Apr 30. 2021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될 때

브런치에 낯선 알림이 떴다.

몇 번 제안을 받은 경험이 있긴 하지만 낯선 알림은 늘 설렘이다. 이번엔 또 무엇일까?

"강연 및 섭외 목적으로 OOO님이 제안을 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브런치에 등록하신 이메일을 확인해주세요."

가족의 일상을 시트콤 형식으로 재미있게 영상에 담는 휴먼다큐 프로그램의 방송작가가 브런치에 쓴 글 '치킨, 갱년기를 위로하다.'보고 연락을 하였다.


내가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우연히 기회가 되어 EBS 라디오 방송은 해보았다. 목소리만 출연했던 라디오 방송 경험도 새로운 세상이었는데 이번엔 텔레비전 섭외 제안이라니 훨씬 흥미롭고 설레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되어 글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도 했다. 미약하나마 용기 내어 시작한 작은 행동으로 학교와 집밖에 모르던 밋밋한 나의 일상에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세상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일은 반드시 하는 성격이다.

시도하지 않은 일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면 반드시 한다.

남들이 해내는 일이라면 당연히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 술 더 떠 남들보다 더 잘하려고 한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기회가 될 때 텔레비전에 나가고 싶기도 하다.

따라서 섭외 메일을 받는 순간, 방송 출연은 이미 결정되었다. 순전히 나 혼자서만.


퇴근한 남편과 아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를 꺼냈다.

"오! 엄마 대단한데요. 엄마랑 아빠는 한 번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빼주세요. " 아들의 완곡한 거절이다.

"혼자 하려면 해. 난 됐어. 난 그런 거 싫어." 부부가 함께 해야 하고 가족의 일상을 촬영한다고 하니 남편은 강경하게 거절하였다. 평소 남들에게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남편인지라 예상을 하긴 하였지만 그렇게 단칼에 자를 줄은 몰랐다. 남편에게 이러쿵저러쿵 텔레비전 출연 욕심을 내비쳤지만 소용이 없다. 부부 다큐인데 나 혼자 어떻게 하냐, 이런 기회가 다시없을 텐데, 마누라가 하고 싶다는데 그것도 못해주냐, 샌님 중 샌님이다라며 구시렁구시렁 한참 동안 남편을 졸라댔다.

 

1학년을 가르칠 때 아이들과 함께 불렀던 동요가 생각난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율동을 하며 진짜 텔레비전에 나오기라도 한 듯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은 텔레비전에 나가도 될 만큼 예뻤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좋긴 하겠지만 나는"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이 아니다.

단지 얼굴만의 문제일까?


시청자들의 관심이 많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프로그램도 방송의 재미를 위한 과한 설정으로 말이 많았다. 다큐시트콤이라던데 보통 사람인 우리 부부는 재미를 제공할 만한 것이 없으니 찍어봤자 방송국에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촬영을 하면 우리 집과 나의 일상이 전국에 드러날 텐데  우리 집은 드라마 속의 집과는 거리가 멀다. 그대로 보이는 것이 맞긴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나의 민낯과 날것 그대로의 삶을 드러내는 것도 쉽지가 않다.

선생이라고 바른생활 실천운동가처럼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이야기했었는데.... 실제의 나는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우리 사랑이가 많이 짖어 촬영스탭 등 방송국 사람들도 힘들고 사랑이도 낯선 사람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절대 안 된다.

혹시 촬영을 하며 학교에서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폐가 되면 어쩌나, 그들이 보는 나와 프로그램 속의 내가 다르게 보여 내 속이 들통나면 어쩌나, 내 얼굴이 큰 바위 얼굴처럼 크게 나오지 않을까,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면 싫을 것 같은데, 촬영 중 남편과 내가 괜히 찍었네 하며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

.

.

기타 등등 많기도 하다.

방송 출연을 해야 하는 이유보다 하지 못하는 이유가 더 많다.


친정 엄마와 동생들은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그러게, 나는 정말 하고 싶은데 형부가 싫대잖아."

오늘도 남편 탓으로 이유를 둘러댄다.


동요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동요에는 웬만해선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  결론은 동요 속에 나를 끼워 넣으면 안된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재미로 부르는 노래가 생각난다.

"텔레비전에 가 나온다면 딴 데 틀겠네~. 딴 데 틀겠네~."


딴 데 틀기 전에 안 하길 잘했다.ㅎㅎㅎ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

잘 살아야겠다.

언젠가 다시 이런 기회가 오면 그땐 자신 있게 텔레비전에 나갈 수 있게.


섭외 메일을 보내주신 작가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살겠습니다.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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