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서 학부모가 울고 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만난다고 한껏 차려입은 모습으로 내가 내미는 티슈 몇 장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있다. 나도 마음이 좋지 않다. 때로는 같이 울기도 한다. 거의 같이 운다. 그렇게 나는 가끔 학부모를 울리는 교사가 된다. 모든 학부모가 다 우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학부모와는 큰 소리로 함께 웃기도 하고 어느 학부모와는 서로 감사의 마음을 주고받기도 하고 서로를 걱정하며 아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울거나 웃거나 학부모와 나는 아이의 교육적 성장을 위해 함께 고민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내기 교사 시절엔 20대 초반의 젊은 선생이 아줌마 학부모님을 대하기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3월 초 아이에 대한 파악도 하지못한 상태에서 “우리 아이는 어때요?”라고 하시면 난감했다. 그 당시의 그 질문은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있나요?”와 같은 말이었다.
교육경력이 짧았던 그때의 나는 단순히 아이의 점수만을 알려주었고 그것으로 학부모 상담을 다한 것이라 여겼다. 한참 어린 교사에게 예의를 갖춰 상담을 하는 학부모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반말을 섞어가며 스스로 자식 자랑만 늘어놓던 학부모, 촌지로 실랑이를 일으키는 학부모도 있어서 그 시절의 나는 달갑지 않은 의무로 상담에 응한 적도 있었음을 부끄럽게 고백한다. 명백한 잘못이다.
세월이 흘러 내가 자식을 낳아 학교를 보내보니 아이의 학교생활이 궁금해졌다. 부모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상담이 필요해졌다. 나 또한 부모가 처음이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식을 키우는 과정 중이었기에 양육자로서의 나의 태도에도 더욱 조언이 필요한 시기였고 그제야 학부모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교사로서 상담에 임하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학부모의 요청해서 이루어지는 의례적인 시간으로 흘려보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다각적으로 아이를 파악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아이의 가정환경뿐 아니라 부모의 훈육방법 및 교육관까지 살펴보고 아이의 학업적 태도 및 교우관계, 정서적인 감정까지 읽어내려 노력하였다. 학부모 대상 가정교육 조사지를 바탕으로 교우관계도, 심리검사지, 학교생활 관련 기록, 교과서 및 공책정리, 하다못해 학용품 및 책상 주변 정리정돈 상태 , 급식상태 등 모든 것을 준비하여 학부모와의 상담에 임하였다. 보통 학부모 상담에서 접근하는 아이의 잘못된 점을 고치고자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부모가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아이의 행동도 하나하나 유심히 보게 되었다.
상담의 해답을 찾았다. 모든 아이의 뒤에는 그렇게 양육한 부모가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어렵게 발걸음한 학부모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 혹은 상담 후 민원이 발생할까 걱정하여 아이의 좋은 점만을 알려주고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이야기하라는 방침을 지시하였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혹시 문제가 있는 경우, 적어도 8년 이상을 양육해온 부모의 교육방식에 익숙해진 아이를 교사 혼자의 힘으로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일 뿐 아니라 더딘 치유시간 만큼 아이가 힘들거라 생각하였다. 조금이나마 더 빨리, 덜 아프게 성장하려면 부모의 개입 및 부모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윗분들이 절대 하지마라고 하는 ,
윗분들이 아시면 내가 다칠(?)수도 있는,
자칫하면 학부모들에게 이상한 오해(촌지를 바란다는 등)를 받기 쉬운,
일부 동료교사들의 눈에는 튀는 행동으로 비쳐질 수 있는,
남들이 보기에는 아슬아슬 위험천만한, 엉뚱용감 나만의 방식대로 학부모상담을 진행하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이의 학교생활에서 보이는 아주 사소한 행동에서도 아이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학부모와 이야기하다 보니 자신의 양육방법에 대한 반성을 하며 내 앞에서 우는 학부모가 많아졌다.
5학년의 남자 친구는 과학영재에 전교 부회장으로 인성도 좋아 친구들도 많으며 공부는 물론 체육, 노래, 악기 다루기 등 못하는 것이 없고 유머감각도 뛰어나 학급의 분위기를 매우 즐겁게 이끄는 아이였다. 어머니 또한 학부모회 임원을 하시며 학교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분이었다.
상담을 하는 날, 자신 있는 자세로 거칠 것 없이 아이에 대해 먼저 말씀하셨다. 5학년 아들의 미래는 그야말로 장밋빛이었다. 과학고등학교를 보내 조기졸업과 동시에 카이스트를 보낼 것이고 세계적인 로봇 과학자로 키울 계획인데 다행히 아이가 엄마 말을 잘 따라주어 고맙다고 하였다.
학교에서의 아이는 그렇지 못했다. 그 아이는 교사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 자기가 다 답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분출하는 아이였다.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 자랑이 되어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공부 시간에 거침없이 이야기하며, 수학 시간엔 다른 아이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였지만 다행히 성격이 유쾌하고 체육을 좋아하여 다른 친구들과 운동장에 뛰어놀다 보니 아이들과의 문제는 없었다.
학부모 상담 전 이루어지는 아동상담에서 그 아이는 울었다. 타이트한 스케줄의 학원, 늦은 시간까지 엄마가 잠도 못 자게 하며 학원 숙제를 하라고 하는 게 힘들다고 하였다. 수업시간에 발표를 시켜주지 않으면 화가 나는 것은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하였다. 간단한 심리검사에서는 죽고 싶을 때도 있다고 대답하였으며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동물이 된다면 강아지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엄마가 눈치채지 못하게 늘 즐겁게 씩씩하게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상황을 다 들은 엄마의 대답은 “1학년 때부터 늘 듣던 말이에요.”
5년 전에 엄마가 바뀌었으면 아이가 힘들지 않았을 텐데, 아이의 아픔을 좀 더 일찍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안타까웠다.
“ 어머님, oo 이는 다방면으로 잘하여 어머님이 원하시는 대로 자랄 거예요. 어머님이 조금만 아이를 편하게 해 주시면 아이가 좀 더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요?"로 시작하였다.
발표 욕심에 나오는 잘못된 행동은 뭐든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이며 현재 자신이 잘하는 것도 좋지만 학원 및 어려운 과제로 죽고 싶을 때가 있을 만큼 힘든 상태이고 엄마가 가장 무서운 상대라고 느껴 강아지가 되어 엄마에게서 보호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조심스레 꺼냈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아이를 좀 더 편안하게 해 주겠다며 상담을 마쳤다.
1학년 여자 친구는 1학년 답지 않게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며 늘 웃고 친구들에게 친절하였다. 교사인 내가 보아도 탐이 나는 친구였는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친구 칭찬하기 학습활동을 힘들어하다 울먹이더니 과호흡 현상까지 와서 보건실에 갔다.
"친구야, 너는 OO을 잘해서 좋겠다" 이 말이 왜 그리 힘들었을까?
학부모 상담시간에 그 이유를 알았다. 연년생으로 동생이 둘이나 있어 그 조그만 아이는 늘 언니고 누나여야 했다. 육아에 지친 엄마는 아이의 예쁜 모습을 보지 못해 칭찬을 하지 않았었던 것이다.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늘 웃고 착한 행동으로 엄마의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는 다람쥐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작고 귀여워서~ 작고 귀여운 동생들을 보는 엄마의 환한 얼굴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
"엄마와 아빠는 어떤 경우에도 언제나 아이의 편임을 느끼도록 해주어라."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아이를 가두지 마라"
"부모도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해라"
"학교에서 그림처럼 앉아 있는 아이가 되게 하지 마라, 쉬는 시간에 친구와 떠들어도 괜찮다."
"부모는 분명히 사랑이라고 한 행동이 아이는 부담으로 느낄 수가 있다. 아이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라."
"내 아이가 귀하면 다른 아이도 귀한 아이임을 알게 해 주어라. 아이가 접하는 작은 사회에서도 사회적 관계를 바르게 맺도록 해주어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러나 늘 칭찬만 받고 살 수는 없다. 혹시나 잘못한 경우에는 가정에서 먼저 혼이 나고 벌을 서는 경험도 나쁘지는 않다. "
“책을 많이 보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면 부모가 책을 많이 봐야 한다. 그러나 한참 지나야 아이들이 바뀐다. 그러니 부모님도 오랜 기간 동안 노력해라”
돌이켜보면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학부모 스스로 인지하고 더 좋은 방향을 찾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할 때도 있다. 불타는(?) 교육적 소신이거나 엉뚱한 용기(?)로 학부모님들의 마음을 다치게 했을 것 같아 후회도 하지만, 내 앞에서 울고 간 학부모님들도 내 진심을 읽었으리라 스스로 위안하며 해마다 학부모를 울리는 교사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아이에게서 웃음을 다시 보았고, 나도 조금씩 성장하는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진심은 통하는 법, 어느 누구에게서도 다치지않고(?) 34년을 훌륭하게,행복하게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