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디, 장가 좀 잘 가지 그랬노.”
“문디, 시집 좀 잘 가지 그랬노.”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 뭇는데 우째 시집을 잘 가노.”
“얼마에 팔아 뭇노”
“백만 원, 그걸로 당신 그 시집가곈가 장가곈가 뭐 거 갔다온나”
<출처> 드라마 - 편의점 샛별이
눈물이 났다. 가슴이 아팠다. 같이 드라마를 보던 남편은 차마 울지 못했지만 아무 말 없이 TV를 응시하던 옆모습에서 그의 마음이 보였다.
통통 튀는 웃음이 예쁜 여자 주인공과 잘생긴 남자 주인공의 케미가 재미있어서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에서 이런 가슴 아픈 대사가 나올 줄 몰랐다. 사는 게 다 그렇구나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눈물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문디, 시집 좀 잘 가지 그랬노.”
문디
경상도 사람들이 막역한 사이에 쓰는 말이다. 나도 어릴 때 친한 친구에게 문디 가시나를 말하고 듣고 했지만, 기분 나쁜 말이 아니라 오히려 친근함도 있어 괜찮았다. 친분이 없는 사이나 별로 좋지 않은 사이에서의 그 말은 싸움을 초래할 수도 있다. 낼모레면 예순이 다 되어가는 우리 친구들도 가끔 한다.
“문디, 전화 좀 하고 살자”
시집 좀 잘 가지 그랬노
나 같은 사람 만나서 당신이 고생이 많다. 고생시켜 미안하다. 내가 돈도 잘 벌고 잘 해줬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해서 미안하다. 당신이 애쓰고 힘들게 살아서 마음이 아프다. 내가 앞으로 당신이 돈 걱정 없이 편히 살게 해주어야 그렇게 사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당신의 눈물이 가슴이 아프다, 당신이 겪었을 힘든 시간을 내가 겪어야 했는데 ......애초에 내가 널 만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미안하다. 모두 다 내 잘못이다.
백만 원
보통의 사람들에겐 큰돈이어서 요긴하게 아주 큰 값어치를 하는 액수지만 어떤 이는 명품백 하나도 못사는 그런 돈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엄마는 눈물을 삼키고 번 돈이다. 자식과 남편의 수모와 바꾼 돈이다. 사지가 떨리고 입술을 다물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을 이겨내고 번 돈이다. 하지만 절대 수치스럽지는 않다. 나도 할 말은 했다. 내가 당당히 일한 대가다.
시집가곈가 장가곈가 뭐 거 갔다온나
당신도 수모를 참아내느라 힘들었다. 나만 고생한 게 아니다. 한 집의 가장으로 살면서 당신도 고생 많이 했다. 그동안 돈 버는 마누라 비위 맞추고 집안일 하느라 애썼다. 나는 당신이 친구들 사이에서 기죽는 것 싫다. 당신의 고단한 삶에도 이제 기쁨이 있으면 좋겠다. 이참에 외국 여행 한 번 다녀오세요. 나는 괜찮다.
�♬�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봄이면 씨앗 뿌려~~~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 님과 함께 산다면�♬�
유행가 가사가 딱 맞다. 결혼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이 마음일 것이다.
신혼 초에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은 우리와는 딴 세상일이라 생각하고 꿈으로 그쳐도 별로 슬프지 않았다. 그들만의 리그에 끼이려고 하면 요즘 말로 다치니까 다치지 않고 내가, 우리가 이만하면 괜찮을 것 같다 정도에 타협해도 다음을 기대할 수 있는 젊음의 패기가 있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던 그때는 열심히 일하고 아끼며 저축하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에 살게 될 것이라고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그렇게 녹록지가 않다. 유행가 가사처럼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일하면 행복한 겨울이 되어야 하는데 그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단순히 수치로 계산하면 어느 때쯤엔 얼마만큼의 돈이 모여져 있고 작은 집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세상 속의 숫자, 특히 돈의 숫자는 우리의 계산 밖이거나 뛰어넘는 수준이라 때로는 좌절하고 자괴감마저 든다.
그래도 우리는 돈보다 소중한 가족이 있어 아픔도 웃음으로, 행복으로 만들며 살아낸다.
젊은 시절엔 뜨거운 사랑으로, 하나둘 자식을 키울 때는 아이들의 웃음으로, 나이 들어가면서 사랑보다 진한 정으로, 측은지심으로 혹은 동지애로 서로를 바라보는 부부의 마음으로 서로 아끼고 편안하게 지내면 그걸로 된다. 힘을 내야 할 일이 있을 때 서로를 핑계 대지 않고 손을 맞잡으면 그걸로 된다. 매일 좋을 수만은 없어 미운 짓이 정말 보기 싫을 때는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은 것도 알기에 조금씩 더 조금씩 인내하고 행복하게 사는 연습이 필요하다.
낼모레 60이지만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남편을 향해 푸념한다.
“저 아줌마 좋겠다. 남편이 고생한 거 알아주고 저런 말을 해주니 얼마나 좋아”
남편이 날 보고 웃는다. 얼마나 더 해야 만족하겠냐는 표정이다. ㅋㅋ
생일이거나 특별한 일이 있어 값비싼 식당에서 폼나게 먹을 일이 있을 때면 남편은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너희 엄마 덕분이란다. 아빠 혼자 벌어서는 이렇게 하기 힘들어. 엄마가 고생해서 함께 돈을 버니 가능한 일이야, 엄마에게 감사하다고 해. 여보 나도 고마워.”
그 말이 “문디, 시집 좀 잘 가지 그랬노”와 같은 말임을 안다. 그렇게 워킹맘으로 고생하며 살아가는 마누라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말임을 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시집가곈가 장가계를 갔다온나라고 말할 만큼 마음이 넓지 못함을 고백한다. 정작 인내와 연습이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이다.
Right Now, 오늘 바로 해야겠다.
“ 문디, 장가 좀 잘 가지 그랬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