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니 닮아간다.
손가락이 아픈 것도 닮았다.
남편과 연애할 때 오누이냐며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서구적으로 생긴데 반해 나는 작고 서구적인 외모는 아닌데 무엇이 비슷한지 우리는 찾지 못했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 닮아 보이나 보다 하며 웃었다.
결혼하고 살아보니 완전히 달랐다.
취향이나 식성이 다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애와 결혼의 차이는 얼마큼 보이나 하는 총량적 무게감이 있어 훨씬 달랐다. 연애 때는 잠깐 만나고 서로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고 미운 모습도 좋아 보이는 그야말로 눈에 콩깍지가 쓰인 상태니 그저 그의 취향이 나와 다르다 정도였다.
신혼 초 이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쓸데없는 짓(철저히 나의 주관적 기준)을 하는 그가 너무 싫었다. 사관학교라 불릴 만큼 업무적으로 힘든 직장에 다니느라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까지 반납하며 일을 하는 사람이 토요일 밤이면 꼭 비디오를 빌려다 보았다. 그때는 토요일도 근무하던 때이다. 피곤하다면서 일찍 자면 될 텐데 새벽녂까지 비디오를 보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드라마나 영화 등을 싫어하는 나로선 잠까지 바쳐가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그가 미웠다. 퇴근이 좀 일렀던 어느 토요일 “ 오늘은 비디오를 2개 빌려야지” 하는 말에 나는 함께 가던 길에서 소리를 지르고 되돌아섰다. 이해하지 못하고 미운 정도가 아니라 그 쓸데없는 짓에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는 그가 바보 같고 실망스러웠다. 만약 이 남자가 계속 이렇게 산다면 이혼해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바보 같은 사람과 살 수는 없었다.
그의 입장은 재미있으니 같이 보자.
그러나 싫다면 너는 보지 않아도 된다. 나는 네가 말하는 쓸데없는 짓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해결책은 그의 말대로 간단하다. 나는 같이 보지도 않았고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이혼하는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싫어하는 기준에서 남편과 나는 다른 점이 정말 많았다.
그는 머리가 베개에 닿기만 하면 잔다. 나는 잠이 별로 없고 불면증도 있다.
그는 코를 심하게 곤다. 나는 코를 골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버터와 치즈, 크림, 마요네즈 등 느끼한 것을 좋아한다. 나는 절대 먹지 않는다.
그는 물에 빠진 닭은 먹지 않는다. 나는 삼계탕, 닭볶음탕을 좋아한다.
그는 술을 많이 먹지는 않지만 즐겼다. 나는 싫어한다.
그는 외국영화를 좋아한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본다면 한국영화를 본다.
그는 게임을 좋아한다. 나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는 청소하라면 오늘 중에 하면 된다. 나는 지금 당장 해야 한다.
그가 화장실을 다녀오면 전구가 켜져 있다. 나는 나오면서 바로 끈다.
그는 샤워하는 동안 물을 내내 틀어놓는다. 나는 필요하지 않을 땐 끈다.
그는 한 번 쓴 수건은 사용하지 않으며 한꺼번에 두 장씩 사용한다. 나는 한 장만 사용하며 손 닦은 것은 한 번 더 사용한다.
그는 낮잠을 잔다. 나는 낮잠을 자면 머리가 아파서 자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기준에서도 남편과 나는 다른 점이 많았다.
그는 수시로 선물이라며 소소히 기쁨을 준다. 나는 거의 받기만 한다.
그는 아내를 위해 무엇이든 잘 챙겨준다. 나는 주로 챙김을 받는다.
그는 다정하게 말을 한다. 나는 튕기기를 잘한다.
그는 좋은 게 좋은 사람이다. 나는 틀린 건 틀렸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한다.
늙어가니 닮아가고 있다.
생각도 모습도 닮아가고 있다.
내 기준의 쓸데없는 짓을 하는 남편에게 잔소리하고 남편은 본인 기준의 쓸 데 있는 짓에도 잔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잘살고 있다. 남편이 조금씩 내게 맞춰주어 나는 조금씩 느슨해지고, 내가 조금씩 눈을 감으면 남편의 쓸데없는 짓이 조금씩 줄어가며 서로 비슷해져 간다.
불면증이 여전히 있긴 하지만 잠이 쏟아져 잘 때가 잦아졌으며 어느 날 내가 코를 고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남편도 삼계탕을 먹기는 한다.
남편은 이제 술을 마시지 않으며 버터 치즈 등 느끼한 음식과도 이별하였다. 부인과 함께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는 남편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남편의 재미를 위해 1년에 한두 번 치맥을 한다. 함께 치킨을 즐기며 이제 맥주도 한 모금한다.
남편은 낮잠 잘 시간에 산책한다. 나는 피곤한 날엔 낮잠을 자게 되었다.
남편도 이제 한국영화를 본다. 나도 재미있는 드라마를 밤늦도록 보기도 한다.
로봇 청소기를 사용하니 남편이 손 빠르게 작동시킨다.
화장실 불은 내가 끄면 되고 수건은 세탁기와 건조기에 맡긴다.
나는 그의 건강을 위해 그를 챙기게 되었고 그는 고마움을 표현한다.
그의 갱년기와 나의 갱년기가 부딪히는 불상사를 피하려고 틀린 것도 아닌 것도 참게 되었다.
봄에 남편이 손가락이 아프다며 병원에 갔더니 관절염이라고 한다.
본인 말로는 설거지를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한다. 나이가 드니 손가락도 늙어가고 있나 보다 여겼다.
이제 내 손도 아프다.
2주 전에 엄지손가락 아래쪽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당분간 컴퓨터 등 손을 사용하는 일을 덜 하라고 하며 주사도 맞았다. 아픈 것을 핑계로 설거지도 안 하고 브런치 글도 쓰지 않았는데 이제 손가락도 아프다. 남편의 관절염 증상과 같았다. 내 손가락도 늙어가고 있다. 늙어간다고 다 손가락이 아프지 않을 텐데 남편과 나는 손가락이 아픈 그것마저도 닮아가고 있다. 이런 건 안 닮아도 되는데.
연애하던 시절의 나와 남편은 젊었고 서로 좋아하니 웃음으로 쳐다보았을 것이다.
그 웃음이 예뻐 닮아 보이고 오누이로 보였을 것이다.
이제 나이든 얼굴이지만 더 넉넉한 웃음으로 세상을 보고 젊은 날엔 미쳐 보지 못했던 웃음 뒤의 세상도 두루 돌아보며 살아가면 더 좋은 모습으로 닮아가지 않을까?.
그리고 부디 아프지 않은 손가락으로 닮아가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우리는 바른 방향으로 닮아가고 있을까?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