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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Oct 11. 2020

아빠의 헌 양복, 아들의 생일선물이 되다.

부자 간 양복 체인지, 흐뭇하다.

10월 10일, 아들의 생일이다.

중국에서는 건국기념일로 이날이면 정부가 주최하는 축하행사가 이루어지는 쌍십절이다. 아들을 낳을 때만 해도 좋은 날 태어났다고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며 덕담을 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대체로 둘째는 순산한다던데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전문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나는 나대로 난산 끝에 아파서 병원 치료를 받느라 아들은 엄마도 없이 1주일을 입원하였다. 남편이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틈을 내어 병원을 가도 면회시간이 아니라 유리창 너머 먼발치에서 아들을 다만 보고 돌아왔다. 다른 아가들이 모두 엄마 아빠의 품에 안기는 면회시간에 아들은 혼자서 신생아 치료실에서 아파했을 걸 생각하면 두고두고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집중치료를 받고 온몸에 주사자국이 남은 모습으로 내 품에 돌아왔다. 모두들 걱정했던 장애 및 후유증 없이 건강하여 정말 감사했다.

 

다행히 아들은 건강하게 자랐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밥을 먹다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엄마, 엄마가 엄마 학교에서 제일 예쁘지?”

그렇게 엄마를 재미있게 해주는 아들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니 남자라 그런지 아빠 말을 더 잘 들었다.

내가 하는 말은 그냥 잔소리이고 그래도 아빠가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아들과 아빠의 관계는 차츰 남자 대 남자로 되어갔다.    

 

대학을 가더니 피나는 운동으로 비만의 굴레를 벗어나 빼빼 마른 몸을 만들어 멋을 내고 다녔다.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을 한 후에는 넓은 어깨, 탄탄한 허벅지를 만들기 위해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 양복을 입고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는 아들을 보면 어느새 크고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취업할 때 샀던 양복이 근육맨이 되어가는 아들의 몸에 비해 타이트해 보였다. 아들의 양복을 새로 장만해야겠다.  

  

아들이 건장한 청년으로 자랄 동안 남편은 두 자녀의 아빠로 열심히 살았다.


어느덧 중년을 지나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남편도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되는 나이, 자신을 챙겨야 할 때가 되었다. 아빠가 건강하게 사는 것이 자식의 걱정을 덜어주는 나이가 되었다. 올해 1월부터 남편은 건강한 삶을 위해 채소 및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다이어트를 하였다.   

 

남편은 다이어트에 성공하여 허리 사이즈가 조금씩 줄고 어깨며  등 전체적으로 슬림해져서 양복을 새로 장만하였다. 아직은 입을만한 남편의 헌 양복이 아까웠다.    


남편의 양복을 사면서 아들의 생일선물로 양복을 사줄까 했다.

버리려고 내놓은 아빠의 양복을 본 아들은 아빠의 양복을 입겠다고 하였다. 아들은 근육을 키우며 사이즈가 늘어 아빠 바지의 허리만 좀 줄이면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아들에게 작아진 양복도 버리려니 아깝고 아직 입을 만했다. 남편에게 딱 맞았다.

남편도 기꺼이 아들의 헌 양복을 입겠다고 하였다.    

아들의 생일케익! 초가 많네

어쩌다 보니 아빠의 헌 양복 두벌이 아들의 생일선물이 되었고 아들의 헌 양복은 아빠의 다이어트 성공 선물이 되었다.    


아들은 난산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백일쯤 되어 마약성 진통제까지 처방받을 정도로 많이 아팠었다.

의사 선생님이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면 먹이라고 준 진통제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들은 순한 성격으로 잘 참아주었다. 아픈데도 잘 먹고 잘 자서 우량아 수준으로 튼튼하여 병원에서도 모두 아이의 순함을 칭찬했었다. 그 후로 병치레 없이 잘 자라준 아들이 어느새 아빠만큼 자라서 아빠의 헌 양복을 입겠다니, 기특하다.    


아빠의 양복은 아빠의 삶이다.

아빠의 청춘이 있고 두 자녀를 키우며 행복했던 추억도 있다. 미생 시절의 직장생활이 완생이 되는 순간의 기쁨도 있고 때로는 어려움을 버텨내던 한 잔의 술도 있다.

   

아들의 양복 또한 아들의 삶이다.

아들의 젊음이 있고 아직은 사회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한 흔적이 가장 많다. 그래도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한 희망도 많이 담겨 있으리라 믿는다.  

   

부자간의 양복 체인지로 서로의 삶을 이해해주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아빠가 아들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가던 모습에서 이제는 서로의 양복을 나눠 입으며 어깨를 함께 하며 함께 걷게 된 것이다. 아들이 10대 시절에 시작했던 아들과 아빠의 남자 대 남자의 관계가 이제 완성되어 가는 것 같아 흐뭇하다.    


쌍십절에 태어난 우리 아들,

좋은 날 태어났다고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며 덕담을 해주는 사람들의 말에 어울리게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아빠의 양복을 입겠다고 한 마음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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