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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Oct 29. 2020

남편을 위한 나의 특별한 배려

못한다  VS 안 한다

나는 라면을 끓이지 못한다.(않는다)   

 

방문을 닫고 있는데도 매콤 기름진 냄새가 들어온다.

남편이 라면을 끓이고 있다.

입안에서 군침이 돌며 나의 입가에 웃음이 핀다.

화해를 요청하거나 남편이 나를 눈감아주는 것이다.

성급히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많이 화가 난 날은 (삐진 날)은 냄새를 풍기며 혼자 먹어 버리기도 한다.

남편이 나를 부른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라면을 먹는다.

앗싸 내가 이겼다.

남편이 끓이는 라면은 정말 맛있다.  

   

오늘따라 너무 피곤하고 삭신이 아프다.

골골대는 마누라를 위해 손가락이 아픈 걸 참고 남편은 계속 어깨며 허리를 주물러 준다.

“아파서 어떡하냐?”

“라면 먹으면 안 아플 것 같아.”

늦은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남편이 라면을 끓인다.

밤이라 좀 덜 맵게 한다며 평소보다 물을 조금 더 넣고 달걀도 넣어 맛이 부드럽다.

밤에도 라면은 맛있다.

희한하게 아프지 않고 잘 잤다.  

  

“오늘은 어떤 라면?”

그날의 입맛에 따라 나의 요구사항이 달라지며 이왕 끓이는 것이니 나에게 맞추어 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걀을 넣지 않고 국물이 아주 조금인 매콤 짭짤 라면,

김치를 넣은 김치라면,

밤에 먹는 부드러운 라면은 낮에도 괜찮다.

콩나물을 많이 넣은 콩나물 라면은 시원하고 아삭 거리는 맛이 좋고,

떡라면도 좋지만

소면을 조금 넣은 국수라면도 맛있다.

홍게 철엔 특별식으로 홍게 라면을 먹는데 그건 정말 맛있다.


(이제 건강을 위해 남편은 라면을 먹지 않는다.

나는 먹지 못한다 생각하니 더 먹고 싶어져 아주 가끔 남편을 배려하기 위해 먹는다.)

   


나는 커피를 못 탄다.(안 탄다)    


방문을 닫고 있는데도 커피 향이 들어온다.

남편이 커피를 타고 있다.

커피를 좀 덜 먹으라 하는데도 남편은 쉽지 않은가 보다.    

남편이 나를 부른다.

“오늘은 어떤 커피?”

“아아, 따아, 달달, 냉달?”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아메리카노, 따뜻한 커피믹스, 아이스 커피믹스.

내가 재료를 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못하지만 캐러멜 마끼아또도 해주었다.  

  

라면과 다르게 커피는 밤늦은 시간엔 주문이 안 된다.

그래도 먹고 싶다고 하면 디카페인으로 타 준다.    



지난 3월, 후배가 집에 왔다.

새로 옮긴 학교에서 업무가 많아 힘들다며 위로가 필요하다고, 명퇴 후 심심한 나와 놀아 줄 겸해서 찾아온 후배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였다. 불량주부였던 내가 명퇴 후 집밥에 정성을 들이던 때라 우엉 표고 밥, 된장국, 알 배추쌈, 불고기 등으로 식탁을 차리자 후배가 놀랐다.


식사 후 커피 타임,

캡슐커피를 내리지 못하는 주인 덕분에 손님이 커피를 탔다.

"선배! 밥은 맛있게 잘 하면서  커피머신에서 커피 내리는 거 쉬운데 왜 못해요. 이상하네. "

"아~ 그건 우리 남편 몫으로 남겨둔 거야. 남편이 날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으로. "

"역시 선배야. 이래서 내가 선배를 좋아해."   


 

남편은 우리 어머님의 귀한 맏아들로 경상도 남자이다.

다행히 "아는, 밥은, 자자."는 아니고, 다정하고 자상하다.    


나는 남편을 위해 밥도 하고 반찬도 하고 빨래도 하고 남편이 바쁜 젊은 날엔 독박 육아에 워킹맘으로 살았다.

혼자서 발을 동동거리고, 수시로 아프고 골골거리니 청소나 설거지는 많이 도와준다. 요즘엔 남자들도 요리를 잘하던데 남편은 요알못, 요리 숙맥이다.

그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커피와 라면이다.

   

그렇다.

커피와 라면은 남편을 위한 나의 특별한 배려이다.   

 

남편도 날 위해 뭔가 해 주어야 좀 덜 미안하지 않을까?

남편도 날 위해 뭔가 해 주며 뿌듯해하고, 소소한 행복을 좋아하는 나를 보며 흐뭇해하며, 때로 잘난 척도 한다. 30년 넘는 주부 내공으로 못할 것이 있겠냐만 나는 남편의 기쁨을 위해 커피와 라면은 남겨두었다.   

  

나의 특별한 배려 덕에 남편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계량컵이 있어야 밥물을 맞추는 나와 달리 남편은 손등으로 밥물을 맞출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고구마도 삶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배려는 끝없이 넓다.

남편을 위한 나의 특별한 배려에 밥하기와 고구마 삶기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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