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옮긴 학교에서 업무가 많아 힘들다며 위로가 필요하다고, 명퇴 후 심심한 나와 놀아 줄 겸해서 찾아온 후배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였다. 불량주부였던 내가 명퇴 후 집밥에 정성을 들이던 때라 우엉 표고 밥, 된장국, 알 배추쌈, 불고기 등으로 식탁을 차리자 후배가 놀랐다.
식사 후 커피 타임,
캡슐커피를 내리지 못하는 주인 덕분에 손님이 커피를 탔다.
"선배! 밥은 맛있게 잘 하면서 커피머신에서 커피 내리는 거 쉬운데 왜 못해요. 이상하네. "
"아~ 그건 우리 남편 몫으로 남겨둔 거야. 남편이 날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으로. "
"역시 선배야. 이래서 내가 선배를 좋아해."
남편은 우리 어머님의 귀한 맏아들로 경상도 남자이다.
다행히 "아는, 밥은, 자자."는 아니고, 다정하고 자상하다.
나는 남편을 위해 밥도 하고 반찬도 하고 빨래도 하고 남편이 바쁜 젊은 날엔 독박 육아에 워킹맘으로 살았다.
혼자서 발을 동동거리고, 수시로 아프고 골골거리니 청소나 설거지는 많이 도와준다. 요즘엔 남자들도 요리를 잘하던데 남편은 요알못, 요리 숙맥이다.
그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커피와 라면이다.
그렇다.
커피와 라면은 남편을 위한 나의 특별한 배려이다.
남편도 날 위해 뭔가 해 주어야 좀 덜 미안하지 않을까?
남편도 날 위해 뭔가 해 주며 뿌듯해하고, 소소한 행복을 좋아하는 나를 보며 흐뭇해하며, 때로 잘난 척도 한다. 30년 넘는 주부 내공으로 못할 것이 있겠냐만 나는 남편의 기쁨을 위해 커피와 라면은 남겨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