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12월을 잘 넘기게 해 주십사 기도를 한다. 12월 2일을 맞는 새벽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자는 남편을 보고 또 본다. 정확히 표현하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을 한다.
해마다 12월 7일이 되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다시 12월을 맞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를 한다. 12월 7일은 남편의 Second Birthday
이다. 남편의 두 번째 생일 케이크 촛불이 켜지고 두 번째 미역국을 먹는다.
남편의 생일은 두 개다.
하나는 어머님 날 낳으시고의 생일,
또 하나는 시어머니도 모르는 남편의 생일이 있다. 출생의 비밀 같은 막장은 없다. 감사의 기적이 있다.
바로 중환자실에서 살아난 생일이다.
2011년 12월 2일 새벽,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자고 있는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신음이 들렸다. 화장실에 가보니 남편이 동물이 포효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었다.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심정지가 오고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 중환자용 응급실에 들어가고 30분 뒤에 나온 의사는 내게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말을 아주 덤덤히 말했다.
“30분을 심폐소생술을 해도 환자의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 한 번 더 해보겠습니다만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눈물도 나지 않았고 의사의 덤덤한 말투가 나 또한 덤덤하게 만들었다. 그냥 멍하니 캄캄한 새벽하늘만 보았던 것 같다. 그냥 나의 간절함이 남편을 일으키는 데 힘이 되기만을 바랬다.
정확히 28분 후 되돌아온 의사는 또 덤덤히 말했다.
“다행히 심장이 뛰지만,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수 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 위험한 고비를 넘겼으니 오늘 밤 아니 이후의 모든 밤은 분명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혹시나 잘못될까 무서워, 남편의 얼굴도 못 보고 보내면 안 될 것 같아 의사 선생님을 조르고 졸라 아이들과 함께 남편을 보러 병실에 들어갔다. 혼수상태에서 사지가 묶인 채 의료용 기계에 목숨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힘내서 깨어나라고, 꼭 살아서 다시 보자고, 아이들과 나는 남편의 손을 잡아주고 나왔다. 울지 않았다. 우리가 씩씩하게 견뎌야 남편이 힘을 낼 것 같았다.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에 있었고 나는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 있었다.
낮에 보호자들이 있다가 밤이 되면 모두 집으로 간다. 나는 남편을 중환자실에 혼자 두고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찬 바닥에 상자를 깔고 눈을 붙이기도 했고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 지면 중환자실 벽에 내 얼굴을 바짝 붙이며 내 마음이 전해지길 바랐다. 그런 내가 안쓰러운지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이 많은 편의를 봐주셨다. 중환자실은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아무도 없는 밤에 남편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말없이 누워 있는 남편을 위해 수다를 떨고 노래도 불렀다.
중환자실의 밤은 무섭다.
고요한 가운데 갑자기 움직임이 빨라지면 뒤이어 통곡 소리가 들린다. 거의 매일 죽음을 보았다. 남편이 어서 일반병실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어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
병원에서는 나쁜 경우를 얘기한다.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과 나는 아무래도 괜찮았다. 남편이, 아빠가 살아있으면 되었다. 그걸로 충분히 감사하다는 생각이었다.
6일째 되는 날, 생사의 위험은 넘겼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니 초조하다.
병원 건물 뒤 조그만 마당에 가서 혼자 울었다. 남편이 쓰러지고 처음 울었다. 살려달라고, 이제 깨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울었다.
남편이 깨어났다고 급히 나를 찾았다.
남편이 정말 깨어났다. 손톱만큼의 장애도 없이 멀쩡히 살아왔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렇게 남편은 6일 만에 깨어났다. 병원에서도 기적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12월 7일은 남편의 Second Birthday가 되었다.
우리 집의 모든 생일 케이크는 주인공의 입맛과 상관없이 티라미슈 케이크이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먹는 유일한 케이크이기 때문이다. 2주 전 남편의 생일에도 그랬다.
이번 Second Birthday에는 생크림 2단 케이크이다.
딸이 아빠의 입맛에 딱 맞는 케이크를 준비했다. 남편은 딸이 사 와서 더 맛있다고 좋아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보쌈, 내가 직접 만든 겉절이와 굴, 대방어회, 가리비찜, 홍합탕, 미역국, 생일상도 근사하다. 딸이 사 온 머플러를 두르고 기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