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를 이용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는 부추 부침개, 부추김치, 오이소박이 소, 부추 무침이 전부다. 콩가루에 버무려 살짝 찐 후에 양념장을 얹어 먹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너무 번거로워 주로 부침개나 무침이 다였다.
부추는 비타민과 당질이 풍부하고 특히 활성산소 해독 작용, 혈액순환 원활, 항암효과까지 있을 뿐 아니라 별다른 부작용도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몸에 좋은 부추를 우리 집에 봄부터 여름까지 택배로 보내주시는 분이 있다. 바로 우리 시어머님.
혼자 지내시는 어머님은 당신이 드실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조그마한 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무농약으로 키우시고 수시로 수확하여 도시에 사는 우리들에게 보내신다. 주로 부추, 상추, 풋고추, 깻잎 등을 보내시는데 어머니의 수고로움과 마음을 알기에 택배를 받자마자 이리저리 소분하여 하나도 손실 없이 먹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어머님 표현으로 ‘아시부추’라고 하는 첫 수확한 부추는 약 부추라 불리며 정말 부드러운 새싹 부추이다. 마트에서 사 먹는 굵고 실한 부추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첫 수확물이니 영양도 특별하다며 행여 택배로 오는 기간 동안 상할까 봐 신문에 싸고 또 싸서 보내신다. 아시부추는 너무 부드러워 김치를 담을 수도 없고 부침개로 하면 기름에 녹을 것 같아 무침으로만 먹었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되면서 부추나 상추가 많이 자라게 되면 그때부터 어머님은 상자 가득 꽉 차게 담아서 보내신다.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은 남편과 나, 둘 뿐이고 그나마 저녁 한 끼 정도이니 그 많은 상추와 부추를 먹어내기가 벅차다. 지인들과 나누어 먹어도 우리는 한참 동안 택배 상자 털이를 위해 열심히 먹어야 했다. 상추는 그나마 쌈으로 먹고 무침으로도 먹고 저장기간이 부추보다 길어 김치냉장고에 저장하면 오래도록 먹을 수 있는데 문제는 부추이다. 먹어도 먹어도 남은 부추가 상해서 버릴 때가 많아 어머님께 죄송한 마음이 많았다.
명퇴를 하면서 남편의 건강 식단을 짜던 중 새싹보리가 좋다 하여 집에서 길러 직접 새싹보리가루를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어머님의 부추가 생각났다.
올해부터는 부추 가루를 만들어 보리라.
“어머님, 부추 많이 보내주세요.”
“그 많은 정구지(경상도에서는 부추를 정구지라 함)를 다 우얄라꼬?”
“부추 가루 만들어서 어머님 아들 먹이면 좋을 거 같아요.”
“정구지로 가루를 만들 수 있나? 니 힘들낀데 그냥 먹는 대로 먹고 말아라.”
며느리 힘들까 봐 걱정스러운 말씀은 하셨지만 그 뒤로 우리 집은 남편 표현에 의하면 “부추 지옥”이 되었다. 장마가 길어져서 지금은 보내시지 못하지만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상자 가득 부추 택배가 왔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부추 가루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부추를 깨끗이 씻어 살짝 찐 후 건조기에 말려 분쇄기로 갈면~ 끝.
그러나 실제는 간단하지가 않았다.
우선 부추 양이 너무 많아 부추 밑단 정리가 꽤 오래 걸리고 깨끗이 씻는 것도 힘들며,
조금씩 여러 번 쪄내서 한 김 식힌 후,
건조기에 말리는 것이 가장 번거로웠다. (건조기를 위아래 위치를 바꿔가며 골고루 말려야 함)
그리고 부추를 말리면서 나는 냄새가 맛있지 않아서 처음엔 주방에서 하다가 나중에 베란다로 옮겨서 했다.
마지막으로 잘 말려진 부추를 분쇄기에 가는 것도 꽤 정성이 필요하다.
씻고, 찌고, 한김 식힌 후, 건조기에 말려, 부추가루 탄생
엄청난 양의 부추를 말려도 가루는 정말 조금밖에 나오지 않는다. 건조할 때의 냄새는 별로이지만 부추 가루는 희한하게 부추 부침개의 기름진 고소한 향이 난다. 그것을 삼겹살 구울 때에 뿌려서 먹어도 되고, 고기를 구운 후 찍어먹어도 맛있다고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 새싹보리가루와 함께 한 스푼씩 토마토 스튜나 야채즙에 섞어먹는 걸로 이용한다.
봄의 아시부추부터 여름의 실한 부추까지 어머님이 보내신 부추를 가루를 만들다 보니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활용할 수 있어 그것이 제일 다행이고 좋았다. 장마가 끝나고 나면 또다시 택배가 올 것이고 번거롭지만 나는 또 부추 가루를 만들어야 한다.
씻고~ 찌고~ 말리고~ 갈고~
고소한 향만큼 영양만점 부추 가루는 1년 내내 부추를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방법이다.
살짝 귀차니즘이지만 땀 흘려 농사지어 택배를 보내시는 어머님의 정성에 감사드리며, 남편의 건강을 위해 한나절의 수고로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