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르트가 처음 출시되어 새로운 맛의 건강한 음료라며 남녀노소 모두 맛있게 먹을 때 나는 그것을 먹지 않았다. 뚜껑이랄 것도 없이 손으로 살짝 뜯어내거나 빨대를 꽂아 먹는 모습도 이상해 보였고 익숙한 것만 먹던 습관이 있어 엄마가 아무리 권해도 먹지 않았다. 한참을 지나 아무도 나에게 요구르트라는 것을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을 때쯤 먹었던 것 같다. 촌스러운 입맛에 느끼한 것과 단 것을 싫어하여 먹는 것에 대한 선택의 폭이 좁다. 피자는 한쪽이면 충분하고 햄버거는 치즈를 빼고 한 입 정도, 크림이 들어간 빵이나 케이크, 과도하게 단 마카롱 등은 정말 싫어하는 음식이다.
처음 먹어본 콩국수도 그랬다.
국수려니 하고 먹었는데 콩국물도 비릿하여 소금을 많이 넣어야 먹을 수 있었고 깨작거리며 먹다 보니 면이 불어 더 맛이 없었다. 싫어하는 음식이 되었다.
남편은 음식에 대해 호불호가 없으며 굳이 따진다면 내가 싫어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심지어 마요네즈를 빵에 발라먹는 것도 맛있다는 사람이니 나와는 입맛이 완전 반대이다. 콩국수도 좋아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콩국수는 일반 콩국수가 아니다.
서울의 S기업 뒷골목 어느 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었다는 쫄면 콩국수이다. 오래전에 남편은 그 회사를 퇴사하였고 그 후 회사도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그 식당이 아직 그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문제는 우리 주변엔 쫄면 콩국수를 파는 곳이 없고 남편은 그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지나간 젊은 시절에 열심히 일하고 난 후에 먹었던 쫄깃하고 고소한 콩국수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싶다. 그때의 그의 인생도 가장 쫄깃하고 고소했을 때였었다.
문제 해결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집에서 직접 쫄면 콩국수를 만들어 먹는 것. 다행히 콩물은 내가 만들 수 있다. 친한 선배 선생님이 여름이면 늘 콩물을 직접 만들어 주셔서 맛있게 먹고 만드는 방법을 배웠었다. 이렇게 써먹을 줄은 ㅎㅎ
STEP 1 콩 삶기
콩물 만들 때에는 콩 삶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너무 오래 삶으면 살짝 메주 냄새가 나고 덜 삶으면 콩비린내가 난다. 우리 집에서는 주로 서리태콩을 이용한다.
<콩 삶는 법>
콩을 깨끗이 씻으며 물 위에 뜨는 콩과 모양이나 색이 이상한 것은 버린다.
콩의 2배 정도의 물에 담가 하룻밤 불린다.
불린 콩과 물을 냄비에 넣고 강한 불로 끓이다가 물이 넘칠 때 뚜껑을 열고 약불로 1분만 더 끓인다.(마지막 약불로 1분이 중요)
넓은 볼로 옮겨 담아 찬물에 식힌다.(삶은 채로 냄비에 두면 남은 열기로 더 익게 됨)
STEP 2 콩물 만들기
알맞게 식은 콩을 껍질 채로 믹서기에 넣는다.
(콩껍질에도 영양소가 많으므로 따로 걸러내지 않는다)
집에 있는 각종 견과류와 깨, 생수, 약간의 얼음을 넣어 믹서기에 곱게 간다.
(후루룩 마실 정도로 입자를 곱게 한다.)
이때 소금 간은 하지 않고 보관하여 두유로 먹거나 콩국수로 먹을 때 각자 입맛에 맞게 간을 할 수 있도록 한다.
STEP 3 쫄면 삶기(남편 담당)
먼저 쫄면을 한 가닥씩 뜯어놓는다.
물이 끓으면 면을 넣고 4분 ~ 5분만 삶는다.
냉수로 빨래하듯이 여러 번 치대어 헹구어 물기를 쏙 뺀 후 그릇에 담는다.
STEP 4 고명 준비
제철에 맞는 채소와 과일, 삶은 달걀을 준비하여 얹는다
(우리 집에서는 주로 새싹 채소, 토마토, 오이 등을 준비한다.)
STEP 5 쫄면 콩국수 맛있게 먹기
면기에 물기를 뺀 쫄면을 담고 콩물을 부은 후 고명과 함께 마지막으로 참깨를 뿌리면 맛있는 콩국수 완성
(콩물 만들 때 깨를 넣었어도 참깨를 뿌려야 고소한 맛이 씹히며 더욱 고소해짐)
처음엔 그저 남편을 위한 음식으로 해주었는데 콩국수의 비릿함도 없고 무엇보다도 한참을 먹어도 불지 않는 쫄면의 쫄깃거리는 식감이 좋아 이제는 나도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이렇게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 가지 더 늘었다.
콩은 영양성분도 우수하여 특히 갱년기인 우리 부부에겐 좋은 식재료이다.
밤새 불린 콩을 에어프라이에 돌려 구운 콩으로 먹기도 하지만 후루룩 마시는 콩물이 먹기에 훨씬 편하다. 콩물을 만들어 놓고 콩국수로도 먹고 아침 대용으로 콩물 한잔도 좋다.
남편은 쫄면 콩국수를 먹으면 늘 그 시절을 말한다.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 날이 있었으니 지금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 다행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하는 날이 거의 매일이었던 일상, 주말도 반납하며 출근했었는데 그래도 그때가 좋았나 보다.
퇴근 후 KFC에서 프라이드치킨을 사들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자면 치킨 냄새로 버스 안에서 민폐를 끼쳤다고 옛날이야기도 하며 먹는 쫄면 콩국수라 더 맛있나 보다.
나도 그때가 그리워진다.
아기였던 우리 아이들이 있고 열심히 일하며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던 젊은 시절의 남편이 있었다. 서툰 솜씨로 아이들 이유식 만들어 먹이고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저녁을 준비하던 젊은 시절의 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