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맛있는 크리스마스
봄 동안 열심히 새싹을 키워 샐러드로, 비빔밥으로, 월남쌈으로, 새싹 김밥 등으로 잘 먹었다. 처음 해보는 방구석 텃밭이라 거의 두 달을 새싹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그러나 키우는 만큼 잘 먹어주어야 하는데 별 다른 레시피 없이 돌려가며 내놓는 새싹 메뉴에 식구들은 젓가락질이 줄어들게 되었고 나도 매일 물을 주고 갈아주어야 하는 것이 싫증이 나서 농사를 접었다.
3월에 처음 새싹 씨앗을 준비할 때 너무 많이 샀다. 그때는 남편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할 것이란 굳은 각오를 할 때라 인터넷 검색 창에 뜨는 건강 관련 새싹이란 새싹은 모두 샀던 것이다. 봉지 당 겨우 20그램, 많아야 30그램 정도로 포장되어 나오니 양이 얼마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남겨진 씨앗이 상할까 봐 냉장고에 넣어두고 깜박해버렸다.
냉장고 청소를 하다 잊고 있던 새싹 씨앗을 발견하여 다시 방구석 텃밭 시작.
봄에는 하룻밤을 불려 다음 날 아침에 뿌리면 이틀 정도 지나야 싹이 나고 일주일 정도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해야 다 자란 새싹을 얻을 수 있다.
늘 하던 대로 물에 불리려다 고온다습한 장마철이라 불리는 단계를 패스해도 될 것 같아 바로 재배 상자에 골고루 뿌렸다. 전날 저녁에 준비하고 잤는데 다음 날 아침 노란 싹이 나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나온 싹이 반가웠다. 공기 중에 수분도 많고 온도도 높으니 그런가 보다 하며 물도 아침에 한 번만 주고 일주일을 기다기면 되겠거니 했다.
웬걸,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쑤욱 자라 연둣빛 새싹이 되어 있었다. 삼일 째 되는 날엔 진한 초록의 다 자란 새싹이 되었다.
장마철이라 눅눅하고 폭우로 인한 피해 소식도 많아 나까지 눅눅해져 있었는데 3일 만에 다 자란 귀여운 새싹을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모두 다 나쁘지만은 않다는 신호를 주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은 3일 만에 기쁜 신호로 나를 웃게 한 새싹으로 맛있게 한상차림, 월남쌈.
이제 다시 해가 나고 비가 그치면 예전의 루틴으로 천천히 자라겠지만 지금은 3일 천하, 8월 농사의 기쁨을 준 새싹, 8월의 맛있는 크리스마스가 되어 어떻게 먹어도 결론은 맛 있 다. 그리고 고 맙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