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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Aug 02. 2020

美치도록 味친 부침개는 나 혼자 먹었어야 했다.

비오는 날  , 그  기름진 유혹

남편은 부침개를 좋아한다. 기름에 지져 고소한 냄새가 나는 부침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랴마는 비가 오는 날이나, 마트의 예쁘게 생긴 배추를 보면 꼭 내게 부탁한다.

“오늘 저녁에 부침개 먹고 싶은데......”    


남편의 최애 부침개는 경상도 사람들만 먹는다는 배추전. 널따란 배춧잎을 부침가루 살짝 입혀서 기름 둘러 노릇노릇 부쳐내면 이파리 부분은 기름에 튀겨져 고소하고 줄기부분은 배추의  수분기가 남아있어 시원하고 달달하다. 그리고 보통의 부침개는 식으면 기름이 겉돌아 맛이 없는데 배추전은 식으면 더 맛있다. 시어머니께서 남편의 입대 후 첫 면회 때에도 배추전을 해 오실 만큼 배추전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나도 경상도 사람이라 어릴 적에 배추전을 먹고 자랐어도 그 맛을 잘 몰랐는데 남편의 배추전 타령에 장단 맞추어 살다보니 어느새 나도 배추전을 좋아하게 되었다.  

   

비 오는 날의 부침개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기름이 지져지면서 나는 소리가 빗소리와 닮아서 더 맛있다는 말도 있지만, 비오는 날의 눅눅함을 뚫고 들어오는 맛있는 고소함의 유혹은 내가 직접 음식을 준비해야하는 귀찮음도 이겨내어 부침개를 해달라고 하는 남편의 부탁을 대부분 들어준다.    


부침개와 막걸리 한 잔, 그것은 남편은 소소한 행복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우리 집에서 부침개는 하지 않기로 했다. 정확히 말해서 남편은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되었다. 福을 주는 여자(부제: 내 남편은 불사신,  https://brunch.co.kr/@ibjk65)의 시술 이후 남편의 밥상이 다이어트 식단에서 건강 식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비가 아무리 와도, 마트의 배추가 제 아무리 이쁘다해도 우리 집에서 부침개는 더 이상 없기로 했다. 아니 내가 그렇게 한다고 선언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는 동맹희생을 감내하기로 하였다.   

 

어제는 오락가락하던 비가 오늘은 하루 종일 내린다. 주말 내내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기도 해서 집 앞 개천으로 산책을 갔다. 나온 김에 단팥빵을 사자는 남편의 말에

“단팥빵은 탄수화물 덩어리이고 얼마나 기름과 설탕이 많은데 그걸 먹으려고 해? 안 돼.”

단호히 말해놓고

“ 나도 부침개 먹고 싶은데 참는 거야. 자기 때문에 나까지 못 먹어서 짜증나.”  

  

실제로 그랬다. 올 1월부터 7개월이 되도록 남편의 식단을 조절해왔다. 평소에 잘 먹지 않던 것도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먹고 싶고 괜히 남편한테 심통을 부리기도 했다. 다이어트 중이거나 단식원에 있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음식이름만 말한다고 하더니 내가 딱 그 꼴이다. 삼겹살 집 앞의 지글지글 기름진 냄새를 맡은 날은 내일은 꼭 삼겹살을 구워먹어야지 했다가도 다음 날은 정신을 차리고 남편과 함께 드라이한 음식을 먹고 야채를 먹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가끔 짜증도 났다.

    

“나는 안먹을테니 부침개 해서 먹어.”

“정말 안먹을거야? 그럼 나 혼자 해서 나 혼자 다 먹는다. 먹겠다고 하기 없기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나는 어느 새 냉장고에서 부추와 곁들일 야채를 꺼내고 있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딱 부침개 한 장의 분량만 준비하기로 했다.

먼저 시어머니께서 유기농으로 키워 보내주신 부추 한줌과 고추, 그리고 이쁨과 영양을 담당할 약간의 양파, 당근, 빨강 노랑 파프리카 준비하고

부추의 맛을 살려야 하므로 다른 야채는 사알짝~조금만

두 번째로, 겨우 풀칠만 할 정도의 부침가루와 소금 한 꼬집, 찬 물을 넣어 버무린 후

부침가루도 아주 조금

세 번째로,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 휘리릭

네 번째로, 프라이팬에 바른다할 정도로 얇게 펴주고 지글지글 ~~

얇게 펴 바른 후 뒤집개로 눌러주기

이게 얼마 만에 맡아보는 고소한 기름내인가?

비오는 날 나만을 위한 부침개라니, 도마에 썰어서 먹는 것은 부침개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접시 채로 놓고 젓가락을 돌려가며 찢어 먹어야 제 맛이지 ㅋㅋ    

두둥~~~식탁 위에 올려놓으니 초롱노랑빨강 부침개가 이쁘기도 하다.

게다가 맛있게 생긴 부침개를 보니 영감이 딱 떠올랐다.

이름하여 美치도록 味친 부침개.


   

“ 우와, 맛있겠다!!! 진짜 안 먹어?”

“ 안 먹어. 혼자 다 먹어.”

“ 그럼 나 혼자 다 먹는다.”

.

.

.

남편도 좋아하는 음식을 혼자 먹으니 내가 뺑덕어멈같다.

“오랜만에 먹으니 진짜 맛있다. 조금만 먹어봐.”

“안 먹어.”

“조금만 먹어봐. 맛있어.”

“그럼 성의를 봐서 조금만 먹어볼까.”

“맛있지? 그치.”    


그러지 말아야했다. 한 장만 하기로 해놓고 어느새 내 손에 욕심이 한가득 이었는지 부침개는 두 장이 되어있었고, 비오는 날의 고소하고 기름진 유혹을 이겨내고자 꿋꿋이 있던 남편을 부르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남편은 고소한 유혹과 나의 유혹 이 두 가지를 모두 이겨냈어야했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씀을 굳게 믿는 수밖에 없다. 남편은 부침개 몇 젓가락 먹은 후 야채 도시락 한 통을 다 먹는 것으로 어떤 미안함을 만회했다.


하지만 나는 이 기름진 고소함의 행복을 누리련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맛있는 일탈을 꿈꾼다.

“ 삼겹살이 먹고 싶다. 6개월 동안 안 먹었는데 한 번 먹으면 어때? 삼겹살 먹을 땐 남편은 절대 안부를 거야. 남편 없을 때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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