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줌마 May 01. 2021

부추를 빨랫줄에 널었다네요.

어머님은 사랑을 높이 널었다.

시어머니의 택배는 1년 내내 연중무휴이다.

그중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유기농 채소가 대부분이다. 아들의 건강을 위해 고이 길러 보내주시니 감사히 먹는다. 사위도 주지 않는다는 아시 정구지로 시작된다. 경상도 사투리로 정구지라 불리부추는 우리 어머님의 종목이다. 몸에 좋다고 많이 보내주시는 것은 고마운데 여름이 되면 택배로 오는 동안 부추가 무르면서 냄새도 나고 해서 봄에는 생나물로, 여름엔 거의 부추김치를 담으셔셔, 늦가을이 되면 다시 가을 부추라고 생나물로 보내주신다.


 작년 여름, 남편의 건강을 위해 부추 가루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귀차니즘이지만 부추 가루를 만듭니다. 에 썼듯이 부추가 너무 많이 와서 궁여지책으로 부추 가루를 만들게 되었다. 아들의 건강식을 만든다니 어머님의 부추 택배는 더욱 잦아졌다. 며느리가 직장을 다니며 힘들게 부추 가루까지 만든다고 걱정하셨지만 별로 어렵지 않다며 그냥 부추를 찌고 말려서 갈면 된다고, 일도 아니고 간단하다고 말씀드렸다. 아무튼 작년 한 해 열심히 부추 가루를 만들어 냉동실에 쟁여두었다. 한참 동안 먹을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이 되면서 어머님의 유기농 채소 택배가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하여 아시 부추는 한 줄기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열심히 먹었다. 그런데 부추가 올 때가 되었는데 오지 않는다. 어머님이 바쁘신지 아니면 새로 이사 간 지역에 택배기사는 전화해도 잘 오지 않는다고 우체국까지 무거운 것을 들고 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힘드셔셔 보내지 않으시려나. 너무 많이 와서 부담이 될 때는 귀한 줄 모르고 제대로 보관을 못해 상해서 버리기도 하고, 부추 가루 만들기가 귀찮아서 가끔씩 투덜거리기도 했는데 정작 부추가 오지 않으니 살짝 아쉽다. 게다가 어머님의 부추에 맛 들여진 우리에게 마트의 부추는 더 이상 부추가 아닌데, 낭패이다.


"네? 부추를 빨랫줄에 너셨다고요? 아이고 배 아파. 우하하"

어머님과 통화하다 웃음이 터져버렸다.

어머님 동네 빨랫줄에는 부추가 널려있다.


 옛날에 방영했던 TV의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에 문제를 내도 될 법하다.

"대구 어느 동네에 가면 빨랫줄에 (             )가 걸려 있다." 아무도 맞추지 못할 것이다.


사건은 어미님 동네 친구분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작년, 부추가 자라는 족족 한 상자 가득가득 담아 택배를 보내는 어머님을 보고 친구분이  도대체 그 많은 부추를 어떻게 다 먹으라고 보내냐며 며느리가 싫어할 것이라 그만두라고 하셨단다. 그 참에 며느리가 아들을 위해 부추 가루를 만든다고 동네방네 며느리 자랑을 하셨나 보다. 부추 가루를 만들어 먹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하시며 나는 졸지에 직장 다니며 살림도 잘하고 부지런한 며느리가 되었다.


 올봄, 부추농사를 짓는 친구분이 당신 아들에게 만들어 보내겠다며 부추 가루 만드는 방법을 어머님께 알려달라고 하셨다.

총기가 좋으신 우리 어머님은 며느리가 말했던 일도 아니고 간단한 방법을 기억하시고 알려주셨다.

"별로 어려운 거 없다카더라. 찌고 말려서 갈면 된다카더라."


 친구분이 아들에게 부추 가루를 만들어 보내신다니 어머님도 그 방법을 택하셨다.

힘들게 우체국까지 무거운 것을 들고 가는 수고도 덜고, 말려서 가루를 만들면 무게와 부피도 줄어드니 택배비도 훨씬 줄어들고, 며느리가 만드는 수고도 더니 일석삼조이다. 다른 친구분들도 아들을 위한 일이라니 너도나도 부추 가루 만들기에 동참하셨다.


 부추를 다듬는 일도 여간 쉽지 않다.

솥에 김을 올려 부추를 찌는 것 까지는 했다.

이제 말리면 된다. 빨랫줄에 부추를 널었다.

물기가 있는 부추는 조금씩 널면 떨어지고 뭉쳐서 널면 잘 마르지 않고 보통 문제가 아니다. 수시로 뒤집어 줘야 하고, 이놈의 미세먼지와 황사는 왜 이리 잦은 지, 며칠째 말리고 있다. 비라도 오면 큰 일인데 봄비 소식도 있다. 그전에 다 말려야 할 텐데. 시래기나 우거지는 빨랫줄에 널어도 잘 마르던데 정구지는 왜 이리 말썽이냐.

말리기만 하면 딸네 집에서 분쇄기를 가져와 갈면 되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며느리는 이것을 어떻게 말렸을까? 이 번거로운 일을 한 며느리가 대단하다.


 "야야, 니는 우째 정구지를 말렸노?  베란다 건조대뿐 아니라 빨랫줄을 만들어 걸어놨는데도 도통 마르지가 않네. 이러다 이 많은 정구지 버리는 거 아이가."

답답한 어머님은  내게 노하우를 구하러 전화를 하셨지만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 우하하 거리며 건조기에서도 몇 번을 뒤집고 하며 손이 많이 가야 잘 말린다고 하니

"그랬더냐? 난 니가 그냥 찌고 말리고 갈면 된다고 쉽다하길래 해봤더니. 이렇게 어렵고 번거로운 일을 어떻게 했노?"

"어머님, 이번에 만든 부추 가루는 어머님 드시고 저는 그냥 부추를 보내주세요. 제가 만들어 먹을게요."

근처에 사는 시누이에게서 건조기와 분쇄기까지 공수해와야 어머님의 부추 가루 만들기는 끝이 난다. 그 이후에 어머님의 부추 가루에 대해서는 여쭤보지 않았다. 혹시 실패하셨을까 봐 ㅠㅠ


 아직도 부추는 오지 않고 있다.

아마 아들을 위한 부추 가루를 위해 온 밭의 부추는 다 베신 모양이다. 부추는 엄청 잘 자라는데 다시 자란 부추로 혹시 부추 가루 만들기에 재도전하시는 중일까? 시누이의 건조기와 분쇄기까지 어머님 댁에 있으니 정말 그러시려나. 그래도 여간 힘들고 귀찮은 일이 아닌데.


장정욱 시인의 '빨랫줄 저편'을 빌려 어머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어머님은

사랑이

늘어지지 않도록

바지랑대를 세워

높이

부추를 널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그치만 부추 가루 만들기 쉽지 않아요. 그냥 제가 할게요.


여보!

어머님 댁에 식품건조기 한 대 넣어드려야 할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美치도록 味친 부침개는 나 혼자 먹었어야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