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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Sep 17. 2020

혜자스럽게 살고 싶었다.

그래, 이 맛으로 살아야 해

“아줌마~~~ 물~~~” 부러웠다.

 딱히 상냥하다 하기에도 그렇고, 부탁한다고 하기에도 그런,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기~일게 늘여 부리는 사람을 부르는 TV 속 그 장면의 배우를 보고 그렇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학생이었던 그때의 나도 그렇게 사는 건 아무나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며 말을 했다.

심심하면 “아줌마~~~ 물~~~”을 주위 사람 눈치채지 못하게 연습하고 키득거리며 그 상황 속 부잣집 사모님이 되곤 했다. 내 친구랑 둘이서만.  

   

그 배우가 김혜자님이다.   

 

그 후 TV 속 부자 사모님은 인자한 한국형 엄마가 되어있었다.

전원일기에서 부드러운 아내, 효심 깊은 며느리, 살가운 시어머니가 되었고 특히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지막한 톤의 느릿느릿한 시골 말투는 정겨워서 사람 그 자체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 또한 아무나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으며 나는 이미 부잣집 사모님에 빠져 있어서 인자한 한국형 엄마에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김혜자님이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한국의 국민 어머니상으로 불리는 여배우지만 실제로는 요리실력이 영 좋지 않을뿐더러 남편도 김혜자님이 집에서 살림하기보다 연기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편이어서,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하였다. 서민 어머니 연기를 많이 했지만, 어릴 적 집의 거실만 200평이었고 매일같이 댄스파티가 열렸다고 하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살림은커녕 자기 몸 돌보는 수준의 생활도 매우 서툴다고 하였다. 인간미가 느껴졌다. 그 나긋한 목소리와 웃음이 인터뷰 내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그녀에게서 소녀가 보였고 사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그때 나는 엉뚱한 꿈을 꾸었다.


“그래, 나도 저렇게 살거야. 다소 철없는 듯 보이나 소녀처럼 행복한 삶, 나의 삶을 사랑스럽게 만들거야.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면서 살거야. 여자라고 꼭 요리를 잘하고 집안일을 잘해야 하는 건 아니야”

어찌보면 페미니스트적으로 보여지겠지만 그건 완전한 나의 영악함이었다.

“아줌마~~~물~~~.”을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연습하였다. 그땐 철이 없을 때이니.    


하지만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며 나는 더이상 “아줌마~~~물~~~.”을 연습하지 않았고 내가 잘하는 일만 할거야라는 생각은 잊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 되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고 바쁜 남편은 마음만 김혜자님 남편이었지 그도 살아내느라 힘들었다.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닌 수많은 일을 해내느라 혹은 해치우느라 어릴 적 꿈은 그냥 꿈에 그치고 말았다. 현실이 그렇지않음을 그나마 늦게 깨달은 것에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철이 들면서 나의 엉뚱한 꿈은 스멀스멀 사라져버렸다.   

 

나와 “아줌마~~~물~~~.”을 연습하던 친구가 실제 김혜자님과 사적으로 인연이 되어 만났다고 했다.

김혜자님에게 얻었다는 oo제품을(식품) 내게 조금 주며 당신이 oo제품의 CF모델이라 그 제품을 애용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책임감 있는 행동이 멋있었다.    


어느 날, TV에서 그녀가 울고 있었다.

연예인들이 방송국 카메라와 함께 해외 봉사하러 가고 그 내용을 영상으로 담은 것인데 처음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죽어가는 아이들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몸을 떨며 울기만 하는 모습이었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20여 년간 자신의 긴급구호 활동을 정리한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보며 정말 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표본에 존경을 표했다.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도 서툴다고 하시던 분이 열악한 환경에서 아픈 아이들을 보듬자면 힘들었을 텐데. 따뜻하고 건강한 마음을 실천하는 행동이 멋있었다.    

그 이후로 김혜자님의 삶은

‘마더 혜레사’,

로울 혜(惠) 자에 너그러울 자(慈) 자를 써서 은혜롭고 자비롭다는 뜻으로 ‘혜자스러움’

이 되었다.   

 

이제는 철이 든 입장에서 김혜자님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다소 엉뚱하고 영악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꿈이 넉넉함이 있는 따뜻한 마음을 바르게 실천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비록 스케일은 다를지라도 나도 혜자스러움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나의 엉뚱한 꿈의 반은 이루어짐을 당했다.

남편의 공치사 : “아줌마~~~ 물~~~” 대신에 “자기야~~~물~~~~” 이 되었고 물뿐 아니라 커피도 대령하니 이만 하면 되었다.


나머지 반은

전원일기의 국민엄마처럼 환하게 웃으며

인터뷰 속의 인간미 있는 모습으로

실생활에서 책임감 있는 멋진 행동으로

따뜻하고 건강한 마음의 혜자스러움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보아야겠다.    


철없던 중학생일 때도 알았던 사실, 아무나 쉽게 하지 못하는 일임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김혜자님의 선한 영향력이 지금 내게 미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 감사한 일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을 것이니 환하게 웃으며 내달려보자.    

이미 반은 이루어졌고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으니 그럼 나는 다 이루어진건가? ㅎㅎ


이래서 나는 안돼.

이것이 내가 혜자스럽게 살고 싶다는 가장 큰 이유이며 절실한 필요조건이다.    


“그래, 이 맛으로 살아야 해” 나를 칭찬하는 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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