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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Sep 21. 2020

시어머니는 센스마저 알뜰하다.

라텍스 장갑 한 짝은 아들을 위한 사랑이었다.

우리 집 식탁을 건강하게 해주시는 어머님은 택배를 보내시기 전에 꼭 전화하신다.

철저한 수요자 중심의 공급자이시다. 무엇이 필요한지, 또 어떠한 형태로 받기를 원하는지, 어느 정도의 양이 필요한지 정확히 파악하여 요구에 맞게 정리하여 보내신다. 정성 들여 보내시는 물품이 냉장고에서 상하거나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시다. TV에서 간혹 시골에서 올라온 음식물이나 야채 등이 며느리의 취향에 맞지 않아 버려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보신 것 같다.   

  

“정구지는 그냥 보낼까? 김치를 쪼매 담아줄까?”

“김치 담아주면 저는 좋죠. ㅎㅎ 조금만 담아주시고 나머지는 그냥 주세요.”

“고구마 줄기는 반은 까서 보내고 반은 그냥 보낸다. 깐 거는 바로 먹어야 하니 손질해야 하는데 너무 많으면 니가 힘드니 반만 까서 보내마. 나머지는 주말에 애비시켜서 까도록 해라.

그리고 고구마 줄기 넣고 갈치 조림하니까 맛있더라. 그렇게 해먹어 보거라”

“들깻가루는 꼭 냉동실에 넣고, 깐마늘은 비닐에 있으면 상하니까 물기 닦아서 꼭 타파통으로 옮겨서 냉장실에 넣어라. 이번에 새로 한 된장이 맛있으니 된장찌개 맛있을 거다. 그리고 맛간장은 내가 표고, 멸치, 양파, 고추 등 넣어서 맛있게 달인 것이니 아껴서 잘 먹고 나머지는 니가 요량껏 잘 해먹거라.”   

 

어머님은 나의 요구사항을 잘 들어주시는 반면 당신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정리법 및 요리법도 말씀해주신다. 어머님의 노고와 정성을 알기에 택배가 올 때마다 하시는 말씀을 처음 듣는 것처럼 리액션하며 “네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이번엔 택배 백화점이다.

고구마 순(줄기를 깐 것, 까지 않은 것), 깐 마늘, 참기름, 직접 달여 만드신 맛간장, 된장, 호박, 가지, 파, 들깻가루, 부추김치, 부추, 깻잎, 호박잎   

 

어머님의 택배를 받고 나서 정리 후에 바로 무사도착 보고 전화를 드려야 한다.

당신이 보내신 물품이 아들 집에 무사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으셔야 마음이 놓이시는 것 같다. 혹시라도 다른 집으로 갔을까? 보내신 물품이 상하지나 않았을까 걱정하시기에 부리나케 정리하고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정구지김치 엄청 맛있어요.”

“그랬더나, 다행이다. 그럼 마이 담아보낼낀데.”

맛있다는 말에 어머님의 목소리가 하이톤이 되었다.

“고구마 줄기 깐거 안농했더나.”

“괜찮아요.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구마 줄기 깔고 갈치 조려 먹으면 맛있다.”    

    

어머님이 시키신 대로 남편이 고구마 줄기 까는 담당이 되었다.

비닐봉지를 열어보던 남편이 고구마 줄기 위에 가지런히 놓인 파랑색 라텍스 장갑 한 짝을 발견하였다.    


팔이며 어깨며 아프다고 노래를 하는 며느리를 대신하여 아들에게 고구마 줄기를 까라고 시키셨는데 사랑하는 큰아들의 손톱 밑이 까매질까 봐 라텍스 장갑 한 짝을 넣으신 것이다. 넣으려면 두 짝을 넣지 구시렁거리는 남편은 그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라텍스 장갑은 자식 사랑이며 센스였다.    


어머님은 센스마저 알뜰하셨다. 

고구마 줄기를 깔 때 한 손으로 한쪽 끝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줄기를 꺾어 껍질을 벗겨내니 줄기를 까는 손의 손톱만 까매진다. 그러니 장갑은 한 짝만으로 충분하다.    


모든 어머님이 그러하듯 우리 어머님도 알뜰하기로 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당신을 위해 쓰시는 일이 거의 없고 수많은 알뜰 레퍼토리가 있지만 그래도 쓸 때는 쓰시는 분이다. 자식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께도 두루두루 베푸시는 마음과 돈은 필요한 만큼 넉넉히 쓰신다.    


알뜰하지 않은 큰아들은 기어이 우리 집의 라텍스 장갑  한 짝을 더 끼고서야 작업을 실행하였고 어머님의 센스 덕분에 남편의 손톱은 까매지지 않았다.  

왼 손은 살색 장갑, 오른 손은  파랑색 장갑을 낀 남편의 손은 바쁘다.

  

고구마 줄기를 깔고 갈치 조림을 했다. 어머님 말씀대로 갈치 조림 속 고구마 줄기는 아삭함이 살아있고 간장과 갈치 맛이 스며들어 보통의 고구마 줄기 볶음과는 색다르게 맛있었다.

남편도 어머님의 마음을 알아서인지 맛있다며 잘 먹었다.    


다음에 전화드릴 땐


갈치 조림 속 고구마 줄기가 정말 맛있었다고,

아들이 잘 먹었다고 말씀드려야지.

아들의 손톱이 까매지지 않았다는 것은 꼭 말씀드려야 한다.


어머님의 목소리가 더더욱 하이톤이 되며 정구지김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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