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1학년 입학에 맞추어 육아 휴직한 후배 교사는 이대로 2학년이 되면 어쩌나, 다시 1학년을 한 번 더해야 하지 않냐며 격앙된 어조로 말을 한다. 학부모 입장뿐 아니라 학교에서의 1학년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교사의 입장이기도 하니 더욱 걱정이 큰 것 같았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10월 12일부터 초등 1학년과 중학교 1학년은 매일 등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정부에 제안하였다고 한다. 조 교육감이 제안한 초등 1학년 매일 등교는 교육부와 방역 당국의 방침(전체 3분의 1 등교)과 어긋난다. 그런데도 이런 요청을 한 것은 진학 후 거의 등교를 하지 못해 학교 부적응 및 학습 결손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 1학년의 매일 등교에 관한 설문 조사 결과는 학부모와 교사의 의견이 다르게 나왔지만 매일 등교는 아니더라도 아마 1학년 우선 등교제가 시행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견해 본다.
아이들이 오는 날은 학교가 살아난다. 아이들의 웃음이 예쁘고 조금의 시끄러움은 반가울 때도 있다. 마스크를 끼고 수업을 하며 거리 두기로 인해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지만 그렇게라도 학교에 와서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10월은 수확의 계절이다. 논과 밭에 주렁주렁 곡식이 익고 탐스러운 과일로 우리를 풍족하게 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1년 동안 공부하고 성장한 학생들의 학습 과정이나 결과, 능력 등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여 교육적인 효과를 거두고자 각종 교육 행사를 한다. 그중에서 가장 으뜸이 바로 학예회이다.
학예회는 주로 예능 발표와 학예품 전시를 하는 특별 교육 활동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의 학예회는 거의 수업을 잘라먹고 맹연습하여 예쁘고 잘하는 모습만 자랑하는 보여주기 식의 행사로 똑같은 것을 매일 반복적으로 연습하여 싫어했었다. 아마 준비하는 교사로서도 그러했을 것이다.
요즘의 학예회는 옛날과 다르다. 말 그대로 아이들이 즐기는 잔치이다. 교육과정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준비하고 아이들의 성장한 모습에서 아이들 스스로 자긍심을 느끼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교육적 힘이 되어 미래 성장에 도움이 되면 그걸로 충분하다.
문제는 그 잔치를 학부모와 공유하는가? 공유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등이 논의되는데 그것은 학부모와 교사가 교육공동체가 되어 서로의 이견을 조율하여 학교마다 실정에 맞게 실시한다.
몇 해 전 근무한 학교에서는 저, 중, 고학년으로 나누어 2개 학년씩 3일 동안, 강당에서 학예회를 하였다. 아이들이 즐기는 잔치에서 학급 간, 학년 간의 발달 수준에 따른 차이를 단지 교사의 역량으로만 평가하는 일부 학부모님의 눈초리가 따가워 몇몇 교사들이 난색을 보이긴 했지만, 철저히 학부모님의 요구에 맞춘 학예회였다.
한다면 하는 게 우리 교사들이다. 하기로 했으니 또 열심히 한다.
우리 반은 두 가지를 준비하였다. 오카리나 연주와 태권무.
오카리나 연주는 “어머님 은혜”이다. 오카리나 연주는 1년 동안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틈틈이 배웠으므로 따로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
태권무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춘 귀엽고 앙증맞은 태권도 댄스, 이름하여 보키아이스타일!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안무 동영상을 틀어놓으면 아이들이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어 이것도 따로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도 즐거워할 뿐 아니라 학부모님의 격한 감동과 즐거움도 꾀한 프로그램이었다.
1학년은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인기 만점이다. 틀려도 예쁘고 서툰 짓은 더 귀엽다. 거기에 눈에 띄는 의상이나 소품 하나 정도면 그야말로 학예회의 꽃이 된다. 요즘 트렌드로 가느냐 복고풍으로 가느냐 둘 중에 고민하여 그 둘을 믹스하였다.
바로 이소룡 노란색 체육복에 선글라스, 중목의 검은색 양말, 하얀색 실내화, 하얀 장갑.
기존에 있는 노란색 학급 티에 학예회 준비 예산으로 노랑 쫄바지와 흰색 장갑을 신청하였다.
그리고 각 가정에는 미리 안내하여 선글라스가 없는 경우 미리 빌리기라도 하라고 하였고 검정 중목 양말은 거의 다 있으니 학부모의 준비에 부담을 주지 않았다.
학예회 당일, 우리 반은 학예회의 꽃이 되었다.
노란색 체육복에 선글라스를 낀 꼬맹이들의 등장에 학부모님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신나는 강남스타일 음악의 쿵짝거림과 귀여운 태권무는 학부모님을 춤추게 했다.
어머님 은혜의 오카리나 연주에 엄마들은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고 마지막에 아이들이 크게 외치는 “엄마, 아빠, 사랑해요!”의 함성에 눈물을 훔치는 학부모님도 있었다.
나도 그랬었다.
큰아이가 처음 재롱잔치를 하는 날, 눈물을 훔치느라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하였다. 아이가 크는 동안 일한다고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언제 커서 저렇게 이쁜 짓을 하나, 아이의 몸짓 하나하나가 특별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1학년 담임이 되어 운동회가 있던 날, 꼭두각시 무용을 하는 한복 차림의 귀여운 우리 반 아이들을 보고도 눈물이 났다. 서툴던 몸짓을 맞춰가며 예쁜 무용 동작을 완성해내는 아이들의 노력이 너무나 예뻐서 감동의 물결이 일어났다.
학예회를 본 학부모님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이 없어 텅 빈 운동장
학예회의 계절이 돌아왔건만 학교에 아이들이 없다. 수도권은 등교일 수가 1학기에 8일 정도였고 자랑할 만큼의 교육적 성장은커녕 기초학력이 우려되고 있다. 원격수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1학년의 경우는 온라인으로 기초학습 훈련을 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고 학교생활 적응 등의 문제로 대면 수업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예회의 꽃이 1학년이던 시절은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으며 학예회는 생각조차 못 할 일이다.
부디 모든 사람이 코로나 수칙을 절대적으로 지켜 아이들이 학교에 건강하게 등교하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마스크 없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학교,
해맑은 웃음으로 조잘거리며 공부하는 학교. 이것이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원하는 학교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고 그런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학부모와 교사의 감동과 웃음이 있는 날, 이것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