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꿈이 나를 만들었어
내가 첫 발령을 받았던 1986년의 아이들의 꿈은 소박했다.
남자애들은 거의 대부분 경찰이나 소방관, 축구선수 조금 공부에 관심이 있던 아이들은 과학자 그 정도였고 여자애들은 간호사, 선생님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흘러 2020년의 아이들은 프로게이머, 연예인, 댄스가수, 웹툰작가, 유튜버 등 어른들의 세상이나 메스컴이 투영된 꿈을 꾼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는 아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BTS매니저" 였다. 그것도 1학년 꼬맹이 여자아이가 ~~
이유는 간단했다. " 그럼 BTS를 매일 보잖아요" 뽀로로가 초통령인 시대는 이미 끝난 세상이다.
나의 꿈은 처음부터 선생이었다.
나의 꿈이라기보다는 우리 아빠의 계획이었지만 그냥 나는 아주 꼬맹이 적 말을 할 수 있을 때부터 저절로 선생이 되는 줄 알고 자랐다. 조금 더 자라면서 선생이 되려면 공부를 좀 해야하고 교대를 가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다행히 나는 머리가 좀 있었고 내가 학생이던 시절의 시골아이들은 별로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부모들의 교육열도 없었던 상태라 경쟁상대가 없어 나의 별노력없이도 줄곧 상위권 그것도 장학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고3을 여유롭게 지내고 교대를 입학하였다.
정부의 교육정책 덕에 내신 1등급의 빵빵한 뒷받침이 있어 나는 과수석이 되어있었고 교대 4년 내내 또 나는 장학생이었다. 졸업할 즈음에 교사수급이 어려워져 30명만 첫발령이 날때에도 나는 거뜬히 3.1일자 첫발령이 났다. 600명 중 30명만 첫발령을 받을 때 우리 아빠는 당신의 그림이 멋지게 완성됨을 기뻐하셨고 나는 그저 담담히 내가 진짜 선생이 되는구나 정도였다.
교육청에서 발령장을 받고 학교에 발령인사를 가던 날!
이제 월급이라는 돈이 나올테니 하며 호기롭게 택시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다른 친구들은 발령이 나지않아 의기소침해하고 있을 때, 이제부터 사회인, 직장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학생으로서 겪어보지 못했던 사회적 경험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 있었다. 나 자신을 토닥이며 떨리는 기분으로 나의 첫 직장, 대구의 어느 신설학교의 조그만 운동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교무실에 삐죽거리는 듯 고개를 디밀어 넣고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오늘 발령받은 김 oo입니다."
"아~ 신규가 왔네. 어서와요 김OO 선생님 반가워요."
그렇게 나는 선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