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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Nov 20. 2020

시어머니의 아들과 며느리 차별은 수준급이시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나는 대부분 며느리가 불편해하는 시댁과의 전화 스트레스가 없다.

결혼 초에는 며느리인 내가 직접 전화를 드렸다. 할 말도 없고 어머님도 어려웠다. 불편했다. 흔히들 하는 시댁과의 전화 방법대로 인사드리고 얼른 남편을 바꾸었다.     


언제부터인지 남편이 그 역할을 해주었다.

주말에 양가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어머님께는 며느리인 나를, 우리 엄마께는 딸인 나를 바꿔주는 방식이었다. 얼마 동안 그렇게 하다, 이제는 어머님과는 남편만, 우리 엄마께는 남편이 통화하다 나를 바꿔주는 패턴으로 바뀌었다. 어머님도 며느리와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셨다.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는 경우에만 며느리를 바꾸라고 하신다.   

  

특별한 경우는 택배를 보내실 때, 날씨가 추워질 때 옷을 두껍게 입고 다녀라, 감기 조심하고 밥 좀 많이 먹어라, 고기도 먹고 운동도 살살해라. 남편만 챙기지 말고 너도 건강 잘 챙겨라 등으로 맨 마지막은 늘 “고생이 많다”로 며느리를 걱정하신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대화가 거꾸로 된 듯한 상황이다.    


어머님이 남편이 회사에 있는 시간에 전화하신다.

그 시간에 남편에게 전화하실 때에는 남편에게만 할 말이 있는 경우이다.  

  

“며느리가 몸도 약한데 또 출근한다니 걱정이다. 일찍 퇴근하여 청소며 설거지를 해라.”  

  

명퇴 후, 코로나로 여행도 못 가고 5개월 정도 집에 있다 보니 무료하였다.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니 자존감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하기로 하였다. 기간제 교사로 다시 학교로 되돌아갔다. 다시 일한다고 하니 어머님의 걱정이 많으셨다.  

   

어머님이 전화로 아들에게 집안일을 열심히 하라고 말씀(명령)하셨다.

남편은 엄마(시어머니)가 회사에 있는 시간에 급하게 한 전화 치고 너무 편파적이라며 웃는다.

우리 어머님의 아들과 며느리 차별은 참 특별하시다. 차별 레벨이 수준급이시다.   

 

“20만 원 보냈다. 확인해봐라”

“10만 원은 꼭 며느리 주고, 10만 원은 식구들 모여서 맛있는 거 사 먹거라”    


남편의 생일에 맞춰 우리 부부의 생일 축하 금일봉을 한꺼번에 보내신다. 은행에 직접 가서 송금하고, 남편에게 잘 입금되었나 확인차 전화하였다.

   

남편은 시어머니의 셈법이 이상하다며 웃는다.

아들 생일은 아들 돈으로 나눠서 쓰라고 하고, 며느리 생일은 꼭 혼자 다 쓰라고 했다며 아들 차별하는 시어머니라며 웃는다. 며느리는 10만 원, 아들은 2만 5천 원인 셈이다.

  

어머님이 결혼 초부터 생일 축하 금일봉을 보내시지는 않았다.

남편이 9년 전 사경을 헤맬 때, 어머님은 아들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셨다고 하였다. 어머님은 맏아들인 남편에 대한 아들 사랑이 유난하셨다. 나중에 말씀하셨는데 만약에 아들이 잘못되면 당신은 곡기를 끊고 아들을 따라가려 했다고 하셨다.    


그 후로 며느리와 아들의 생일 축하금을 한꺼번에 보내신다.

죽다 살아난 귀한 아들을 제치고 며느리를 먼저 챙기시는 우리 어머님의 마음이 고맙다.

어머님의 아들과 며느리 차별이 날로 레벨 업되고 있다.   

 

어머님은 피붙이 하나 없는 타향에서 맞벌이하는 며느리의 고충을 알아주셨다.

시댁 식구 중에 키도 제일 작고 몸도 제일 약하면서 학교에서, 집에서 늘 동동거리며 힘에 겨워하던 모습을 안쓰러워하셨다. 어쩌다 우리 집에 오시면 열심히 집안일을 하신다. 아들이 어릴 때 할머니가 오시면 엄마는 일도 안 한다고 나보고 나쁜 며느리라고 할 정도였다.     


남들과 수준이 다른 아들과 며느리의 차별에 남편은 흐뭇해한다.

고부간에 잘 지내니 남편으로선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저 도리만 할 뿐 살가운 며느리가 아니다. 아들보다 7만 5천 원만큼의 사랑을 더 받은 며느리는 감사하지만 죄송한 마음이다. 나는 별로 잘한 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님의 마음이 궁금하다.

단지 젊은 날을 애쓰며 살았던 며느리가 안쓰러워서일까?

아들이 살아나서일까?

아들의 다시 사는 삶이 고마워서 어머님이 마음을 넓게 쓰시는 걸까?

아들의 건강을 위해 잘 챙겨주어서일까?    


그래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안다.

당신의 아들, 남편을 잘 챙기고 우리 아이들과 오순도순 건강하게 잘 살면 된다.

어머님은 어쩌면 이런 답을 계획하셨는지도 모른다.    


결론은 어머님, 감사합니다.

남편은 싫어하겠지만 앞으로도 며느리와 아들 차별은 날로 레벨 업해주세요.    

나는 이런 며느리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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