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줌마 Nov 26. 2020

시어머니의 김장을 말리려는 남편의 거짓말

“엄마 김치 맛없대요.”

시어머니의 음식 중에 내가 제일 맛있게 먹은 것은 오이무침이다.

그 외에는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함께 밥을 먹은 시간이 많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솔직히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딱히 좋다고 하기 어렵다. 남편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김치는 정말 맛있게 잘하신다.  

  

해마다 김장을 하셔서 보내주신다.

음식을 만드실 때도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시는 분이라 배추 및 양념준비에 꽤 공을 들인다. 최상의 재료에 어머님의 정성이 들었으니 맛이 없을 리 없었다.    

 

딸과 며느리 모두 불러 모아 김장을 하는 집들이 많다.

심지어는 딸은 빼고 며느리만 불러 딸네 집 김장까지 하는 시어머니도 있다. 혼자서 다 하시고 유별나게 생색내시는 시어머니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김장의 감정노동이 싫어 안 먹고 말지 김장하러 가기 싫다는 며느리 파, 함께 하는 맛있는 즐거움이 있어서 좋다는 며느리 파, 별난 생색을 듣느니 김장 사서 먹고 말지 하는 며느리 파로 나뉜다.


나는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는다. 우리 어머님은 동네 친구분과 함께 하면 된다고 한 번도 딸이나 며느리를 김장의 수고에 끼워 넣지 않으셨고 생색은커녕 맛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하신다. 나는 그저 “맛있어요, 감사합니다”만 하면 된다.    


9년 전, 그해의 김장은 최상급이었다.

배추와 양념이 그렇게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싶게 참 맛있었다. 두 상자나 보내셔서 퇴근 후 김장을 정리하여 김치냉장고에 넣고 정리하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어머님께 감사의 전화를 드리고 잠든 그 날 새벽, 남편이 쓰러졌다.

대구에서 친정과 시댁 식구들이 급히 오셨다. 남편의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 나는 중환자 대기실에 있고 다른 사람들은 밤이 되어 모두 우리 집으로 갔다. 힘든 상황에 모두 입맛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장김치가 맛있었다고 했다.

   

친정 식구들이 처음 맛본 사돈의 김치 맛은 “대박 맛있다.”로 두고두고 칭송되었다.  

  

연세가 드시면서 김장의 맛이 복불복이다.

어느 해는 정말 맛있고 어느 해는 조금 그렇다. 나야 여자이고 며느리이니 김장의 수고를 알기에 이래도 맛있고 저래도 감사한데 아들인 남편은 그렇지 않다. 감사와 맛은 별개이다.

어머님이 아시면 속상하실 테지만 어느 해는 김장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김치를 사서 먹기도 하였다. 김장은 익혀서 김치찌개, 김치찜, 김치부침개로 먹으면 훌륭하였다.


연세가 드시면서 김장하는 것을 힘들어하셨다.

처음엔 배추를 직접 사서 씻고 절이셨다. 수고를 덜기 위해 몇 해 전부터는 절임 배추로 하니 한결 수월하다고 하셨다.     

재작년에는, 절임 배추로 해도 허리가 아프시고 몸살이 와서 김장 후에 링거를 맞으셨다고 했다. 죄송한 마음에 내년부터 김장하지 마시라고 했다. 사서 먹으면 된다니 걱정을 하셨다.


괜찮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김장을 안 하려니 당신이 서운하시다며 작년에도 김장을 보내셨다. 또 편찮으셨다. 힘드신 몸으로 하시느라 맛도 안 보았다고 하셨다. 김장 맛도 어머님처럼 나이 든 맛이다. 죄송하고 감사하고 마음도 불편하였다.   

 

시어머니께서 며느리에게 직접 전화하셨다.

“아들이 올해는 김장하지 말라고 전화가 왔네. 왜 맛이 없드나?”

“아니요. 어머님 고생하시니까 사서 먹으려고요.”

“나는 괜찮다. 김장 몇 포기하는 게 뭐 힘들다고? 사 먹는 김치는 조미료를 마이 넣어서 첨에만 맛있고 좀 지나면 물러진다던데.”

어머님은 못내 아쉬워하셨다. 김장은 어머님의 자식 사랑이니 힘닿는 데까지 해주시고 싶으셨다.    


저녁때 아들에게 전화하셨다.

“절대 김장하지 마세요.”

“막내만 쪼매 해줘야겠다.”

“아무도 해주지 말라니까. 막내도 엄마 김치 맛없대요.”


남편이 쐐기를 박았다. 시동생을 팔아서 거짓말도 했다. 어머님의 충격이 크셨을 것이다.

남편은 김장을 말리느라 어머님의 마음은 생각지도 않았다. 차마 자기 입으로 엄마 김치 맛없어졌다고는 못하고 시동생을 팔았으니 뒷감당은 어찌하려나 ㅜㅜ   

   

그동안 김장하시느라 애쓰셨다고,

이제 연세도 있고 힘드니 그만하시라고,

이제 엄마표 맛있는 김장을 못 먹어서 서운하기도 하다고, 말씀드려도 될 텐데

그렇게 하면 어머님이 김장을 포기하지 않으시니 남편이 극약처방으로 거짓말을 했다.    


다행히 쏘쿨한 어머님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괜찮으신 듯하다.

아마 시동생네는 김장이 갔을 것 같다.    


어머님!

30년 세월 김장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하고 감사드립니다.

어머님의 김장으로 만든 김치찌개는 정말 맛있었는데…….

어머님의 맛있는 김치가 그리울 거예요.


이젠 제가 해 드려야 하는데 김치도 못 담그는 며느리라 죄송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늙은 호박에 큰코다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