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줌마 Dec 09. 2020

김치찌개에서 트로트 맛이 난다.

지금까지 이런 김치찌개는 없었다.

우리 집 식탁은 국이나 찌개가 거의 없었다.

맵고 짠 음식이 좋지 않다. 국물음식이 좋지 않다 등의 핑계를 대지만 솜씨도 없고 귀찮음이 솔직한 이유이다. 할 수 있는 것도 기껏해야 김치찌개, 된장찌개가 다였다.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해둔 반찬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없는 솜씨에 매일 무엇을 만들어서 먹어야 했다. “나는 밥 달라는 사람이 제일 싫어”를 외치며 살았다.   

  

지금은 남편의 건강을 위해 채소 위주로 먹게 되어 나로서는 훨씬 편해졌다.

채소와 단백질 위주의 식단이니 변화를 주어봤자 샐러드드레싱이나 소스 등의 미미한 변화이다. 가끔 큰 맘먹고 고기를 먹는 날을 제외하곤 아침이나 저녁이나 매일 같은 식단이니 나는 간편해서 좋긴 하지만 남편으로선 정말 맛없는 노릇이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썰렁한 아침에 차가운 채소를 먹게 하려니 마음이 쓰인다. 호박죽이나 토마토 수프 등 따뜻한 음식을 준비하긴 하지만 국이나 찌개처럼 밥 잘 먹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 나도 먹기 싫다. 그래도 남편은 잘 먹는다.   

 

평일은 그렇게 먹고 주말에는 나름 치팅데이를 갖는다.

건강을 위해 조심했던 음식, 밥도 먹고 고기(살코기 위주)도 먹고 나는 라면을, 남편은 빵을 먹는다. 지금은 코로나로 힘들지만, 주말에는 간단하게 외식도 하며 지내왔다. 


건강하게 고기를 먹기 위해 기름이 쫙 빠진다는 회전 쿡 냄비를 샀다.

남편의 퇴근길에 삼겹살을 사 오라고 부탁하였다. 고기를 사라고 하니 웬 떡인가 싶나 보다. 삼겹살에 목살까지 많이도 샀다. 비계가 많은 삼겹살이 부담되어 남편은 목살을 구워 먹자고 했다. 그럴 수는 없다. 몇 달 만에 먹는 삼겹살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목살반 삼겹살반 바싹 구워 기름을 빼고 상추랑 깻잎에 싸서 맛있게 먹었다. 남편은 목살, 나는 삼겹살, 정말 맛있었다.    


남은 목살로 김치찌개를 하여 주말 동안 먹으면 되겠다.

김치찌개도 정말 오랜만에 끓인다. 나는 주로 고기를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여 먼저 볶다가 김치를 넣는다. 그다음에 김칫국물로 어느 정도 간을 하여 고기와 김치를 달달 볶아 준 후 육수를 넣어 끓인다. 한소끔 끓은 후에 두부와 파를 넣는다. 


몇 해 전, 우연히 본 미스 트롯에서 처음 본 가수가 송가인 가수이다.

트로트는 옛날 노래라는 선입견이 있어 잘 부르지도 않았고, 그런 프로그램은 보지도 않았는데 송가인 가수를 보고 목요일 늦은 밤마다 꼬박 시청했던 프로그램이다.  

  

그녀가 미스 트롯 진이 되고, 부모님의 사랑과 지원도 방송에 꽤 많이 나왔다.

어려운 환경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자식에 대한 사랑도 대단하였고, 그런 부모님을 귀히 여기는 자식의 마음도 예뻤다. 특히 딸을 위해 아빠가 음식을 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다.

    

목살을 냄비에 넣고 볶으려는 순간, TV에서 보았단 미스 트롯 진의 아버님이 생각났다.

그 댁의 며느리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시아버님 표 김치찌개라고 한다. 비법은 바로 고기를 볶을 때 조선간장으로 볶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본 때가 한참 전이었으나 그동안 우리 집에서 김치찌개를 끓인 일이 없어 잊고 있다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다.   

 

마침 시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조선간장에 표고, 양파, 멸치 등을 넣어 만든 맛 간장이 있었다.

목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냄비에 넣고 맛 간장을 넣어 달달 볶았다. 지지직 맛있는 소리와 함께 올라오는 맛 간장에 목살 볶는 냄새, 맛있다. 성공 예감이다. 


김치는 어머니 표 묵은지 반, 홈쇼핑 표 김치 반을 넣어 볶아진 고기와 한 번 더 볶았다. 조선간장이 들어갔으니 김칫국물을 조금만 넣고 평소와 다름없이 두부를 많이 넣고 푹 끓여냈다.  

  

김칫국물에 조선간장이 합해지니 김치찌개 국물은 김치의 신맛에 조선간장의 단맛이 더해졌다.

살짝 꺾어 부른 트로트 맛이다.

   

몰캉몰캉 두부와 살짝 씹히는 김치도 맛있지만, 간장 맛이 밴 고기는 고기 맛이 진하다.

김치찌개의 감칠맛이 진해졌다.

감칠맛이 나는 트로트 맛이다.

   

꺾기 신공 송가인 가수의 감칠맛 나는 트로트는 듣고 또 들어도 좋다.

트로트 맛 김치찌개도 먹고 또 먹어도 맛있다.   

 

국이나 찌개가 없던 우리 집 식탁에 김치찌개가 며칠째 오른다.   

날씨도 춥고, 먹어도 먹은 느낌이 나지 않던 우리 집 식탁이 따뜻해졌다.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하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감칠맛나고 살짝 꺾어 부르는 트로트 한 소절로 하루의 피로를 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어머니의 김장을 말리려는 남편의 거짓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