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누구에게도 영끌했던 적이 없었다.
주말 아침, 남편과 통화를 하던 시어머니께서 며느리를 바꾸시란다.
어머님이 나를 찾으실 때는 이유는 딱 하나, 맞춤형 택배의 제공을 위함이다.
“ 이번에 쪽파가 좋네. 파김치 좋아하나? 먹는다면 쪼매 담아서 보내줄까?”
“ 잘 먹어요. 쪼매 말고 많이 담아주세요. 어머니는 딸보다 며느리가 더 도둑이죠? 호호호.”
이번에도 택배 백화점이다.
그런데,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작은 비닐봉지가 있었다.
전에 고구마 줄기를 까서 보내실 때, 버리려고 모아둔 고구마 줄기 껍질을 신문에 고이 싸서 보내신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혹시 이상한 것을 택배 상자 안에 넣으셨나 했다.
뜯어보니 아주 쪼끔 정말 쪼끔의 도라지 무침. 그릇에 담아보니 채 한 접시도 되지 않는다.
가슴이 뭉클했다. 가득가득 많이 담은 다른 봉지보다 어머님의 마음이 제일 많이 들어있다.
조금밖에 되지 않는 것이라도 보내시는 마음에, 하나라도 더 싸서 보내시려는 마음에 감사하고 죄송했다.
부리나케 정리하고 전화를 드린다.
“열무가 연하니 맛있게 생겼길래 열무김치 담아봤다. 먹어보고 맛없으면 대충 먹다 버려도 된다.”
“도라지는 내가 먹으려고 무친 건데 맛있길래 남은 거 그냥 담아서 보냈다. 먹을만할지 모르겠다.”
맞춤형 택배에 없던 열무김치와 도라지 무침을 보냈으니 먹고 안 먹고는 내가 정하라고 하신다. 대박 시크하고 쿨하시다.
“맛있어요.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느 해, 김장이 좀 짜게 되었을 때, 남편이 짜고 맛이 덜하다고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그 이후로 좀 신경이 쓰이시는지 고생하셔서 보내시고는 늘 맛이 덜할까 걱정이시다.
해마다 김장을 보내주시는데 예전과 달리 어느 해는 맛있고 또 어느 해는 간이 안 맞아 맛이 덜할 때가 있다. 연세가 드시면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애써서 담아주시는 마음과 노고를 알기에 김치 꽁다리, 김치 국물 하나도 버리지못하고 남김없이 다 먹는다.
동생의 카톡이 왔다.
언니 집에 보낼 물건이라며 먹거리로 가득 찬 상자 사진을 보냈다. 동생의 지인이 우리 집 옆 아파트에 산다. 그 지인을 대전의 결혼식에서 만나니 나에게 전할 물건을 지인 편에 보낸다는 것이다.
직접 만든 도토리묵을 보내려고 시작했는데 이건 언니가 좋아하는 것, 이건 형부가 좋아하는 것 하면서 넣다 보니 한 박스가 가득 채워졌다고 한다.
문제 발생.
동생의 지인이 집으로 곧장 오지 않고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한다. 그래서 상자는 내일이나 받을 수 있다. 오늘 저녁엔 맛있는 묵을 먹을 수 있다고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인데 실망이다.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 우리가 직접 가서 받아오기로 하였다.
동생은 묵은 상하지 않으니 내일 받아도 된다고 하지만 동생의 묵은 단순한 묵이 아니라 동생의 마음이다. 내 동생의 마음이 다른 집에서 하찮게 굴러다니는 것은 싫다.
동생의 묵상자 언박싱.
묵, 밤, 자두청, 자두잼, 자두, 국산 다래, 석류 두 알.
묵은 물론 자두청과 자두잼도 직접 만든 것이고 자두와 다래, 석류, 밤은 모두 동생의 밭에서 직접 수확한 것이다. 부지런한 동생의 수고로움과 이쁜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남편도 처제가 꾹꾹 눌러 담은 박스를 보면서 고마워하였다.
식탁 위에 늘어놓고 이건 이렇게 먹으면 되고, 저건 저렇게 먹으면 되겠구나 하면서 신나 하는 중에 빈 박스 윗부분의 글씨를 발견하였다.
박스 뚜껑 네 곳에 쓰인 동생의 마음.
“언니 형부 조카들, 늘 건강하시길, 역전의 용사 둘째님 드림, 사랑하고”
눈물이 났다.
결혼식 가는 아침에 부랴부랴 짐을 챙기느라 바빴을 것이다. 그 와중에 언니에게 마음을 전하려 급하게 쓴 동생의 마음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석류 두 알,
조그만 것이 익어서 사알짝 벌어진 모습이 앙증맞다.
“언니야, 석류가 볼품은 그래도 언니한테 보낸 건 제일 좋은 거야. 아빠가 언니는 젤 좋은 것만 주셨잖아. 나도 젤 좋은 거 골라서 보낸 거야.”
그러면서 보내온 사진에는 정말 볼품없는 석류 두 알이 동생의 몫으로 남아 있었다.
“아빠가 언니는 젤 좋은 것만 주셨잖아."
가슴이 뭉클하며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미안하고 미안했다. 언니라고 늘 좋은 것만 줘도, 언니라고 청소도 설거지도 예외였어도 동생은 불평 한번 없었다. 심지어 동생과 둘이 자취할 때 동생은 추운 겨울이면 언니 세수하라고 물도 따뜻하게 해 두었다. 참 철없는 언니였다. 동생은 그렇게 늘 언니 같은 동생이다.
지금도 우리 사 남매와 엄마가 만나면 늘 언니는 편애의 대상이었고 그걸 당연히 여겼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누구 하나 불만이 없고 그 시절을 재미있게 추억한다.
어린 시절, 둘째의 마음속엔 정말 불만이 없었을까?
티를 내지 않았으니 우린 몰랐다. 모르는 척했다. 왜 불만이 없었겠냐만 둘째라는 숙명으로, 수더분한 성격으로 그러려니 넘겼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쓰는 글에 동생은 유난히 눈물이 많다. 그래도 동생의 아픔이 되지 않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어서 나로서는 참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어머님의 도라지 무침과 동생의 석류 두 알은 요즘 말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이다.
이틀을 연달아 대구에서 온 영끌택배 두 개.
영끌감동이다.
어머님께, 동생에게 나는 영끌했던 적이 있었나?
돌아보니 누구에게도 그렇게 영끌했던 적이 없었다.
늘 감사한 일이 있을 때 고맙다고 말만 잘했을 뿐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실천 없는 빈 말만 열심히 외쳐대고 순간마다 고개만 까닥거렸다.
영끌반성한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데 나에겐 틀린 말이다.
동생은 나를 반성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