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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e Jul 13. 2020

첫차를 폐차장으로 보내다

16년 지기 친구를 보내며

 28살 때 분당에 살던 나는 가산동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게다가 8시 출근이었다. 아침잠이 많던 나는 왕복 80km의 거리를 출퇴근이 걱정되어 가산역 근처에 자취하고 있었던 대학 선배 집에서 몇 달 얹혀살었었다. 해외 연수 갔다 온 것 빼고는 집에서 벗어나 살아본 적 없는 나는 집 밖에서 사는 것이 너무 적응되지 않았다.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면서 삶이 너무 피폐해지는 것 같아 출퇴근을 위해 차를 사기로 결심했다.

 

 처음이니 작은 중고차를 사야지 생각했었는데, 딱히 차에 대한 지식이 없어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가다 중고차 판매소 간판을 보고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싶어 들어간 곳에서 한눈에 쏙 들어오는 차를 발견했다. 처음 들어보는 차종이어서 이런 차에 그전엔 있었는지도 몰랐었다. 당시 대우자동차에서 나온 칼루스V란 차였다. 이전 차주는 젊은 남자분이었고, 군대를 가면서 차를 팔았다고 한다. 그분의 첫차라 얼마나 차를 아끼고 예뻐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 차는 좋은 차는 아니었지만, 한눈에 반했고, 이 차가 내 차라는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그 자리에서 현금을 주고 차를 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무모한 짓이었는데, 다행히 나중에 찾아봐도 바가지 쓰지 않고, 잘 구매했었던 것 같다.


 그 아이 이름은 '루스'라고 지어줬다. 나의 첫차! 이 아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모른다. 매일 출퇴근길 3시간씩 차 안에서 보내면서 우리는 정말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고, 많은 일들을 같이 겪었다. 배터리 방전된 것 말고는 길다가 한번 선적도 없고, 어디 한번 고장 난 곳도 없었다. 나를 항상 안전하게 원하는 위치로 데려다주었다. 마음이 허하고 우울할 때 차를 몰고 외곽 도로를 달리며 마음을 달랬던 시간들이 정말 많았다. 차 안에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내 공간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유공간이었다.


 당시 친구들 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차를 샀었기 때문에 이 차로 친구들 태우고 놀러도 많이 다녔고, 지금의 남편 연애할 때도 뚜벅이였던 남편과 이 차를 타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도 했다. 우리는 결혼하고 나서도 차를 바꾸지 않았다. 루스가 충분히 건강하고, 잔고장 한번 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더 좋은 차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지금 사는 시골로 이사 오면서 차가 두  필요하 되었을 때 루스를 남편 출퇴근용으로 양보해 주었다.


 루스는 한동한 내게 그렇게 해주었듯이 남편을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시켜 주었다. 그런데 이제 15년 된 차라 고장 나지는 않았지만 엔진이 힘들었는지 오르막길 오를 때 너무 힘들어했다. 고속도로를 나가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남편이 고속도로로 출퇴근해야 하면서 새 차를 사게 되었다.


 루스는 이번에는 엄마의 연습용 차가 되었다. 교통사고 후 운전이 무서워 운전대를 안 잡은 지 오래 셨는데, 루스를 끌고 시내까지 한 번씩 다니시면서 이제 제법 운전을 잘하게 되었다.


 폐차를 결정한 이유는 보험 만기가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뭐 하나만 망가져 수리비가 많이 나오면 폐차해야지 했는데, 루스는 어디 하나 망가지지 않고 잘 견뎌줬었다. 오래된 차라고 보험료가 더 싸지 않고, 다른 중형차와 비슷한 가격이 나왔는데, 보험료가 너무 많이 나와 문의해보니 낡은 차는 사고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보험료가 비싸다고 한다. 이 돈이면 새로 소형차를 사는 것이 더 좋을것 같았다.


 루스는 끝까지 자기 할 일을 다 했는데, 돈 때문에 배신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폐차장분이 오셔서 시동을 걸어보는데 엔진 소리가 얼마가 쌩쌩하던지, 마치 나한테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루스는 2002년에 태어고, 우리는 2004년에 만나 16년동안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2020년 7월 13일에 헤어졌다. 그는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160948km를 여행했으며, 250,000원의 고철값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안녕, 안녕, 루스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
16년 동안 나를,
우리 가족들을 태워줘서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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