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이와 패밀리로 묶이다

마주 앉기까지의 거리

by dearMe

친구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헉! 내 개인정보가 털린 건가? 이렇게 전화번호 등록 안 된 사람한테 막 카톡이 온다고 친구와 개인정보 유출이 무섭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집으로 오면서 모임 단톡방 중 친구 추가가 안 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프로필을 열어봤다. AI로 그린 초상화 프로필이었는데, 묘하게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아! 운동할 때 몇 번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문자도 와 있었다. 내용은 듀오링고 패밀리 요금제에 가입했는데, 자리가 남으니 나를 가족 멤버로 넣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문자의 답장을 기다리다 카카오톡으로도 메시지를 보낸 모양이었다.

작년 오키나와 여행이 아주 흡족했던 터라, 올해는 인근의 더 작은 섬인 이시가키에 가볼까 생각 중이었다. 간단한 일본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무료 앱인 듀오링고로 공부를 시작했다.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의아했지만, 게임하듯 재미있어 매일 하게 됐다.

그러던 중 체스 과목이 새로 개설되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에게 체스를 배워왔는데, 같이 두던 친구가 전학을 가는 바람에 상대가 없어졌다며 투덜대던 참이었다. 내가 배워서 같이 둬볼까 싶은 마음에 체스 과목을 추가했다.

하루는 운동하러 가서 열심히 듀오링고로 체스를 하고 있는데, 가끔 마주치던 분이 말을 걸어왔다. 본인도 듀오링고로 스페인어를 하는데 체스도 배울 만한지 물었다. 배우고는 싶은데 선뜻 용기가 안 난다면서 말이다. 스페인어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 쓸 일이 없어 잊어버리는 것 같아 공부 중이라고 했다. 앱이 도움이 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분은 해마다 수능이 끝나면 제2외국어 문제를 풀어보는데 원래 70점대였던 점수가 올해는 90점대를 기록했다며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음! 진짜 도움이 된다면 영어도 해볼까?' 싶어 영어도 추가했다. 그렇게 무료로 세 과목을 하다 보니 광고 보는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연말 60% 세일 기간에 회원권을 구입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그분도 스페인어와 체스 두 과목을 하니 연말 할인에 마음이 움직여 패밀리 요금제에 가입했고, 총무님께 내 전화번호를 물어봐서 연락했다고 했다.

사실 난 운동하러 가서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노력해 왔다. 온몸에 방패를 두른 듯 앉아, 누구도 말을 걸지 못하게 책만 읽었다. 그런데 그분은 일부러 내 번호를 알아내 연락해 준 것이다. 비싼 요금제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새해 선물'이라며 그분의 가족 사이에 나를 넣어주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가끔 세상은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그렇게 나는 또 방패 세우기에 실패하고 말았다. 다음에 운동하러 갈 때는 체스판을 챙겨가야겠다. 이제는 같은 패밀리가 된 그분과, 초보끼리 조심스럽게 첫 수를 두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