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그리고 타히티의 밤
중학교 때 읽은 『달과 6펜스』는 고등학교 시절 『데미안』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가장 사랑하던 책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꿈을 찾아 훌쩍 떠나버린 찰스 스트릭랜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뚜렷한 꿈이 없던 내게, 불타는 열정 하나로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타히티로 떠난 그의 삶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나도 그가 바라봤던 타히티의 밤하늘, 그 달과 별이 보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나도 타히티에 가볼 수 있을까?’ 당시의 내게 타히티는 불가능에 가까운 곳이었다. 인터넷조차 없던 시절이라 가는 방법조차 알 수 없었고, 여행 경비는 학생이 아르바이트로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큰돈이었다.
결국 나는 그 책을 그저 재미있게 읽은 소설로 남기기로 했다. 책을 따라가는 삶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중학생의 나는 스스로에게 아주 엄격한 선을 그어버렸다. 먼 미래에도 타히티는 닿을 수 없는 곳이라고.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왜 그렇게 쉽게 내 꿈의 범위를 정해버렸을까.
시간이 흘러 남편을 만나 결혼 준비를 하게 되었을 때였다. 평소 결정을 번거로워하던 남편은 집, 예식장, 날짜 같은 큰 선택부터 사소한 것들까지 대부분을 내게 맡겼다. 내가 고른 것이라면 별다른 이견 없이 따랐다. 단 한 가지, 웨딩 촬영만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인위적으로 꾸미고 사진을 찍는 것도 싫고, 그런 사진을 집에 걸어두는 것도 싫다고 했다. 그의 고집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가시 돋친 듯 쉽게 삼켜지지 않았다.
사실 웨딩 촬영은 어릴 적부터 결혼식 과정 중에 단 하나,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단순히 드레스가 탐나서가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내 욕심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기에, 그 거절은 그간 쌓여 있던 서운함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가슴에 불덩이를 얹어놓은 듯 화가 치밀어 올라, 결국 저녁 식사 도중 식당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11월의 바람이 얼굴을 때릴 때마다 달아올랐던 마음이 한 겹씩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청담동의 낯선 거리를 몇 시간째 걷고 또 걸었다. 결혼을 왜 하려는 건지, 이 사람이 내 짝이 맞는지,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어 정말 내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숨이 막혀 고개를 들어 올린 곳에 밤하늘이 있었다. 깜깜한 하늘에 어슴프레 달이 떠 있었다. 그 달을 보는 순간,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한 권의 책이 불쑥 떠올랐다. 『달과 6펜스』였다. 그날 밤의 분노와 답답함이, 중학생 시절 품었던 그 책의 감정을 다시 끌어올린 것 같았다.
‘나도 찰스처럼 다 엎어버리고 타히티로 가고 싶다.’
생각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결혼식 할 돈이면 타히티에서 일 년쯤은 살다 올 수 있겠다. 결혼도, 회사도 내려놓고 나 자신을 찾아 떠나고 싶었다. 그것은 현실적인 계획이라기보다는, 숨이 막혀 튀어나온 상상에 가까웠다. 도망치고 싶어서라기보다, 내 삶을 한 번쯤은 스스로 선택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더 가까웠다.
서른 초반의 나는 십 년째 쳇바퀴 같은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회와 부모가 정해준 ‘정답’ 같은 길을 성실히 따르느라,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묻지 않은 채 살아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웨딩 촬영은 여전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도 했다. 차가운 밤길을 오래 걸어서인지,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져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래, 대신 신혼여행은 타히티로 갈 거야.”
결혼을 엎지는 못했지만, 나는 결국 타히티에 갔다.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타히티 땅을 밟았을 때, 마치 꿈속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중학생 시절의 내가 ‘절대 갈 수 없다’고 단정 지었던 그곳에 내가 서 있었다. 불가능하다고 믿어왔던 것들 중에는, 사실은 너무 이르게 포기해 버린 것들도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타히티에서의 첫날밤, 고갱과 찰스가 올려다보았을 그 밤하늘 아래 나도 서 있었다.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이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은하수가 얼마나 찬란한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서울의 하늘은 늘 너무 멀어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타히티의 하늘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있었다.
그 밤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되뇌었다. 앞으로 남편과 내가 살아갈 날들도 이 타히티의 밤하늘처럼, 꿈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기를.
그때의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