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는 음식을 만들지 않기로 한 명절
내가 처음 결혼했을 때 남편 집에는 제사가 없었다. 하지만 이듬해, 암 투병 중이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제사가 생겼다.
어머니는 가족에게 헌신적인 분이었다. 신장 하나를 남편에게 기증할 만큼, 그리고 아버지의 긴 투병 생활 동안 혼신의 힘으로 곁을 지킬 만큼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최선을 다했으니 여한이 없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찌 슬프지 않으셨을까. 첫 번째 제사상에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정작 드실 분은 곁에 없었지만, 어머니는 홀로 상다리가 휘도록 음식을 차려내셨다.
내 남편상이니, 내가 차릴 거다 너는 들어가 쉬라고, 절대 하지 말라고 만류하셨지만 주방에서 혼자 땀 흘리는 어머니를 두고 마음 편히 쉴 수는 없었다. 나는 명절마다 주방 근처를 얼쩡거리며 심부름을 하거나, 이야깃거리를 만들며 어머니 곁을 지켰다.
그렇게 5년쯤 지났을까. 어느 날 어머니가 선언하셨다. 이제 '과일 제사'를 지내겠다고. 과일과 강정, 그리고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소보로빵만 올리겠다고 하셨다.
이유가 있었다. 냉동고를 정리하다 몇 년 치 제사 음식을 발견해 모두 버리게 된 것이다. 게다가 형님 댁 냉동고에도 먹지 않는 제사 음식이 한가득인 걸 보시고는 마음을 굳히셨단다. 힘들게 만들고, 전기세 들여 보관하다가, 결국 고역스럽게 버려지는 낭비를 더는 하지 않겠노라고.
물론 그 이듬해 제사에서 어머니는 마음속 사투를 벌이시는 듯했다. 손주들이 좋아한다는 핑계로 육전과 새우튀김을 딱 한 접시만 부치셨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전 부치는 프라이팬조차 꺼내지 않으셨다.
제사를 지낸 지 십 년째 되던 해, 마침내 명절 음식이라 부를 만한 ‘꼬리 붙은 전들’은 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명절 전날인 오늘, 예전 같았으면 하루 종일 기름 냄새 속에 살았을 텐데 우리는 느지막이 일어나 아점을 먹고 운동을 다녀왔다. 아이는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어울리고, 나는 어머니와 차를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다고 제사상이 초라한 것은 아니다. 사과, 레드향, 포도, 딸기, 소보로빵, 강정, 떡국을 소복이 올린다. 작은 상에 빽빽하게 올리니 보기에도 좋고, 제사가 끝난 뒤 가족들이 남김없이 맛있게 나눠 먹을 수 있어 좋다.
비로소 모두가 편안한 명절이다.
어머니는 본인이 죽고 나면 제사 지내지 말라고 하신다. 지금은 본인이 건강하니 내가 차리고 싶어서 하는 거고, 너 내는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런 차례상이라면 내가 호호할머니가 되어도 차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