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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e Aug 26. 2021

짜증 내는 엄마와 받아주는 아들

 나는 오랜 기다림 끝에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 아이가 생기기만 하면 책에서 나오는 자상한 엄마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쁜 말을 쓰고 항상 친절한 그런 엄마 말이다. 다른 엄마들이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면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엄마들에게 감히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것 자체가 죄송스러워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육아는 종교의 영역이란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의 육아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진정한 명언이다.


 하루 종일 아이와 같이 있다 보면 인자한 엄마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종일 참고 참다가 임계치를 넘는 순간 마녀로 돌변해서 갑자기 별거 아닌 거에 소리를 고래고래 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나면, 그런 내가 너무 싫었고, 아이도 갑자기 돌변한 엄마를 보며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는 아이가 돌이 조금 지난 후였던 것 같다. 아이에게 뭔가 새로운 걸 사줬는데 아이는 새것을 쓰지 않으려 했다. 새것이 더 비싸고 좋은 것인데 새것을 쓰지 않는 아이가 너무 답답했다. 그때는 잘 준비하려 갈 시간이어서 난 이미 지칠 때로 지친 상태였고 다른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던지 인내심의 한계치를 벗어나 갑자기 폭발하고 말았다. 아이에게 막 소리를 치르며 울기 시작했다. 펑펑 울면서도 답답했던지 나는 내 가슴과 머리를 스스로 쳤는데, 나도 태어나서 내가 그런 식으로 감정을 폭발시킨 적이 없었던지라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나도 놀랐는데, 아이는 얼마나 놀랐을까? 아이도 같이 울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둘이는 껴안고 한참 동안 울고 말았다. 난 그 일을 아이가 잊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너무 어릴 때 일이라 기억하지 못하지 않을까 바랬는데, 아이가 답답한 마음이 들어 울 때는 자기 머리를 때리곤 하는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순간을 기억하는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프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아이를 간절히 기다릴 때의 마음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도 성인이고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나 자신의 감정의 변화는 갓난아이 마냥 드라마틱하게 이아와 같이 변해갔다. 나 자신의 감정도 새로 태어나 자라 가는 것 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이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그날 나는 자상한 엄마의 가면은 벗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말도 못 하는 돌쟁이 아들을 앞에 앉혀두고 '우리 같이 행복해지자!' 얘기하며 두 손을 마주 잡았었다.  

 

 그 후로 조금씩 아들에게 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진짜 엄마의 마음을 말이다. 행복할 때는 '네가 그런 말을 해줘서 엄마 진짜 행복해!'라고 말해주고, 힘들 때는 '엄마 지금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하겠어'라고 몇 시간쯤 발랑 누워 뒹굴거리기도 했다. 어느 육아서에서 읽은 잠깐 자리를 피하기 방법은 정말 요긴했다. 진짜 화가 나 소리를 지를 것 같으면 잠깐 화장실에 갔다 왔다. 그러면 막 소리를 지르며 야단치지 않고, 조금은 이성적인 모습으로 잘못을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다고 아들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면 내 감정을 솔직히 입밖에 내어놓는 것 자체만으로도 조금은 해소가 되어 내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전처럼 기분이 좋지 않아도 웃는 얼굴로 아들을 보지 않았다. 그럼 아들도 엄마 기분 좋아지게 뽀뽀를 해주거나, 노래를 불러준다. 눈치껏 장난감도 치우고, 집안 정리도 도와준다. 화가 났던 마음도 그런 아들이 보고 있으면 사르륵 사라지고 만다.


 나는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어른이었던 것 같다. 그것을 스스로 깨닫지도 못했다. 화가 나고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말도 한마디 못 하고 속으로만 쌓아두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들을 만나고 내가 이런 미성숙한 상태인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은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아들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잘 터놓기가 힘들다. 그런 주제에 아들에게는 항상 마음을 얘기해줘야 한다고 훈계를 한다. 아이에게 말하면서 나 스스로 한번 더 다짐한다. 아들과 나는 로를 다둑이며 같이 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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