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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얀 Jun 06. 2020

살아남기


 거리에서 숨을 참고 걸었다. 사람들은 바로 닿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다른 곳을 보고 서있었다.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눈을 허공에 대고 있었다. 순간, 이게 내게 굉장히 익숙한 풍경이란 걸 깨달았다.


 내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던 방식, 모르는 사람이 옆에 서있는 것만으로 '관계'라 명명하던. 닿지도 않고 공기가 들이쉬지도 않게 숨을 참는 비일상적인 모습이 내가 일상적으로 타인을 인식하던 모습이었다. 그렇게 개념을 잡아놨었다. 당연하게도, 모두가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모르는 역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있다 제 역에 내려서 떠나는. 그런 게 관계라 생각했다. 설마 손을 맞잡고 입을 맞출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해본 적 없었다.

 나는 보는 듯 보지 않는 그 시선이 낯설지 않았다. 조금만 재채기를 해도, 접촉해도 날 선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벌려놓은 한 사람이 더 들어갈 정도의 거리가. 내겐 낯설지가 않았다. 어쩌면 난 경계 태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항상 공격받을 준비를 해야 했고, 나를 좀 더 단단하게 해 다치치 않게 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타인의 온기를 동경했다. 만져서도 안되고 말을 걸어서도 안되지만, 같이 있고는 싶은 아이러니. 그렇게 가까이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게 내가 타인과 관계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사람들을 보는 방식은 주로 엿보기였다. 엿보기나 엿듣기. 악취미였다기보단 직접 보고들을 기회가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냥 적당한 거리 떨어져서 허공을 보며 웃다가 집에 돌아왔다. 항상 텔레비전 보듯 사람을 관망하던 습관은 소중한 사람들이 생겨난 뒤에도 계속됐다. 멀리서 인사만 했다. 마치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 채 손만 흔드는. 딱 그 정도의 거리.


 내가 인식하던 세상이 외부에 재현되어 눈 앞에 펼쳐진다. 저건 분명 타인이지만 지나가는 나의 모습이다. 수백 수십 명의 내가 떠다닌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인사만 하며, 호흡을 멈추고 걸어 다닌다.

 시각과 청각만 있던 관계에서 촉각과 미각도 있다는 사실을 안 지 오래지 않았다. 분명 세상의 소통 방식에는 마스크 이외에도 촉각과 냄새, 숨결 등이 있었다. 이제 막 얼굴을 벗겨내기 시작한 단계에서, 사람이 단체로 머리를 감추고 거리를 내달리는 모습은 마치 내가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믿던 날들과 닮아있다. 하지만 실은 그건 자기 위안에 불과했다. 그저 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술책이었다. 나는 그냥 날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거부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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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오늘 쓴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은 지금 다시 유효해진 글. 나는 이제 낯선 사람에게 선뜻 다가가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타인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보는 것이 무섭고 힘이 듭니다. 가장 예민했던 시절의 왕따의 경험은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게 아니더군요.

<방어막>, 2020, oil pastel on paper, 35x26

5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사랑을 알게 되어 마음이 활짝 열리기도 했고 두려움에 마음의 문을 이중삼중으로 잠그는 일도 있었어요. 지나치게 믿는 것은 위험하고,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죠. 타인과의 눈 맞춤은 때론 경이로우면서도 무섭습니다. 너와 나 사이에서 경계는 끊임없이 세워지고 다시 허물어집니다. 우리는 무한히 열리고 닫히는 문을 마음속에 하나씩 달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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