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 속의 현실 속의 비현실성'
근래 본 영화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였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재밌게 봤던 기억이라 순전히 제목 때문에 선택한 영화였는데, 신선한 충격이랄까, 임팩트가 있었다. 1인, 2인 ,3인에 비해 4인 구성은 뭐랄까, 기하학적인 맛의 관계를 기대하게 된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확실히 주연 4인 중에서 어느 하나 비중이 떨어지는 역할이 없으면서도, 그들간의 묘한 관계,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무작위로 4장의 타로카드를 뽑아 이야기를 엮은 느낌이랄까. 카드로 친다면 이런 느낌.
Blue, Red, White, Green, Orange(?)
일단 영화라기보다 '연극'의 느낌을 강하게 내고 있다. 롱테이크 위주의 긴 호흡이 그렇고, 언제나 배경에서 각자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엑스트라들의 연기가 그렇고, 영화가 끝나고 내려오는 막까지, 분명히 '연극'적인 느낌을 의도한 티가 났다.
'롱 테이크'라는 것이 무조건 영화의 예술성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배우의 연기력과 여러가지 기술적 기교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단순히 '어렵다'는 것 하나만으로 예술적이라고 하기엔 분명 부족하다. 어려운 '기교'와 예술성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물론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단지 기술적인 것을 뽐내기 위해서 롱 테이크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일단 '연극'이라는 이 영화의 정체성 확보가 첫번째 이유인 것 같다. 두 번째는 롱 테이크의 또 다른 특징과 관련이 있다. 롱 테이크는 '리얼리티'를 보장해준다. 카메라가 멈추지 않고 인물들을 따라가며 비추는 동안, 적어도 그 안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현실적이다, 라는 암시. <버드맨>에서 쓰인 인상적이었던 롱 테이크도 이 점을 잘 이용했던 것 같은데, 발달한 현대적 편집기술 덕분에 실제로 한 번에 촬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 '리얼리티'에 대한 암시는 여전히 유효하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에서 그 리얼리티는 어디에 쓰이고 있을까. 그것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시도, '색'을 활용한 공간 구분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섯 가지의 색이 있다. 그것은 다섯 가지의 무대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는 규칙이다. 구분을 하자면
파란색 : 첫 장면부터 나오는 레스토랑 바깥의 장소에 쓰인다.
빨간색 : 주 무대가 되는 레스토랑의 넓은 홀에 쓰인다.
하얀색 : 레스토랑에 딸린 화장실.
초록색 : 요리사가 있는 주방과 식품창고.
주황색 : 이건 좀 애매한데, 조지나와 마이클의 정사장면, 그리고 냉동창고와 썩은 식료품이 가득한 트럭 화물칸 등 주로 두 사람이 나체로 있는 장면에서 나온다.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색들은 물론 각 장소와 사건에 대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롱 테이크 위주로 흘러가는 연극적 흐름에서 마치 다음 신(scene)으로 넘어간 것 같은 착각을 주는 데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인물의 옷(특히 화장실을 오갈 때 조지나의 옷)이 배경에 맞게 색이 변하는 경우도 있는데, 롱 테이크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바로 이런 변화의 현실성을 보장해주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면서 의미적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에서는 요일 메뉴를 이용한 '근사한' 챕터 구분이 존재하지만, '색'을 이용한 챕터 전환 역시 동시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준다. 롱테이크라는 속임수 속의 몽타주라는 속임수. 그것은 '연극'에서 '영화'를 만들어 내는 근사한 '착시'이다.
이러한 것들은 배경과 색의 의미성을, 서사가 한창 흘러가고 있는 와중에도 자연스럽게, 또한 지속적으로 암시한다.
파란색은 무법과 폭력, 억압의 세계다. 그것은 '도둑'인 알버트의 공간이며, 숨겨지지 않고 발산되는 야만의 공간이다. 이 세계는 레스토랑 바로 옆에 붙어 있으며 누구나 언제라도 그곳으로 쫓겨날 수 있다.
빨간색의 레스토랑은 이 영화의 주 무대이면서, 인간이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그곳은 각종 욕망과 야만이 문명과 교양에 의해 가려진 듯 노출되고 있다. 온갖 죄악의 동기가 꿈틀대고 있으며, 동시에 그럴듯하게 통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한 것은 그곳에서 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은 오로지 '식사' 뿐이라는 것이다. '사랑'이든 '죄'든,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그곳을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장소를 가리지 않는 알버트의 깽판은 예외로 하자).
하얀색의 화장실은 아슬아슬한 공간이다. 그곳은 얼핏 욕망의 실현장소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실현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극 중 긴장이 가장 아슬아슬하게 드러나는 곳으로, 모든 것이 새햐안 그곳에서는 '숨김'이 지속될 수 없다. 조지나와 마이클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주방으로 도망친다.
초록색의 주방은 '진실'에 가장 가까운, 이 영화에서 가장 특수한 공간이다.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음식들의 원천은 이곳에서 나온다.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모든 것들의 원래 모습이 있는 곳이며, 그곳에서 조지아와 마이클은 비로소 정사를 나눌 수 있다. 동시에 만약 그런 불륜이 죄라면,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죄의식이 소년의 노래로 언제나 일깨워지는 곳이며, 그들을 숨겨주는 요리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황색은 조지아와 마이클이 나체로 있는 장면에서 주로 등장하는데, '초록색'의 식료품 창고 안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주위에 둘러진 색이기도 하다. 가장 은밀하고 감미로운 순간 같기도 하지만, 가장 지옥에 가까운 색이기도 하다. 그들의 목숨을 위협할 냉동 창고와,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구토가 나오는, 썩은 음식과 벌레들이 가득한 곳도 주황색이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에서 '죄'란 끊임없이 상기되는 주요한 주제다. 그러나 어떤 것이 죄인지 단순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폭력, 색욕, 식욕, 허영, 탐욕... 마지막 장면에 알버트를 심판하는 조지나의 모습은 천박하고 폭력적인 '교양'에 대한 가장 그로테스크한 복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이클의 운명(....)과 그들의 은밀한 사랑의 순간에도 울리던 죄의식의 노래는, 이 영화에서 '사랑'이나 '욕망'이 절대선인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복잡한 죄의 관계를 둘러싼 그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것은,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줄 것 같은, 마치 신의 모습과 흡사한, 입이 무거운 요리사 한 사람이다.
- 굉장히 단조로우면서도 어떤 안도감, 긴장감 등을 불러일으키는 OST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 압도적인 미장센. 그것들의 대부분이 멋진 프랑스 요리라는 것이 황홀할 뿐이다. 보는 내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 가장 인상적인 음식은....... 역시 그거(?).. 그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나? 충격적이진 않았지만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잊지 못할 것 같다.
- 알버트는 덤블도어다. 세상에.
- 마이클은 '반지'다. '프로도....넌 도망칠 수 없다..'
- 흥미로운 대사. "메뉴를 만들 때 가격은 어떻게 정해요?" "색이 검은 건 무조건 비싸게 부르죠." 멋진 캐릭터였다. 요리사.
- 알버트의 폭풍같은 깽판은 <시민 케인>의 젠틀한 깽판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그는 영화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정말 쉬지도 않고 온갖 천박한 말을 쏟아낸다.
- 넓은 레스토랑 내에서도 아주 좁은 책상이 있는 자리. 요리 하나가 놓이고도 몇 권의 책과 꽃병 하나까지 올려 놓을 여유가 있는 아담한 공간. 마이클의 식탁은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알버트가 망쳐놓기 전까지.
- "이 단추먹은 놈아!" 이 영화는 근래 본 영화중에서 가장 미친 것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정신을 놓은 것 같은, 여러가지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미지 출처 : http://movie.naver.com/, https://en.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