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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May 01. 2018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상수는 훌륭했다. 변수는?'

Captain America: The Winter Soldier 2014 - 조 루소, 안소니 루소

 



명품의 함정


개인적으로 히어로들 중에서 가장 관심이 덜 가는 것이 캡틴 아메리카다. 그의 독보적인 '착함'은 회의로 가득한 요즘 시대에 오히려 전위적인 면이 있다고 치자. 안경모양 마스크는 아무리 개조를 해도 촌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고(그래서인지 캡틴 아메리카는 자주 마스크를 벗어 던진다), 돌아오는 원리가 신기한 방패는 종종 회수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방패의 주인 뿐만 아니라 연출자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강한 인간'이라는 특징은 그의 외모적인 특성과 맞물려서 '슈퍼맨'의 하위호환 같은 느낌을 주는데, 슈퍼맨이 너무나 강력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캡틴 아메리카는 동료 히어로들과 있을때 드러나는 상대적인(?) 약함과, 그 약함을 배려해주는 연출이 탐탁지 않았다. 


그렇다면 따로 무대를 마련하여 캡틴 아메리카의 원맨쇼가 된다면 어떨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별 감흥이 없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켜졌고, 그는 물론 멋진 액션을 선보이며 종횡무진했다. 하지만 결국 예상대로 그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고, 예상대로 적으로 만난 오랜 친구를 구해주고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예상과 달리 블랙위도우와 맺어지는 일' 같은 것은 없었고, '예상과 달리 닉 퓨리가 죽'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예상대로. 예상대로라는 말은 기대를 충족시켰다는 말이고, 본전을 잘 찾았다는 말이다. 사실 장르적 영화에서 기대를 충족시킨다는 것은 장르의 정체성 그 자체이기도 하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러나 동시에 영화의 존재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보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기대'를 그대로 충족시킨다면, 무엇을 '기대'하며 영화관을 찾을까.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명품 액션감을 소비하기 위해서? 그것은 액션이 가장 훌륭하다고 판명된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것과는 어떻게 다를까. 장르의 존재 이유는 기대 충족이 분명하지만, 장르 내에서의 재생산은 분명히 변주라고 할 수 있는 어떤 '다름'의 추구에 있기도 하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그 '다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내 기준엔 없었다. '내부의 적'과 '믿음'이라는 멋진 주제를 가지고도 그것을 이미 너무 익숙한 방식으로 다뤘다. 캡틴은 위도우를 너무 쉽게 믿었고, 또 그렇지 말아야 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흑막이라고 할 수 있는 피어스 국장은 전투가 벌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미 총구가 겨눠진 상태다. 잠깐 전기 충격기로 얕은 반전을 시도해 보았을 뿐. 위도우, 닉 퓨리, 간호사, 대원, 샘 윌슨(팔콘). 아무도 믿지 말라더니 주위엔 죄다 믿음직한 녀석들이다. 영화는 어떤 '불안'도 제공해주지 않았다. 때문에 달성했을 때의 쾌감이라는 것도 거의 없었다. 총알 낭비나 하는 적을 뚫고, 이제 범인들 사이에서 홀로 먼치킨이 된 캡틴이 모든 것을 구해낼 것이고, 그대로 되었으니까. 유일하게 멋졌던 것은 우리의 국장 닉 퓨리의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 도주 액션이었다. 시민들의 출근길(?)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면서도 꿋꿋하게 나는 살아야겠다고 필사적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국장의 모습이 예상밖이라 오히려 빛나보였다. 


원래 히어로물에서 히어로보다 더욱 주목받기 마련인 빌런은 어떨까. 어찌보면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윈터 솔져, 버키 반즈는 쿨하고 멋지다. 까만 옷과 반짝이는 은빛 팔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외양을 제외한 그는 그냥 캡틴 아메리카와 친분이 있다는 것 외엔 어떤 딜레마도 가지지 않은 텅 빈 빌런이었다. 그저 기억을 잃고 조종당할 뿐. 게다가 이름을 외치면 으아아 기억이.. 머리가.. 머리가! 라는 식의 진행은 진부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진부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명색이 윈터 솔져인데 그냥 그를 잠깐 소개하는 티저 영상을 하나 본 것 같은 느낌만 남았을 뿐. 앞으로 그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모르겠지만(아직 다음편을 보지 못했다), 그에 대해 별로 책임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왜일까. 


이런 영화를 보면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 아닌가, 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영화'라는 것은 그 영화가 '장르적'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모든 장르는 그 시초를 제외하면 일종의 2차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창작물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1차와는 어떻게 다른가하는 데 있다. 어떤 차이점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그것이 아무리 본전에 충실한 명품이라고 해도, 2차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더군다나 주인공은 너무나 평범하고 올곧기 때문에 캐릭터 자체가 간직한 딜레마조차 희미한 상황인데. 그것은 크리스 에반스의 액션력이나 CG의 스케일, 숨막히는 추격 장면, 통쾌한 폭발 같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 아무것도 안 먹는다.


- 어쨌든 사무엘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 이 영화의 컬트적인 재미는 '팔콘'에 있다. 난데없이 적의 본진으로 날아가(그는 열심히 날고 날고 또 난다) 미사일과 추격전을 벌인다. 그리고 당당하게 무전으로 '교전중'이라니. 그의 임무는 적의 미사일 소비일까.


- 카운트 다운을 하는 시계따위 부숴버리고 그냥 바로 버튼을 누르는 버릇을 들이기만 한다면, 악당들은 꽤나 자주자신들의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입을 닫고 그냥 방아쇠를 당기든지. 


- 그래, 다크나이트가 유난히 별종이었던 작품인 거지...


- 스톰트루퍼 효과. 총알을 자석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방패. 





      

(이미지 출처 : http://mov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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