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봉 빙봉
꿈과 희망의 디즈니
디즈니는 항상 그렇다. 뻔하고, 캐쥬얼하고, 거의 비슷한 주제와, 변함없는 기승전결, 노골적인 동심 강조와, 같은 방식의 눈물샘 자극. 그들은 이 요소들을 벗어날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것들을 추구한다.
디즈니의 만화는 언제나 익숙하다. 그들은 가장 보편적인 것을 기어코 놓치지 않고 끌고가는 질긴 보수성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래도 디즈니는, 꿈과 희망을 줘야 하잖아요'. 그 고집 때문에, 팀버튼은 디즈니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다.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가 길에 떨어진 십원짜리만큼의 가치도 지니지 못한 시절이지만, 촌스럽고 부끄럽게도 그걸 입에 담으며 추구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디즈니를 너무나 좋아한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뻔한 보편성은 언제나, 항상 나를 자극한다. 나는 알면서도 당하고, 내가 꼭꼭 숨겨왔던 단순한 감정에 몸을 기대고 편안하게, 그것을 즐긴다. 이쯤되면 나올 만한 감동적인 대사, 눈물샘을 자극하는 쓸쓸한 장면에서, 나는 나를 방어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약점을 안다. 그것을 방어할 수 없다는 것도. 그것이 아무리 단순하고 뒤떨어져보여도, 디즈니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날과 같은 냉소의 시대에, 그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죽을 때까지, 어쩌면 영원히, 세상 어디선가 디즈니란 회사가(혹은 픽사가) 그런 애니메이션을 끊임없이 만들어 낼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 좋다.
나는 정말 이런 캐릭터에 약하다. 못생기고, 인기없을 것 같고, 비주류에, 눈치 없는 캐릭터. 게다가 어릴적부터 함께 있었던 '상상의 산물'이라니.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법한 상상의 친구(그것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젠 거의 잊혀져 노숙자처럼 낡은 외투를 입고 기억 속 어딘가를 쓸쓸하게 헤매는 녀석.
빙봉이 기억 쓰레기장을 빠져나가려는 마지막 도전에서 기쁨을 위해 수레를 버리는 것은 물론 예상했다. 그가 결국 사라져버릴 거라는 것도. 하지만 스쳐가듯 건넨 그 말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 대신 라일리를 달에 데려다줘'라니.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진행중인, 나의 달을 위한 여행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은 내 안의 누가, 나를 달로 데려다주는 역할을 맡고 있을지 잠깐 생각했다. 누구나에게 달은 있다. 나도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외부의 누군가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 안의 무언가와 이별하는 것은 방어할 수 없이 슬프다. 이렇게 디즈니는 결국 또 이겼다. 나는 속으로 아직 떨어지지 않으면 눈물이 아니야, 라고 중얼거리며 혼자 의미없는 반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싸이코패스같은 기쁨은 잠깐 묵념한 뒤, 금방 그를 잊고 제 갈길을 간다. 난 처음부터 저게 맘에 들지 않았어. 가증스러운...)
유년, 추억, 가족, 사랑.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소재는 진부하다. 그러나 만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유머, 리듬, 대사, 소품)은 해마다 세련된 모습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건 분명히 보통 일이 아니다.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디즈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 구슬. 이정도로 탐스럽게 묘사된 아이템은 쉽게 볼 수 없다. 데굴데굴 구르고, 날아가고, 가방에 넣고, 품에 안기고. 기억의 구슬의 질감은 작품 내내 강조된다. 드래곤볼 이후로 이렇게 구슬이란 걸 갖고싶게 만드는 작품이 있었던가...
- 브로콜리 피자. 나만 맛있게 보였을까.
- 만만치 않은 심리학적 배경지식을 토대로, 그것들을 잘 변주하여 기발하게 형상화해낸 그 세계관은 분명 매력적이다.
- 라일리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 라고 외치는 수십명의 상상 속 남자친구들이 줄줄이 복사되어 만든 인간 다리가 무너지는 장면은 진짜 잊지 못할 것이다. 근래에 본 것들중 가장 미친 장면이었다.
(이미지 출처 : http://movi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