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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Jul 09. 2018

[영화] 마션

'여보세요? 여기는 화성.' 

The Martian 2015 - 리들리 스콧





<마션>의 장르


'우주' 영화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리고 그 전에도 우주에 대한 영화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래비티>, <인터스텔라>에 이어 <마션>까지 이어지는 '우주 3부작'이 돌연 화제가 된 짧은 기간이 있었다. <E.T>도 있었고, <스타워즈>도,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도 있었다. 찾아보면 얼마든지 우주와 관계된 영화는 많은데, 어째서 이 세 영화는 유독 시리즈로 화제가 되었던 걸까. 


생각해보면 이 세 영화는 그들 스스로 묶일 수 있을 정도로 장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조난'이라는 소재. 그렇다면 <캐스트 어웨이> 같은 조난 영화와는 묶이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그것은 이 세 영화들이 '우주'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단순한 배경이나 소재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는 것이 다른 우주 작품들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렇다. 주제는 '우주'다. 절대적으로 혼자인 공간에 남은 인간의 고독도, 물리적으로 단절된 세계를 넘어서 발휘되는 가족애도 이 영화들의 메시지가 될 수 없다. 언제나 인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한히 펼쳐진 미지의 아득한 공간, 그 세계를 더듬는 감각, 그것이 특별한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이 '우주 영화'들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마션>은 어딘가 좀 다르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갖고 있었고, 그래서 충분한 장르적인 기대감에 빠져 영화에 몰입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시작부터 나의 기대가 뭔가 어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시각적인 배경은 더할 나위 없는 '우주 영화'이다. 그러나 사소한 장면들이, 영화가 스스로를 진행해 나가는 그 문법들이, 너무나 낯익은 수작들이었다. 곧 나는 그 불쾌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흔히 '클리셰'라는 말로 부르는 것들이었다.


총알을 뽑는 것처럼 스스로 복부에 박힌 안테나 파편을 꺼내는 수술을 하는 장면,

희망을 잃은 고립 상태에서 스스로 쓰는 영상 일기 - 생존 일지,

현실적, 정치적 이유를 대며 구조에 회의적인 권위자,

모든 게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예상 가능하게 터지는 '예기치 못한 사고'의 뻔함,

시간이 급격히 흐르고 난 이후에 엄청나게 자란 주인공의 수염(과 비쩍 마른 몸),

감동적인 피날레를 위한 '세계' 시민들의 응원 까지...


<마션>에서 단지 '우주'라는 배경을 슬쩍 들어내보면 너무나 익숙하게 보아 왔던 헐리우드 영화의 기본적인 문법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개연적인 필요성에 의해 등장한 장면이라기보다(특히나 안테나가 복부에 박히는 장면이 굳이 등장할 필요는 없었다, 고립만 해도 충분히 무거운 사고니까) 그저 영화를 구성하기 위한 익숙한 손버릇처럼 보였다. 구성과 진행을 그렇게 쉽게 쉽게 익숙한 것들로 채워 넣어서 갔기 때문에 결국 이 영화가 주제를 다루는 방식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이 영화는 '우주'라는 것을 정말로 다루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우주'를 배경으로 한 헐리우드 식 조난 영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영화를 모두 보고 난 다음의 생각은 후자였다. 그것이 이 '우주 3부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 영화 중에서 <마션>이 조금 뒤떨어져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별개로 흥행력은 보장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비티>는 '우주'를 관객에게 직접 감각하도록 했다. <인터스텔라>는 '우주'를 직접 관객에게 여행시키며 '가족'과 '시간'이란 개념에 대한 아득한 감각을 전달했다. <마션>은 글쎄, 메인 플롯과는 별개로 전달되는 그 특징적이고 입체적인 요소를 구현해낸 앞의 두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그저 생존게임이라는 단순한 메인플롯을 유지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또 영화 한 편을 보았구나, 하는 익숙한 그 느낌만이 남았을 뿐. 


가능성


이 영화가 스스로 의식했는지는 의심이 가지만, 그래도 <마션>이 주요하게 다뤘던 개념 중 하나는 시공간적으로 떨어진 두 세계의 '텔레파시'적인 연결이다. 이 영화에서 유독 강조되는 것은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있는 화성의 캠프와 지구의 NASA의 과학자들끼리 '정보'를 서로 교환할 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딜레이다. 적절한 교신 수단이 준비된 이후에도 존재하는 30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작중에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영화적 허용(?)으로 두 세계의 교신은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묘사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행동들, 예를 들어 패스 파인더를 찾아내고 그것을 가동하는 순간의 동시성, 로버의 천장을 구멍내어 뚫는 실험과 그것을 마크 와트니가 그대로 반복하는 두 장면의 동시적인 편집은 이 영화가 고립자와 문명 사이에 연결되는 미세한 끈의 감각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의 '텔레파시'라고 생각될 정도로 적나라하게 동시적으로 이뤄지는 그것은 분명히 이 영화 <마션>만의 독특한 주제의식이 되어 발전할 수 있었을 요소였는데, 안타깝게도 그저 과학적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넘어가버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놀란이라면 분명히 이걸 가지고 멋진 이야기와 구성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이미 만들었던가, 과거의 자신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블랙홀 안에서 필사적으로 책장의 책을 떨어뜨리던 그 시도). 심지어 그 개연성조차도 조금 의심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다. 패스 파인더를 무작정 찾아나서는 마크 와트니의 그 행위에는 반드시 97년 작동 중지되었던 패스 파인더의 반대쪽 수신기를 여전히 NASA에서 작동시키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가능한 행위였다. 만약에 자신이 그걸 찾아 나서는 모습을 위성으로 보고 NASA에서 오래전 묵혀놓았던 지구의 패스 파인더를 작동시켜서(혹은 다른 기기로) 그의 정보를 수신할 거라는 기대를 했던 거라면, 왜 애초에 캠프 근처의 흙바닥에 길게 SOS 글자 따위를 적어서 그것을 위성사진에 노출시켜서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메시지를 간단하게 전달하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일까. 뭐 그런 의문을 비롯한 과학적인 고증의 오류야 이런 영화에서 얼마든지 많은 것이니 넘어가기로 하자. 


또 다른 주요 개념은 문명과 자연(우주)의 대결이다. 영화 <마션>은 지구에서 인간이 그동안 쌓아왔던 '과학 문명'에 대한 낭만적이고 도전적인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다. 이 영화의 주요한 플롯은 어느 날 화성에서 고립된 한 인간 개인과 그를 지켜보는 인류의 지식인(과학자)들이 과연 이 사고를 어떤 과학적인 방법들을 총동원해서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과학 문명에 대한 건전한 신뢰가 이 플롯의 열쇠가 된다. 생명과학, 화학, 물리학 등 인간 과학 문명의 최첨단(적어도 영화에서 동원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의 지식 무기들이 결국 마크 와트니라는 한 개인을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킬 수 있게 되어 결국 승리를 이끌어낸다. 이 과정에서 과학 문명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나, 그 문명을 다루는 인간의 아이러니한 한계성 같은 의문은 없다. 물음이 없기 때문에 그냥 '건전하다'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것은 마치 추리소설의 '트릭'을 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실이나 수증기, 얼음 뭐 그런 것들을 사용해서 밀실을 만들어 놓는 것을 보고, 우와, 한 번 하고 말 그런 기분. 뭐 거기서 만족한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것이 추리소설, 즉 <마션>의 기본적인 장르가 '생존과 구조 영화'인 것에 만족한다면 말이다. 


별로 중요하지는 않은, 장점과 단점


<마션>의 너무나 큰 장점은, 그렇게 뻔하다 할지라도, 영화의 중후반부터 이어지는 그 긴장감에 있다. 실패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기회. 맨손에만 의지하여 폭탄을 우주선에 설치하고 우주선 외부를 통해 선실로 돌아오는 그 손에 땀나는 장면(그 준비성 많은 사람들이 왜 간단하게 허리에 줄을 묶지 않고 그런 위험한 방식으로 이동하는지 속을 태운 사람이 분명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마크 와트니와, 의자에 앉아 필사적으로 그를 잡으려는 루이스 대장의 몸짓. 그리고 그런 상황들에서도 잃지 않는 마크 와트니의 B급 유머감각들(우주 해적이니 아이언맨이니). 뻔한 것들이었는데도 파워가 있었다. 그것을 헐리우드적 전통이 가진 힘이라고 해야하나. 잘 모르겠다. 겨우 그런 것들을 보기 위해서 소비하기에, <마션>이라는 영화가 처음에 내게 주었던 기대감이 조금 아깝기는 했다.


명백한 단점도 있었다. 영화에서 초반 중반을 거쳐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세력인 중국이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중요한 갈등의 해결책으로 불쑥 나온 것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런 식으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차라리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았다. 확률도 20분의 1이었다고 하면서 굳이... 중국이 태양신 호를 빌려주면서 얻어낸 효과는 그저 마지막에 마크 와트니 구출 작전을 응원하는 '세계 시민'들의 모습에 중국인들의 모습도 한 번 끼워주는 것 하나 뿐. 정말로 중국이 우주적인 세계관에서 큰 역할을 한다면, 적어도 영화의 초중반에 미리 그런 뉘앙스를 깔아놨어야 조금은 납득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NASA의 국장이 묘하게 중국의 기술력을 깔본다든지 하는 정도로. 


여하튼 <마션>은 여러가지 개인적인 기대를 배반하게 만든 영화였다. '우주 영화'라는 기대, 그리고 '감자 영화'라는 기대. 영화를 보기 전까지 들은 게 있어서, 나는 무슨 화성 감자 테라포밍에 대한 영화일 줄 알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워지는 부분이었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 감자가 먹고 싶어지기는 했지만. 운 좋게도 마침 집에 사놓은 작은 알감자들과, 하인즈 케찹이 있었다. 조만간 삶아서 찍어먹어야겠다는 것으로 감상을 마무리해야겠다. 








- 인상 깊은 음식은 물론 감자, 겠지만 너무나 비중이 적었다. 또 너무 금방, 그리고 허무하게 다 얼어 죽어버렸다. 아쉬워라. 


-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바로 '엘론드 회의'. 그 회의의 참가자인 '보로미르'께서 두 눈 뻔히 뜨고 있는 앞에서 정말 예상치 못하게 언급되는 '반지의 제왕'은 이 영화에서 가장 센스 넘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보로미르에 네드 스타크까지 연기한 '그 배우'가 이번에도 죽느냐 하는 밈이 떠돌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 또 한 번 즐거울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안 죽었네. 


- 안면인식장애는 이번에도 발동. 왜 자꾸 맷 데이먼이 <파이트 클럽>의 브래드 피트로 보이는 걸까. 그리고 사실 숀 빈도 처음에는 그가 보로미르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낯이 익은데... 하고 봤을 뿐. 





(이미지 출처: http://mov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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