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수아이 Jun 29. 2018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웅장한 의도, 조잡한 바느질'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 - 잭 스나이더

 



일단 히어로


그 누구도 '누군가 나타나 세상의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라는 순진한 희망을 갖지 않은 시대. '선'이란 개념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부끄러우며, 차라리 냉소가 어울리는 시대에, 난데없이 히어로물이 유행하는 것은 왜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지금이야말로 사실 영웅이 필요한 시대다'라며 온갖 현실문제를 끌어들여 이어보려는 시도는 글쎄, 조금 맥락을 잘못 짚은 것이 아닌가 한다. 현실문제는 어느 시대나 있었고(그리고 모든 인간은 거의 예외없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최고의 위기로 인식한다), 영웅서사는 오랜 기원을 가진 고전이나 마찬가지다. 새삼스럽게.  


한동안 유치한 영웅놀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별안간 '~맨'에 열광하기 시작하며 새로운 맨이 나올 때마다 거의 예외없이 흥행에 성공하는 현상은, 사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영웅'이란 존재에 대해 이제 완전히 기대를 접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압도적인 힘으로 위기에 처한 누군가를 결국 구해주는 정의의 영웅'이라는 개념은 장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고정된 상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상수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슈퍼맨이 쓰러지는 건물에서 누군가를 구해서 '공주님 안기'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은, 그냥 지나가다 무심코 커피를 홀짝이는 장면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결국 구해주겠지 뭐(그리고 그런 영웅은 현실에 없겠지), 라는 생각을 당연히 하는 순간, 이미 그들이 정말 이 많은 덫을 지나 악당을 물리치고 인질(주로 여자)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은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면 관심이 가는 그 변수는 무엇일까?


일단 . 사소한 것 같지만 실은 중요한 요소다. 대부분의 '~맨'들은 이제 연로하신 어르신들이다. 그들의 원래 복장을 새삼 찾아보면 우린 촌스러워서 버틸 수가 없다. 그런 창피한 옷들을 현대인의 눈에도 그럭저럭 볼만하게, 혹은 간지가 나도록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원래 무슨 '~맨'이었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수정하는 것은 사실 핵심적인 작업이다. 그들은 현대인에게도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복장은 상징적인 것이지만, 냉소와 과학의 시대에 의심이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 날아다니기 위해선 적절한 해명이 필요하다. 이제 사람들은 그들이 구할 수 있는가라는 사실보다 어떻게 구하는가하는 방법에(혹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가) 더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그렇게도 크립토나이트에게 집착한다. 스파이더맨은 가끔씩 거미줄이 안 나와야한다. 영웅의 초능력을 가지게 되는 이유가 방사선 노출 때문이란 것은 이제 일종의 마스터키가 되었다. 아이언맨(그리고 배트맨 역시)이 인기가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고 담백하게 '돈'이 많으니까, 라고 말한다(돈이란 가장 현실성있고 설득력 있는 이유다). 냉소의 시대에 가장 잘 맞는 히어로다. 방어력과 관련이 없는 그들의 쫄쫄이옷은 이제 해명이 필요한 시간이 되었고, 배트맨은 드디어 갑옷까지 입고 등장한다(히어로들은 그래도 아직 망토를 버리지는 않았다). 슈퍼맨은 자신의 자존심이자 상징이었던 빨간팬티를 벗었다. 이건 굉장한 양보다. 간지와 기능적 설명과 원본과의 연관성, 이 세 가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가 관전포인트의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촌스러운 옛 영웅이 얼마나 근사하고 설득력 있게 다시 살아났나, 하는 것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 cg기술을 비롯하여 여러 영화적 기술의 발달과 함께 히어로물이 다시 유행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사이다. 


그리고 빌런(악당). 어차피 구할 거 다 구하고 결국 승리할 예정인 히어로보다, 각자 사정과 개인적인 원한과 표현방식(?)이 제각각인 빌런들이 좌충우돌 날뛰는 걸 보는 게 훨씬 재미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난공불락의 히어로에게 결코 이기지 못할 싸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도전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인간적이다. 그들의 복장과 모양새는 대부분 그들에게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 상처와 관련이 있다. 히어로가 자신 내부의 악에 대해 어쭙잖게 고뇌하는 것보다, 태생적(적어도 영화의 시작부터) 악으로서의 실존을 온 힘을 다해 발버둥치며 증명하는 빌런들은 분명 현시대에 훨씬 매력적이다. 빌런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히어로물의 중반부는, 결국 히어로가 역경을 딛고 승리하는 후반부보다 훨씬 짜릿하다. 매력적인 빌런에 열광하는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이 오히려 그쪽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며(누구나 악하다), 그들에게 몰입하는 이유는 바로 그 빌런들이 악한 우리의 모습을 필사적으로 변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설득력이 있고 매력적이었던 최고의 빌런, <다크나이트>의 조커에 대한 찬사와, 이어질 악당 집단,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대한 기대(그러나 그 영화는 굉장히 실망스러웠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 사람들의 공감의 중심은 구조받는 사람들에게서, 강력한 히어로에서, 마침내 영웅과 맞서는 빌런에게까지 왔다. 


자, 이런 시대에, 도대체 우리의 히어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배트맨과 슈퍼맨  


서두(?)가 좀 길었지만 영화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은 그런점에서 좋은 스타팅포인트를 가지고 시작했다. '배트맨이 셀까, 슈퍼맨이 셀까'라는 유치한(그러나 효과적인) 소년성 호기심은 제쳐두고, 초인적인 영웅성과 절대선을 대표하는 슈퍼맨과, 기술적 영웅성과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는 배트맨의 대결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영웅 VS 빌런의 대결구도를 벗어나 영웅 VS 영웅의 대결은(어벤져스 시리즈에선 '티격태격'정도로 묘사되었다), 분명 새로운 지점의 사유를 요구한다. 


슈퍼맨은 거의 제한없는 힘을 지닌 최고의 히어로다. 파괴될 수 없고,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런 힘은 힘이 직접 작용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영화에서는 주로 슈퍼맨의 무한한 힘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하는 것을 문제삼는다). 우리는 이런 힘을 이미 알고 있다. 슈퍼맨은 현대 미국의 중요한 자아성찰적 문제인 '핵'을 꽤나 노골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인간의 무기는 사용되었을 때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효과보단 그 무기 자체의 상징성과 그에 따른 억제력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만약 상상만으로 존재하는 억제력에 누구도 상관하지 않게 된다면? 그리고 그 무기가 결국 우리에게 사용된다고 생각한다면? 슈퍼맨은 스스로도 영원한 선은 없다고 말한다. 언젠가 그 힘은 우리에게 향할 것이며, 우리는 거기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슈퍼맨은 예언적인 존재이며, 모든 예언은 언제나 종말만을 예언한다. 


배트맨은 타협적인 히어로다. 그는 슈퍼맨처럼 궁극적인 힘으로 궁극적인 해결을 하지 않는다. 한계를 가진 그의 힘은 언제나 찜찜함을 남긴다(그는 악당의 칼질에 종종 상처입는다). 배트맨과 관련있는 키워드는 '법'이다. 그는 슈퍼맨처럼 '모든 것'을 초월할 수는 없지만, '법'을 초월할 수는 있다. 따라서 그는 보다 현실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슈퍼맨보다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기대'하게 만든다. 그는 법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테러리스트이다. 정의에 있어서 법이란 세계의 여집합을 담당한다. 때문에 슈퍼맨과는 달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에 대해선 꽤나 익숙한 편이다. 스스로 예외상태를 선언하는 그는 어떻게보면 독재자이며,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사랑하면서도 반드시 미워하게 되어 있다(그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법-경찰과 항상 갈등한다). 배트맨은 막무가내의 폭력과 인권유린(낙인, 그리고 <다크나이트>에서 체포된 조커를 고문)을 사용해서 일을 해결하고는 누구도 발견할 수 없는 자신의 소굴로 사라진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언제나 끝나지 않는 '토론'이다. 그는 딜레마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일단 설정 자체는 싸우지 않아도 슈퍼맨의 판정승이다. 슈퍼맨은 배트맨과 비교하여 모든 능력에 앞서 있다. 밀리는 것은 딱 하나다.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다는)점. 모든 개념적 한계를 초월한 초인인 슈퍼맨이 철학적 존재라면, 법과 다투는 배트맨은 정치철학적 존재다. 따라서 그들의 대결 자체는 굉장히 상징적이고, 결과 또한 상징적이어야 한다.


두 마리 토끼


사실 앞서 말한 것들은 '히어로 영화'에 기대하기엔 조금 무리한 요구다. 만약에 <배트맨 대 슈퍼맨>이 그 문제를 다루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분명히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두 히어로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며, 또한 서로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세계(미국)는 그들을 제어하려하고, 그들은 거기에 반발하면서도, 과연 그것이 옳은가를 생각한다. 영화는 초중반에 걸쳐 이런 문제성을 적절하게 부각하였고, 두 히어로는 상징성과 더불어 적절히 두드러지는 개인적인 문제들 또한 놓치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그들이 대결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일단 공이 울리긴 했는데, 그 공이 겨우 렉스 루터의 조잡한 인질극이라는 사실은 꽤나 실망스러웠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포지션을 대표하여, 결국 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야 했다. 그들의 사이의 갈등과 의지로. 실제로 그 갈등은 점점 고조되고 있었고(배트카가 슈퍼맨과 충돌하여 음료수캔처럼 나동그라지는 장면은 분명 근사했다), 목줄만 풀리면 서로를 물어뜯을 개처럼 코앞에서 서로에게 으르렁대고 있었다. 그런데 목줄을 푸는 게 아니라 개미싸움처럼 억지로 등을 떠밀어 투닥거리게 만들다니. 거기서 초중반 그들에게 부여했던 모든 의미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무시무시한 클리셰의 행진이 시작된다(사랑하는 여자 인질과 친절하게 시간을 알려주는 전자시계, 요술봉 같이 생긴 크립토나이트 창, 생체 괴물, 어차피 통하지도 않을 총을 쏘아대는 나쁜 녀석들, 멋진 남자 히어로 사이의 브라더후드-당신을 구하러 온 아들래미 친구입니다 하하하, 굳이 필요했을까 싶은 슈퍼맨의 희생...). 


단조롭게 흘러갈 수 있는 양자대결구도를 피하기 위해 집어넣은 두 요소, 렉스 루터와 원더우먼은 그야말로 악수였다. 렉스 루터는 기대를 걸게 하는 부분이 많았지만, 결국 요즘 흔해진 건방지고 젊은 또라이 캐릭터에서 그쳤고, 그가 피를 매개로(캐리비안 해적도 아니고 피는 굳이 왜...) 어디서 분명 본 것 같은 대머리 건조피부 덩치 괴물을 소환하는 것은 기껏 등장한 렉스 루터란 캐릭터의 존재 의미마저 고민하게 만들었다. 원더우먼은... 따로 말하진 않겠다. 그게 그들이 생각한 어설픈 페미니즘 흉내내기인가보다 했다. 


영화는 '배트맨과 슈퍼맨 간의 대결'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주제를 정말로 감당하지 못했고, 그래서 놓친 수많은 개연성은 두 번째 토끼인 재미마저 놓치게 만들었다. 히어로물과 같은 판타지물에 있어서, 개연성을 근사하게 갖고 노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상징성이니, 깊은 의미니 하는 것 없이 단지 개연성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등장할 여러 '~맨'들과 후속편을 위한(관뚜껑이 들썩!) ppl의 홍수와 함께 심연으로 가라앉은 개연성은 나를 참 슬프게 만들었다. 더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왜'라는 질문을 던져버리면, 남은 것은 시각효과다. 실제로 이것만큼은 꽤나 멋졌다. 거대한 공간에서 아주 작은 육체로 묘사된 영웅들은 퉁! 하는 소리와 함께 콘크리트를 뚫고 여기저기 처박혔고, 그럴 때마다 전달되는 육중한 금속성 무게감과 현란한 광선, 배트카의 통쾌함, 슈퍼맨의 단단함은 감각을 효과적으로 자극했다. 


문제는 오버밸런스였다. 슈퍼맨이 등장할 때부터 쉽지 않은 문제라고 예견되어 있긴 했지만, 그 슈퍼맨에 맞서기 위해 그들은(배트맨과 조드 장군) 필요 이상으로 현란하고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특히 슈퍼맨과 동향이신 조드 장군은 미사일의 화력까지 흡수해가며 행성 수준의 전기를 뿜어대는데, 이제 싸움은 드래곤볼 정도의 규모로 변했고 그들이 내뿜는 눈부신 파워는 아이맥스 상영관에 3d안경을 쓰고 붉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나 같은 일반인이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슈퍼맨과 조드 장군의 레이져쇼 화력대결을 간접체험하는 나의 육체는 괴로웠다. 눈이 멀고 귀가 먹을 뻔... 함께 갔던 동행분들은 아마 전기 의자에 앉아 고문 당하는 느낌이셨겠지. 


결국 토끼들은 모두 도망가버렸다. 슈퍼맨의 관뚜껑이 들썩거릴 때 내가 느꼈던 공포는 진심이었다. 아마 아직 인류는 그의 (오버파워)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보다 했다. 








- 그들이 뭔가를 먹긴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슈퍼맨이 법정에 출두하는 장면은 뭔가 초현실적이면서도(슈퍼맨이 이미 초현실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근사한 장면이었다. 그가 뚜벅뚜벅 자리를 찾아갈 때마다 고조되는 내 기대감. 그리고 눈치 없는 렉스 루터놈의 폭발과 함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나는 법정에 선 그의 대사를 듣고 싶었단 말이다...


- 영화관 사람들이 가장 큰 소리로 웃었던 장면은 배트맨을 조드 장군의 광선으로부터 구한 것이 슈퍼맨이 아니라 뜬금없이 원더우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였다. 분명 쓴웃음이었다. 


- 슈퍼맨의 피부는 아주 좋았다. 면도자국조차 잘 보이지 않는 애기피부...


- 에이미 아담스와 최강희는 꽤 닮은 것 같은 느낌.






(이미지 출처 : http://movie.naver.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