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라는 그 말이 가져다 주는 것'
만약에...
만약이라는 말은 마약처럼 중독적이다. 일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살아가는 이상, 인간은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에 대고 '만약에'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종종 만약이란 말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쓸데없는 후회를 하느니, 허튼 공상을 하느니, 현재에 충실한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만약에'라는 말 뒤에 오는 것은 언제나 상상력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상상력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상상력은 물론 달콤하다. 실체 없는 상상은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때로 지나치게 굳어버린 현실을 역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대니 콜린스>는 바로 그 '만약에'라는 매혹적인 상상력으로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영화다. 만약에, 대니 콜린스가 34년만에 존 레논이 보낸 편지를 받는다면. 그 만약이라는 말이, 34년간 쌓여 왔던 무거운 현실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바람난 애인을 정리하고, 마약을 버리고, 순회 공연을 버리고, 그는 아주 오래 전에 잊었던 무언가를 찾기 위해 호텔의 작은(작지 않은) 방에 들어간다. 그는 스스로를 위해 작곡을 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잊었던 아들과 가족을 찾는다. 깜짝 파티에서 받은 오래된 종이조각 한 장으로, 그는 이렇게 변한 걸까?
그러나 실은 그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알파치노가 연기하는 대니 콜린스라는 늙은 가수는, 전형적이면서도 깊은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힐튼 호텔에 와서도 매니저에게 껄떡대고, 술을 마시고, 돈으로 많은 것들을 해결하려고 하고, 결국 마약에 다시 손도 댄다. 주인공을 변화시키는 전환점은 영화의 초반부에 진작에 등장하지만, 대니 콜린스는 편지를 받고도 여전히 대니 콜린스다.
이 말은 다른 측면에서도 유효하다. 편지를 받고 나서 대니 콜린스가 한 것은 무언가. 그 작은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즉시 그의 발걸음을 돌아가게 만든 것들은 자신의 소망과 가족이다. 그는 지난 긴 세월간 그것들을 소홀히하고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계속 그의 마음 속에 가장 큰 우선순위를 가진 채로, 그러나 제대로 의식화되지 못한 채로 쭉 숙성되어 왔던 것이다(전형적이지만, 그가 마약을 하는 이유도 결국 그렇게 설명이 된다). 편지를 받고 나서 새삼스레 아들과 가정의 고통과 병을 함께하려 생색을 내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절친이자 매니저 프랭크의 알콜 중독을 끊기 위해 지금까지도 생수를 4통씩 보내는 걸 잊지 않는 것도 대니 콜린스다. 결국 만약에라는 말은 실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모든 것은 원래 있던 그대로이다. 그것은 단지 작은 사건 하나를 일어나게 하는 데 불과하다. 다만 가끔씩, 우리는 그저 만약에라는 그 단어가 필요할 뿐이다.
심심한 것
만약에, 대니 콜린스가 34년만에 존 레논이 보낸 편지를 받는다면- 이라는 가정은,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실화인 부분이다(포크 싱거가 받았다).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영화적 상상력이다. 아쉬운 점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매력적으로 살아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만약에'가 들어간 구절 하나 밖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일들, 갈등, 사건들은 너무나 무난한 영화적 전개다. 있어야 할 갈등과 있어야 있어야 할 화해. 한 번의 좌절. 붕괴된 가정 되찾기라는, 최근 미국 영화에서 유행처럼 끊임없이 등장하는 소재들. 때문에 영화는 처음 존 레논의 편지를 받게 되는 사건 이후로 점점 심심해지기만 한다. 현실에서 가져온 소재를 이겨내는 상상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굳이 상상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만약에라는 마법의 단어가, 그저 있어야 할 일들을 있어야 할 자리에 일어나게 만들 뿐이라면.
- 기억나는 음식은 베이글. 종이 봉투에 담긴 음식들은 영화에 쓰이기에 좋은 소재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감각을 자극하고, 정장에도, 다 떨어진 옷에도, 쿨하게 어울린다.
- 유명세에 대한 욕망은 <대니 콜린스>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자신을 보는 사람마다 흥분해서 말을 잃고 웃음을 짓게 만드는 유명세를 적절하게 활용하며 살아가는 가수 대니 콜린스를, 유명한 배우 알 파치노가 잘 살려냈다. 명성과 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사람들을 영화에서 보며 즐거워하는 것은 또한 관객의 욕망이기도 하다. 어쩐지 대니 콜린스는 늙은 토니 스타크를 상상하게 한다. 닮은 것 같은데..
-존 레논의 음악들이 서사에 그럴싸하게 활용되었다. 마치 <맘마미아>를 보는 것처럼. 한 가지 다른 점은 <맘마미아>가 ABBA의 노래를 따라가는 것처럼 서사가 흘러갔다면, <대니 콜린스>는 주인공의 서사 뒤에 존 레논이 슬그머니 따라다니며 따스하게 노래를 불러 주는 느낌. 존 레논 앞에서 대니 콜린스는 언제나 Boy일 뿐.
-대니 콜린스가 천천히 걸어 무대에 오르는 오프닝 장면의 표현이 좋았다. 관객들 앞에 선 한 사람의 심정, 당연하게 들어야 할 긴장,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처하는 그. 직접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미지 출처 : http://movi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