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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Mar 19. 2019

[영화] 데드풀

'선택적 파괴행위'

Deadpool  2016 - 팀 밀러







'쿨'의 방정식


'웃기다'와 '유쾌하다'는 어떻게 다를까.


아마 두 단어의 가장 큰 차이는 '유쾌함'이 '웃긴 것' 이상의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데서 기인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마법의 소스는 바로 'COOL'함이다. 


데드풀은 쿨한가? 물론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데드풀>을 말할 때는 그저 '웃기다'라는 표현보다는 '유쾌하다'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또 질문을 하나 던질 수 있다. '쿨하다'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쩐다. 통쾌하다. 시원하다. 간지난다. 멋지다. 근사하다. 대담하다. 온갖 좋은 속성들이 들어가 있는 이 쿨한 단어, 'COOL'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뭘까. 쓸데없이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보자면, 아마도 무언가 원래라면 지켜져야할 어떤 규칙이 깨졌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근사할 때 COOL이란 기분이 출현한다. 윤리? 건전함? 장르? 기대? 편견? 그런 것들을 배반하고도 여전히 멋질 때 그것은 쿨하다. 


'데드풀'은 애초에 무언가를 깨부수기 위해서 탄생한 존재다. 그는 선한 영웅심을 가진 히어로들의 안티테제로서 등장했다. 불살법칙, 선한 행동, 이타심. 악당을 처치하고 선량한 시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히어로들이 그 과정에서 이런 수칙들로 얼마나 고민하고 좌절해왔는가(그리고 그것을 결국 극복하고). 그런 딜레마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프란시스의 머리를 총으로 날려버리는 데드풀의 손가락엔 잠깐의 망설임조차 없다. 


그가 부수는 것은 단지 그런 영웅심 뿐만이 아니다. 그가 관객에게 말을 걸고 설명을 하면서 이른바 '제 4의 벽'을 끊임없이 허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영화 내부의 현실성을 무너뜨리면서, 동시에 스크린 밖의 관객들이 체험하는 현실성을 확보하는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그가 내뱉는 말에 섞인 수많은 패러디들(울버린-휴 잭맨, 엑스맨 배우, 어벤져스....)과 현실적인 요소들이 섞인 방백을 들은 작중 인물들은, 그저 일종의 버그가 생긴 것처럼 인식하지 못한 채 사고를 멈추고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들은 관객인 우리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현시성의 디테일에서, 작중 캐릭터인 데드풀과 관객인 내가 동일한 현실에 함께 속해 있는 것 같은 착시감을 느끼며, 모르는 사이에 데드풀이란 인물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영화 밖에서도 열심히 데드풀로서의 연기를 멈추지 않는 라이언 레이놀즈의 노력과 함께)하는 무의식적 착각을 하게 된다. 마치 해리포터가 '머글' 개념과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으로 확보한 그 현실감처럼. 그런 식으로 그는 많은 것들을 부수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것들을 얻고 있다. 서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결국 암과 죽음으로부터 탈출했고, 사랑을 되찾았고, 숙적을 죽였으며, 일단 엑스맨의 영입 시도도 거절하는 데 성공했다. 


특정한 장르가 유행하고, 그 장르의 법칙이 더욱 견고해지며, 재생산이 더욱 빈번해질수록 이런 장르 안티테제의 등장은 필연적이게 된다(새삼스럽게 '투명드래곤'을 생각해보자). 생각해보면 데드풀은 결국에는 등장했을 필연적이고 전형적인 안티히어로이며, 한때 카툰에서 달성했던 그 역할을 이제 히어로물이 범람하는 스크린을 통해서 다시 한번 재현하고 그 효과를 다시 누리고 있다. 이런 특징을 가진 존재가 데드풀 혼자만은 아니겠지만 그 중에서 데드풀이 가진 특유의 힘, 특히나 혓바닥만으로도 상대를 죽음으로 몰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그 입담과 귀여운(?) 행동들은 분명 그의 포지션과 멋진 시너지를 불러 일으키는 고유한 속성이기도 하다. 


선택적 부수기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그러니까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는 그 통쾌한 '부수기'를 감상하다 보면, 어쩐지 그가 끝내 부숴버리지 못하고 남은(애초에 그가 부수려고 하긴 했는지 의문이 드는) 것들에 눈이 가기 마련이다. 물론 그가 무슨 파괴신도 아니고, 모든 것을 평등하게 부숴버리고 아무것도 남기지 말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가 적어도 '쿨'한 안티히어로로 남으려면 반드시 부숴야만 하는 어떤 것을 기어코 마지막까지 부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좀 걸렸다. 어쩌면 데드풀인 그가 아니라, 영화인 <데드풀>이 여전히 부수지 않고 있는 것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너무나 힘빠지는 '사랑' 이야기. 숏컷을 한 바넷사와 처음 만나 서로의 불행에 대해 자랑해가며 사랑에 빠지는 첫 만남은 너무나 데드풀다운 설정이었지만, 그들이 평범하게 사랑을 나누고, 평범하게 납치당하고, 평범하게 구출하며, 평범하게 키스로 마무리되는 그 서사가 몹시나 불만족스러웠다. 그 와중에 초반이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바넷사는 머리까지 굳이 길러가며 '붙잡혀간 여린 (피치)공주님 캐릭터'에 갑자기 충실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납치를 알리며 떨어뜨린 소품이 그 예쁜 동전지갑이라니). 글쎄 누군가는 바넷사가 결국 중요한 순간에 프란시스에게 한방을 날리지 않았나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 눈에는 그것 또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후라이팬을 들고 조심조심 다가가 '무용한' 한방을 날리는 전형적인 공주님 캐릭터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단지 그게 후라이팬이 아니라 카타나였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 


'내가 너무 추해져서 마스크를 벗으면 날 받아들이지 못할거야'라는 식상한 고민은 또 어떤가. 그의 얼굴이 그렇게 된 순간부터 우리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정말 그 예상을 한치도 빗나가지 않고 영화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비록 마지막에 데드풀이 또 스스로 제 4의 벽을 깨면서 다들 해피엔딩 좋아하잖아 안 그래? 라고 말을 툭 던진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이 불만족이 해결될 수는 없다. 쿨한 상황에서 웃지 않으면 쿨하지 못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어떤 규칙이 있지만, 겨우 그런 것으로 넘어가기에, 남겨진 그것들은 너무나 '쿨'하지 못했다. 적어도, 바넷사는 그런 심심한 캐릭터가 되어서는 안 됐다. 머리를 기른 것도, 애인도 없이 망부석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죽은 줄 알았다지만), 그의 바뀐 얼굴과 몸을 보고 한치의 고민 없이 그를 다시 선택한 것도. 안티히어로 데드풀의 연인인 그녀는 어째서 '안티히로인'이 될 수는 없었던 걸까. 조연으로 등장한 엑스맨들은 차라리 자신의 역할에 너무나 충실해서 매력이라도 있었지. 


사실 이런 류의 캐릭터는 '자신의 사정'에는 약할 수밖에 없다. 타인의 사정에 시니컬한 독설을 내뱉는 사람들도, 정작 자신의 일에는 궁상맞은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데스풀이 '쿨'할 수록, 그가 끝내 부수지 못했던 어떤 것들이, 그런 반면에 그가 산산조각 내버린 얇고 쉬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며 좀 허무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이제 독사의 혀를 가진 귀염둥이인 그가 자기 소개를 끝냈으니,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 즐겨 보는 일만 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하려나.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데드풀2>를 기대해본다. 안 그래도 요즘은 히어로들 간의 친목질이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는 시대다. 그들 사이에서 안티히어로인 데드풀이 맡을 역할이 분명히 있을 거다. 자신의 이야기를 벗어나면 그는 이제 다시 '쿨'함을 되찾을 것이고, 또 그것은 유쾌할 테니까. 










(이미지 출처: http://mov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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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파인애플 올리브 피자. 파인애플 피자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존재한다는 걸 물론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구운 파인애플을 좋아하기 때문에 파인애플 피자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부러 시켜먹는 일은 없긴 하지만. 올리브도 무척 선호하는 토핑. 그래서 웨이드 윌슨이 배달온 그 피자를 씹어먹을 때 꽤나 군침이 돌았다. 또 그것은 종이 박스로 배달된 미국 피자가 아닌가. <경찰서를 털어라>에도 나오고, 닌자거북이가 코와붕가를 외치며 먹는 바로 그런 피자. 


- 그러니까 남자애들은, 이런 걸 보면 항상 이런 생각을 조건반사처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누가 제일 셀까.' 죽지 않는 데드풀과 굳건한 콜로서스도 물론 경쟁력 있지만, 아마도 많은 '남자애'들은 네가소닉의 그 성격과 의외의 강력함에 '쿨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덴마를 보며, 삼국지를 보며, 왕좌의 게임을 보며, 멈추지 않는 그 마법 같은 질문. '누가 제일 셀까'. 탄생 이전에 프로그래밍이라도 된 것처럼. 


- 이 영화가 가장 근사했던 부분은 바로 도핀더의 택시. 그리고 그 택시를 타고 시간과 제 4의 벽을 넘나드는 데드풀의 '여태까지의 사정' 설명. 이 영화의 '쿨함'이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고, 또 유일하게 육성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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