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호 Nov 15. 2016

글로벌 진출 계획 따윈 개나 줘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감히 주제넘게 예상하건대 백 개의 스타트업 기업 중 글로벌 진출 전략이 포함된 사업계획서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수를 추정해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백 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고요. 국가의 선동이요, 정부의 지원 요건이요, 투자자들의 요구 조건 중 하나가 글로벌 진출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진출 계획이 있어야지만 국가의 선동에 부합하여, 정부의 지원 요건에 충족되고, 그럴싸한 EXIT 계획에 짜 맞추어 투자자들이 좋아할 만한 명목으로 외부자금을 유치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거든요.


경고


불온전한 내수 시장, 벤처기업의 성장 한계라서 글로벌 진출을 꼭 해야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카카오와 같이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대형 플랫폼사가 내수시장을 위하여라도 혹은 신생 창업가들의 성장성을 위하여라도 그들이 새겨듣고 이행해야 할 대목이지 고작 직장생활 몇 년 한 경험으로 0.1%도 안 되는 확률 가지고 글로벌 진입을 섣불리 꿈꾸었다가는 99.9%로 본인과 본인 주변의 인생만 피박에 광박에 쪽박 찰 가능성만 남을 것입니다.


저는 신생 기업이 만약 정말 독보적인 어떠한 원천적 기술이나 대단한 천운 혹은 엄청난 인맥이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 그러한 허황된 허세는 집어치우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해외진출은 무슨 돈으로 합니까. 결국 내 사업의 본질을 떠나 처음부터 자금 유치를 목적으로 내세우는 게 글로벌 아닙니까. 투자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빠른 시일 내에 글로벌 진출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냔 말입니다.


팩트


정말 뛰어나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한 분들은 계획대로 잘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비즈니스는 꿈과 희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딴 X소리는 당장 쓰레기통에 버리시길 추천드립니다. 분명한 것은 당신은 우리 팀의 현실을 과대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또한 성공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안착할 1%(혹은 그 이하)의 부류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1년 만에 투자 없이 이루어낼 가능성은 0.1%도 안 될 것이며, 설령 진출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브로커나 에이전시를 통해 막대한 수수료나 최악의 컨디션 계약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이고, 투자를 받더라도 충분한 지분을 내어놓아야 할 각오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만약 진출하였다 하더라도 현지인들보다 더욱 풍부한 경쟁시장을 파악하여 차별화를 유지시켜야 할 것이고, 그들이 자국을 지키기 위한 온갖 정책적 방해는 각오하셔야 할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사업적 투자보다 뇌물에 더 들어갈 것이고, 납품을 하더라도 A/S와 유지보수의 한계를 겪으셔야 할 것이며, 대화도 안 통하는 이들의 시장에서 영업을 성공적으로 펼쳐내야만 할 것입니다. 해외 진출로 인해 5년 안에 EXIT 하는 것과 1년 안에 폐업하는 것의 확률 중 어느 것이 높을까요. 단기간 내 짧은 업력과 일개 노하우를 가지고 무슨 수로 성공합니까. 뭐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겠죠. 그건 무엇으로 합니다. 자금이 필요하겠죠. 그러니 결국 자금을 받기 위한 글로벌 진입 계획이 아닙니까. 


권고


내수시장 걱정하지 말고 한국에서 단 10억이라도 부트스트랩핑(자체 성장)의 계획을 세워보았으면 합니다. 단돈 5천만 원으로 5억 만들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게 어쩌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대화하기 편한 이 조그만 대한민국도 평정하지 못하는데, 말도 안 통하는 타 국가를 어떻게 무슨 수로 평정할 것인가요. 


현재 글로벌 진출 중에 있는 기업(중소기업 or 스타트업)을 떠올려보라면 제 주변엔 3군데 정도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분야가 틀립니다. 또한 이들의 공통점은 7년 미만의 기업. 한 곳은 300억, 두 곳은 100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한국 안에서 말입니다. 심지어 이 세 곳 모두 외부 기관 투자 없이 부채를 활용한 성장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대표님들은 경영학을 전공하거나 엄청난 스킬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분들과의 대화로 항상 느끼는 것은 지금 해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할 일의 다음 순서입니다.


다른 방법


사실 우리도 1%가 될 수 있습니다.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이 있긴 합니다. 최근엔 국내 스타트업 한 곳이 대기업으로부터 300억에 매각하는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여기 대표님이 고졸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었지요. 이처럼 글로벌 진출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국내 유사 기업들과의 얼라이언스나 서로 간의 M&A 전략으로 국내 비슷한 시장의 판을 키워보는 연습과 경험을 계획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국내 M&A가 어렵다는 말은 접어두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6년간 ICT 업계 국내 M&A도 100건 가까이 일어났습니다. 단지 내 사업체가 그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것과 적극적인 오퍼를 날리지 못한 본질을 깨닫는 것이 훨씬 도움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서로 고만고만한 시장에서 돼도 안한 경쟁으로 온오프라인 시장 생태계를 해치지 말고, 서로 힘을 합쳐 더 큰 규모의 시장을 만들고, 그러한 규모의 시장으로 10억 계획할 거 1조 원의 벨류 목표를 수립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지금 당장 가치 없는 종이 쪼가리 경영권을 걱정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전략적 제휴를 통해 우회적인 글로벌 진출을 할 수 있다면 훌륭한 인프라들의 확보, 각 경영진들의 사업적 지식 공유, 보다 쉬운 자본 조달, 새로운 시장 창출이 덩달아 따라올 것입니다. 깨진 밥그릇에 땜방 메우며 한 끼를 연명해 나가는 방식의 사업보단 훨씬 쉬울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이 가능하다면 결국 글로벌 진출과 향후 독자적 진출을 위한 준비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질은 그저 이렇다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창업에 실패하는 수 십가지의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