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투자자는 절대 사업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전달하지 않더군요. 순수한 시절, 그러므로 미안함에 건네는 '연락드릴게요'라는 말을 믿고 하염없이 그의 다음 회신을 기다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거절이 정말 미안해서 던지는 말이라고. 미안해서 답장도 생략하는 투자자들 또한 상당수 많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데이터'가 단기간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경험상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첫 미팅 후 그들의 투자 유형을 파악하였다면 그때부터 대표자는 유형에 맞는 장기전에 돌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올바른 투자자와의 관계 유지라고 하며, 투자자는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의미가 짙다고 사료됩니다.
2.
사업계획서를 쓰는 것엔 서툴지 몰라도 먼 시각에서 간지러운 부분을 발견하는 것엔 대단히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숲을 보지만 그들은 산 위에서 빈틈을 찾는 독수리와도 같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설령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부족함일지라도 그 자리에서는 수긍을 하거나 혹은 지적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보다 명료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오히려 수정되거나 개선된 사항을 자주 업데이트해주는 것이 훨씬 더 신용도가 쌓인다는 것을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3.
백 날 천 날 우리 아이템이 좋다고 말해봤자 씨알도 않먹힙니다. 그들은 숫자로 판단하길 좋아하고, 그 숫자의 근거만 명확하다면 숫자의 규모가 크거나 작다고는 그다음의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대규모 마케팅 자금이 필요하다면 페르소나에 부합되는 소규모 그룹 중의 진성 고객을 특정 기간 동안 유지시킨 성과라던지, 개발 자금이 필요한 것이라면 우리 기술이 증명될 수 있는 지적재산권이나 가계약서들의 뭉치가 말에 힘을 실어줄 것입니다. 심증 말고 물증이요.
4.
그렇기에 투자 실패는 왜 내 비즈니스가 빈약한지 찾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지침서였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때는 없는 데로, 어느 정도 있을 때면 요구하는 객관적 수치 자료가 끝이 없습니다. 솔직히 성질이 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원하는 포인트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귀결됩니다. 숫자가 부족하다면 인력, 스킬, 네트워크, 경력 등 어느 하나라도 뛰어나야만 합니다. 당신은 평범하고, 여기는 대한민국입니다.
5.
때론 건방짐을 탑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엄청나게 적극적인 태도와 빠른 진행을 표현하는 곳도 아주 어쩌다 더러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오! 그래 나도 좋아!'라고 침을 흘렸다간 그들의 미끼를 걸려들 수 있습니다. 그땐 대표자가 투자사의 포트폴리오를 뜯어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그로 인해서 우리 회사가 지금 유동성 자금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눈치를 챈 것이라면 그때부터 그들은 좋은 포인트와 유리한 협상을 위해 전략적으로 계약 시기와 미팅을 아주 천천히 끌고 갈 수 있거든요.
6.
혹시 투자를 받게 되더라도 설령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도장을 찍기 전까지 계약서에 먼저 투자하시길 권장드립니다. 다시 말해 계약서 검토에 자금을 아끼지 말라는 말입니다. 투자도 갚아야 할 빚임을 기억하세요. 나는 돈을 빌리는 빚쟁이요, 그들은 손해보지 않는 방법을 아는 전문가들임을 기억하세요. 스스로 대비하여 공부하고 공부하고 자문을 구하여야만 합니다.
7.
시장 정보를 설명할 때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조사된 시장의 10% 미만을 타깃으로 이야기해보세요. 훨씬 현실적입니다. 비밀유지 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는 것보다 대외비 임을 명시한 문서를 전달하는 것이 조금 더 부드럽습니다. 가끔 당신 회사의 벨류가 얼마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근거나 수치가 있더라도 대표자는 회유하여 투자사가 먼저 말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물론 대표자가 알고 있는 벨류의 근거나 수치가 제대로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지만요. 또한, 먼저 기대하는 벨류를 먼저 말했다가는 더 높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먼저 차단시켜버리는 꼴이 됨을 주의하세요.
8.
IR이 감도 안 잡히고 아무리 들어도 잘 모르겠다면 여기에도 자금을 아끼지 마세요. 돈 백만 원보다 한 시간 일 분 일 초를 두려워하는 게 정상이지 않습니까. 괜히 어정쩡하게 작성하여 초보 사업가임을 티 내지 마시길 바라며, 투자자는 부디 회사소개서를 들추어보는 일이 아니길 바랍니다. 제가 그랬었거든요.
9.
의외로 놓치고 있는 부분은 투자사마다 투자하는 사업의 성격과 조건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제대로 된 어필이라면 주변의 관심종목 투자자를 소개하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보통 위에서 말한 '관계'가 있을 경우에 잘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뭐 스타벅스가 투자사들만 수 백개 쫓아다녀서 겨우 하나 얻어냈다고 전해지는데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실 거 다 압니다. 그러니 한 번 줄 때 제대로.
10.
확실한 근거가 있더라도 우리는 이 투자사가 어떤지 아직 잘 모릅니다. 투자사도 투자자도 다 저마다의 유형과 성격이 제 각각입니다. 또한, 우리가 투자를 받음으로써 자금도 자금이지만 우리 사업에 어떤 긍정적 영향과 시너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면접자가 기업을 살피듯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처음부터 모든 달콤한 지표를 까지 마세요. 나름 단계별로 나뉘어 하나씩 하나씩 당근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속 된 말로 나의 정보만 쏙 빼가고 다른 회사에게 투자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이미 돈이 있습니다. 내 걸 그들이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블랙엔젤(black angel)이라고 합니다.
11.
공부해야 합니다. 어떻게 투자를 받을 것인지 실제 투자가 들어올 수 있도록 정관도 살펴볼 필요가 있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회계상 지표도 미리 이해하고 있으면 좋고, 상법과 주식에 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왜. 알면 알수록 대표자와 우리 창업 식구들의 밥그릇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잘 되려고 투자받는 거죠. 그런데 정말 잘 돼서 경영권 뺏기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최근에도 중국 백화점까지 진출한 화장품 기업의 연구원 출신 대표님도 투자를 받으면서 경영권을 뺏겨 라이선스만 확보하게 됐다는 불후한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12.
투자받으면 좋을 거 같지만 창업 멤버들의 이탈도 있습니다. 특히 경영권이 분할되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비즈니스 전개를 주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도 반강제적 우회해야 하며, 지정된 외부 임원을 영입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투자를 받았음에도 예상보다 잘 흘러가지 않는다면 웃음기는 사라지고, 시장의 보이지 않는 도덕성은 배제되며, 업무 지시형으로 스타트업의 느낌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3.
성장에 꼭 필요한 것이 투자(자금 조달)이지만, 가능하면 처음부터 받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많이 벌어서 사회에 환원할 거 아니잖아요. 우리 배부르고 싶잖아요. 그럼 적절히 운영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들고, 나오는 이익금 배당으로 창업 식구들 배부르게 사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 정신에 위배되긴 하지만, 내가 배고픈데 누가 누굴 도와줄 수 있는지요. 의미 없는 어불성설 보다 낫습니다. 그러한 꿈과 희망이 팀원들에게도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면 안 됩니다. 검증되지 않는 나 자신을 검증한 다음에 정신을 이야기합시다.
14.
백 날 천 날 외국 투자 사례 들어봤자 소용없었습니다. 여기는 대한민국이었습니다. 남 투자받은 사례 들어봤자 뭐 없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100가지 중에 100가지가 다른데.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만나서 그래서 어떻게 연락하면 좋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지표를 제시할 수 있을까'면 좋습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비즈니스의 성격과 상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투자는 장단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하겠다고 하는 곳이 있다면 그냥 받으세요.
저도 그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