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회사의 소액주주이면서 등기 이사이며 동시에 실질 업무 수행을 하는 근로자로서의 이러한 경계선에 걸쳐있는 나는 사실 상당히 많은 압박과 스트레스가 항시 혼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단순 기업의 경영진으로써 임원이라 함은 근로자보다 편하거나 좋은 위치에 있으니 힘들 것이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지만, 실상은 심한 감정 기복과 우울함이 극에 달해 정신과 치료를 고민하는 것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라.
앞으로 보다 더 성숙한 의사 결정과 조직 문화를 위해 상황을 솔직하게 끄집어내어 정리해보고자 한다.
1.
근로자는 사실상 어떠한 채용 절차를 거쳐 입사를 하게 되면 해고 통보가 없을 시 정년까지 근무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임원은 상법상 3년 이내의 계약직으로 설정이 되며 계약기간이 끝날 때 주주총회를 통해 재신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자동으로 보직이 해지되어 회사를 떠나야만 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확고한 신념과 철학으로 좋은 회사와 문화를 만들고 싶어도 나의 존재 유무를 영속시키려면 기업의 임원으로서 오로지 실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영에 관련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반대로 모든 결정에 대하여 책임 소지도 스스로 떠안아야만 한다.
2.
직원들은 자기 스스로들이 직원(근로자)이라고 인식하고 행동한다. 정해진 시간을 맞추고, 정해진 범위를 담당하고, 보다 더 나은 처우와 근무환경을 바란다. 처음에 달려드는 열정은 점차 사그라들어 그 누구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영역을 침해받지 않고 그 자리만을 계속 고수하려 하는데 사실 이것이 문제는 아니다. 서비스에 애착이 높다고 이야기하는 모순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다. 자신들이 만든 서비스나 상품에 강한 애착이 있다고하지만 실상 근무 외 시간에 발생되는 이슈나 관리는 남의 문제라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보인다. 먼저 나서서 화두를 꺼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것에 대한 대처를 그들은 야근으로 치부해 버리고, 자신의 롤이 아님을 각인시키기 바쁘며, 불합리한 처우라 여긴다. 그들의 가치는 오로지 자기중심적이다. 그들의 입장에선 그것이 맞기 때문에 뭐라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경영진으로써 최우선 순위는 고객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비롯 경영진의 성과에 직결되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회사를 위한 혹은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복지를 유지하고 더 나은 환경을 기대하게 하며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이용해주는 고객들이 중요한 것.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즉, 근로자와 경영진이 놓고 보는 본질적 가치가 다르기에 어떠한 결과와 행위가 결정되더라도 어느 한쪽은 불만을 가지게 된다. 또한 근로자들은 경영진들과 달리 양보와 타협의 기회를 마련해두지 않는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유지와 성장으로 계산해야만 하는 경영진의 시각과 단기적으로 지금 당장 매월 자신에게 안락함과 편안함을 지속적으로 기대하는 근로자(종업원과 같은 말) 사이에는 항상 이와 같은 이해의 격차가 발생하게 된다.
책임 소지의 차이다. 경쟁시장의 가파른 변화, 현장들의 움직임, 소비 고객들의 이동과 반응, 거시적 환경의 영향, 이해관계자들 사이와 주주들의 눈치 등 매 순간 계산에 의하여 빠르게 부딪히고 우회하고 나아가야 살아남을 것이라는 무언의 압박은 절대 근로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경영진은 그러한 계산에 의거하여 목적만을 위한 결정을 내리게 되지만, 근로자들은 그러한 이유를 알고 싶지도 않아하며 동시에 이를 지시와 복종이라 받아들여 강한 거부감을 들어낸다. 이럴 경우 정말이지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수직적 조직문화가 매우 편하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대부분의 기업들이 지시와 복종이 자행되는 것을 비단 나쁜 것이라고 동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타적 성질이다.
3.
만약 근로자들의 말을 최대한 수용하고 하나하나를 협의하여 맞추어 나가다 보면 사실 상 기업의 목표 달성이 수직적 구조보다 더 빨라질 확률은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게 바로 우리에게 놓인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은 주주로써 임원으로서 그리고 근로자로서 인사조직의 핵심을 고용 자체에 하나의 해결책으로써 주목적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수평적 문화에 도전하기 때문에 지식근로자를 선호하려고 한다. 지식근로자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계발하고, 자신의 직무에 강한 애착으로 지시 보단 능동적 결정과 행위를 선호하며, 생산성에 대하여 자기 스스로가 관리하고 책임지는 자율성을 가지기에 업적의 양이 아닌 질에 가치를 두고자 하는 부류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모순은 또 있다. 그들도 결국 익숙한 패턴과 환경에 적응하여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하면 일반 근로자로 돌아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중심적 환경의 문화를 회사 전반에 걸쳐 조성해놓고 퇴사와 입사를 반복함으로써 경영 전반의 불필요한 문화를 안착시켜버리는 것에 있다.
속 된 말로 회사가 적정한 수준과 레벨이 올라갈 때까지 참아주는 것이 좋은 것일까. 또는 미안하지만 기회주의자가 되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아니면 참을 인을 되새기며 끊임없는 이해와 대화로 유도해나가는 게 맞는 것일까. 내부 조직의 벨런스를 유지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4.
그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말하는 사람은 내가 되고 듣는 사람은 그들로 정해지게 되더라. 숲을 보지 못하기에 지금 당장 나무에 필요한 수액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고, 필요 이상의 말들이 서스름없이 튀어나온다. 경험이 부족한 팀장급들은 가끔 더 최악의 수를 두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오로지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대변하고만 있는 상황들 같이 말이다. 그들은 회사의 주주나 임원이나 경영진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아하는 것 같다.
말을 하려 하기보단 말을 듣고만 있는 것이 훨씬 나은 방향이지만, 근로자의 역할을 병행함으로써 말을 가리고, 고르고, 이해를 전달해야 하는 상황들. 여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인사조직관리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요즘이다. 만약 그러한 수평적 문화와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믿지만 적정한 기간 내 더 나은 성과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회사의 측면에서 되돌릴 수 없는 직격탄이 되어버리고 반대로 부서장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그 책임까지를 의식하는 근로자들 또한 없다. 그렇기에 수평적 구조가 원활히 돌아가는 조직은 개개인의 성과평가가 매우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끈끈한 동료애를 나와 그들 사이에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판단되면 사실상 그 외로움은 배가 된다. 이것이 실제로 굉장한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이다. 경영진과 근로자 사이에 항시 존재하는 불편한 영역이다.
5.
힘들 때 다 같이 힘들고, 어려움을 공개적으로 소리치는 것은 좋으나 동료들과 먼저 함께 나누어 헤쳐나아가고, 팀 주체로 움직여 그 결과에 함께 수긍하고 그 결과치를 가지고 당당하게 필요한 부분들을 요구했으면 한다. 거두절미 내가 가장 잘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즉, 스스로의 자발적 판단과 성장을 제대로 못 일깨워주고 있다는 것인 듯 하다.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지난 금요일 오후. 나에겐 자판을 두드리는 것보다 이해관계자 한 명을 더 만나는 것이 나로써는 더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한 사람을 만나러 조금 일찍 나서는 길. 퇴근 시간이 안된 시간에 신입 동료로부터 장문의 고충을 표현하는 메일을 받았다. 그 글을 보는 순간 그날의 미팅은 사실상 망쳤다.
돌아온 집에서 주말 내내 그의 글을 읽고 읽고 또 읽어보며 어떻게 해주는 것이 좋을지 생각을 해보았다. 솔직하게 도대체 얼마나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안되길래 이런 메일이 나와 타 부서장까지 전달될 만큼 방치된건지 처음엔 화가 많이 났지만 그러한 감정적 시선은 결코 그가 고민하여 보낸 이야기의 결과가 아니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주말이 몇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고민 중이다.
우리는 결국 이해의 연속이다. 아니라고 하지만 나도 그들의 구성원이고,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의 상사로써 어쩌면 이러한 고충을 가지는 것이 지극히 정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충을 해결하는 방법이 오래동안 찾지못한 채 지속되다보면 결국 검정물이 되고 말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같은 목표임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