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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루스 Dec 08. 2017

답은 내 안에 없다

<스탠드펌> / 스벤 브링크만

(역자 후기에 따르면, 덴마크의 심리학자 스벤 브링크만이 쓴 이 책의 덴마크어 원제는 ‘굳건히 서다: 계발 강요와의 결전’이며 이 책은 영어판을 우리 말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1. 멈춤 - 자기 탐색은 이제 그만!

2. 바라봄 - 삶의 부정적인 면을 보라

3. 거절 - "아니요"라고 말하기

4. 참기 - 감정 억제하기

5. 홀로서기 - 코치는 필요 없다

6. 소설 읽기

7. 과거를 돌아보기


이 일곱 가지가 이 책의 주제다. 사뭇 자기계발서처럼 보이는 '7가지 방법'으로 주제를 뽑은 이 책은 얼핏 자기계발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자기계발의 강요에서 벗어나기를 강조하는 소위 '안티(anti) 자기계발'서다.


답은 내 안에 있지 않다


우리는 흔히 '자아'를 찾기 위해 내면을 탐색하기도 하고 명상을 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내면을 통해 ‘자아’를 찾으려는 헛된 노력을 버리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 속엔 아무 것도 없다. 진실은 언제나 밖에 있다며.


우리 안이 아니라 밖을 쳐다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문화, 자연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열쇠가 내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자아'는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문화사의 구성물이자 부산물일 뿐이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우리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자기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바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모른다. 59p

정말로 가치있는 것은 밖에 있다


나를 돌아보는 일을 멈추고 나면 이제 정말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가 보인다. 저자는 나와 연결된 사람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야 말로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 말한다.


 우리는 자아실현에 매달리느라 종종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도 한다. 내면의 소리를 따라 행동하고, 아무리 잡으려고 애써도 끝없이 달아나는 자아를 편협하게 찾아다니는 것보다 내면의 소리(과연 진짜 자신을 찾았는지)에 의심을 품는 것이 더 낫다.
반면에 우리와 서로 연결된 사람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책임을 다하다 보면 우리가 '진짜' 우리 자신인지 아닌지는 사실 의미가 없어진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그러면서 저자는 스토아 철학의 금언으로부터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를 끄집어 낸다. 나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삶의 부정적인 면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생각해야 한다. 메멘토 모리. 네가 죽으리라는 걸 기억하라. 당신의 죽음을 매일 생각하라. 그렇다고 무기력해지거나 절망에 빠져서는 안된다. 우리도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에 차츰 익숙해지고 삶을 더 감사히 여길 수 있도록 죽음을 생각하라. 93p


같은 맥락에서 요즘 자기계발의 중심에 서 있는 긍정 중심의 심리학에도 경계를 표한다. '예(Yes)'라고 말하는 것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역시 스토아 철학자들의 입을 빌어 왜 꼭 '예'라고 해야하는지 의문을 가지라고 한다.


그들은 '예'가 긍정적 태도와 능력개발로 이어지므로 '예'라고 말해야 하고, '예'라는 답이 좋고 옳다고 믿는다. '예'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길임을 "압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자들은 반대로 주장한다. '예'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의심을 선호한다. 의심할 때 우리는 으레 '글쎄요'라고 답한다. 그러니 '글쎄요'라고는 대답을 늘 준비해 두라. 달리 말해, (검증되지 않은 확신으로)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그냥 놔두라.


의심은 확실성의 해독제


의문을 가지고 의심을 하는 것이야 말로 맹목성에서 빠져나오는 길이다.


'나는 안다'는 확신 뒤에는 맹목성이 뒤따르기 쉽다. 특히 '예'라는 대답이 확실히 최선이라는 확신은 그 자체로 맹목적이다. 반면에 의심은 열린 생각을 낳는다. 다르게 행동하는 방법과 세상을 달리 이해하는 길이 열린다. 내가 '안다면' 나는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내가 의심한다면 다른 사람의 관점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때로는 가면도 필요하다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는 이유로 가면을 벗어던지라 말하는 자기계발의 목소리도 꾸짖는다.


요즘 우리는 가면을 쓰는 행동은 진실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행동이라 여긴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가 맞다. 적어도 학교와 직장,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는 그렇다. 이런 공적 영역에서 합리적으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관습화된 정중한 가면이 필요하다.


때론 가면도 필요하고 또 스스로의 감정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의 평화를 흐트러뜨리고, 단단히 서 있지 못하게 뒤흔드는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단단히 서 있고 싶다면 쉽게 넘어져서는 안된다. 텔레비전과 광고, 소셜미디어에서 우리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런 호소 때문에 우리의 욕망이 쉴 새 없이 달라진다. 덧없는 욕망을 줄곧 좇는다면 단단히 서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쩌면 진정성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야 어느 정도 존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가면을 쓰는 연습을 하라.


멘토는 필요 없다!


자기계발이 낳은 대표적인 트렌드 중 하나인 코칭과 멘토 문화 역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린다. 코치 따윈 필요 없으니 모든 '코치'와 헤어지라고 한다. 대신 그를 친구로 만들어 함께 박물관에도 가고 을 거닐라고 조언한다. 왜 하필 박물관과 숲일까?


박물관은 어떤 점에서 보자면 낡은(또는 새로운)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을 전시하고 찬양한다. 순수하게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물론 비합리적이다. 그러니 박물관에 가면 우리가 서로 얽히고설킨 무수히 많은 문화적 전통의 어깨 위에 서 있으며 우리의 집단적 경험이 그들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기억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숲을 걷다 보면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게 된다. 또한 자연을 단지 인간의 요구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자원으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자아 밖의 삶과 연결되기로 마음먹고 코치와의 결별도 선언했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서도 언급했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가치있는 삶은 나와 연결된 사람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선행'을 실천하는 것.


할 만한 최고의 일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다. 또는 알리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해 보면 더 좋다. 이 일은 앞의 것에 비하면 그다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준 만큼 돌려받기'라는 사고방식과 완전히 어긋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그 자체로 좋고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들이 있다. 그 대가로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171p



제목만 보고 그저 평범한 자기계발서겠거니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 내내 여느 자기계발서에서 풍기는 비타민같은 에너지나 열정보다는 산행 후에 먹는 물맛 같은 담담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요즘같은 감정/긍정/열정 중심의 세상에서 마음을 다잡아주는 채근담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이제 자기계발서는 끝인가? 더는 안읽어도 될까? 용기가 없어 그러지는 못할 것 같고. 이 책에서 권하는 대로 한 달에 한 권 소설 읽는 습관이라도 좀 들여야 할 듯. :)


https://platanustree.com/books/979113061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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