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카루스 Jan 11. 2018

가상화폐의 정치경제학

전쟁은 이제 서막일 뿐

모든 화폐는 이미 가상(virtual)이다. 지구 상에 가상이 아닌 화폐는 (거의) 없다. 달러도 엔화도 우리나라 원화도 모두 가상이다. 화폐가 가상인 것은 우리가 ‘가상’현실이라는 말을 쓰거나 인터넷 ‘가상’공간이라는 말을 할 때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요즘은 집을 사고 팔 때도 돈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오늘날 화폐는 더 이상 실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실물(금)과 연동되는 것도 아니다. 금본위제는 아득한 과거의 유물이며 불태환선언도 오래된 이야기다. 화폐는 이제 발권력을 갖춘 기관이면 누구든 얼마든지 맘대로 발행할 수 있고 공신력과 같이 신뢰가 보장되는 한 자유롭게 유통되고 거래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사람들은 더이상 돈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월급은 은행계좌에 찍힌 숫자로 존재하고 카드나 앱(카드사 앱이건 무슨무슨 페이 앱이건)을 지갑 삼아 물건을 사고 결제를 한다. 돈은 그저 우리의 머리 속에서만 오가며 가상으로만 존재한다. 물론 가죽지갑에는 얼마 간의 종이지폐가 들어 있고 둿주머니엔 어디선가 거슬러 받은 동전 몇 개가 들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저 ‘구시대의 흔적’일 뿐이다. 마치 음원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여전히 LP나 CD가 존재하는 것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선 항상 신구가 공존한다.

사토시의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은 이 판을 뒤집겠다는 것이다. 발권력을 (그 멍청하고 교활한) 중앙은행으로부터 가져와서 컴퓨터가 자동으로 처리하도록 하겠다는 발상이다. 화폐의 발권과 발행량을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처리되게 만들고 분산원장과 작업증명으로 신뢰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누군가는 발권, 즉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중앙은행이 유일한 발권자였고 시중은행이 이를 거들면서 (승수효과를 통해) 통화를 만들어 왔다면, 이제는 “채굴자”들이 바로 그들이 된다. 비트코인을 예로 들면, 통화를 처음 발행(채굴)한 사람은 당연히 창시자인 사토시 본인이 되고 그 이후에 채굴에 참여하여 작업을 증명한 사람들 즉, 채굴자들이 또한 발행자들이다.

이렇게 발행된 통화가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지유롭게 유통되고 거래의 수단으로 물건을 사거나 교환을 할 때 매개수단으로 활용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명실공히 화폐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며, 국가와는 무관하게 작동하는 인류 역사상 새로운 화폐시스템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시스템이 성공한다면? 인류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쓰게 된다. 그동안 국가만이 누려왔던 화폐를 통한 장악력이 약화되어 퇴화될 것이고 국가 권력의 힘과 영향력도 이전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누군가는 또 새로운 권력을 쥐게 될테고, 그 과정에서 채굴자들은 엄청난 부를 금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날이 올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비트코인은 지구상의 엄청난 거래를 모두 담아내기엔 여러가지 기술적인 이유로 인해 역부족임이 확인되고 있고 양자 컴퓨팅의 발전은 생각보다 빨리 암호화 화폐의 신뢰를 무력화시킬지도 모른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득권 세력의 거센 방어일 것이다. 이미 권력을 쥔 사람들, 국가를 통제하는 권력이 과연 자신들 통제 밖에서 자신들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려는 시도를 그대로 보고만 있으려 할까? 알고서든 모르고서든 어떤 식으로든 방어할 것이고 공격하여 없애려 할 것이다.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식으로든 변할 것이라고 본다(물론 지금 그 모습 대로는 아닐테지만). 지금의 달러 중심 통화시스템이 얼마나 멍청하며 무력한지는 이미 여러 번의 금융위기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그 수명이 오래 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과 컴퓨팅 기술의 진보가 앞으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는 지고 무언가는 새롭게 뜰 것이다.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살 것이다.

가상화폐 - 비트코인이 시작했고 요즘은 블록체인이라 불리길 원하는 바로 그 실험 - 이 바로 지금 그 교차점에 대표로 서 있다.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상화폐와 그 적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