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창작물은 어떻게 만들어 질까?
조앤 롤링(J.K. 롤링)과 그녀가 쓴 책 ⟪해리 포터⟫의 창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져서 이제는 '창의성'을 다루는 곳이면 어디든 등장하는 단골 소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1990년 여름,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고 있던 롤링은 4시간 동안 지연된 열차 안에서 마법학교에 다니는 소년 "해리 포터"와 "론", "헤르미온느" 3명의 착상을 떠올렸고, 집으로 돌아가 그날 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영감은 그녀에게 처음으로 일어난 경험으로, 이후 인터뷰에서 롤링은 어디에서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위키백과
롤링은 나중에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운 느낌이었어요. ... 난데없이 불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죠."
"바로 가방을 뒤져 펜이든 연필이든 무엇이든 찾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이라이너조차 없더군요. 그래서 그냥 앉아서 생각만 해야 했어요. 게다가 열차가 지연되었기 때문에 4시간 동안 머릿속에서는 온갖 아이디어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죠."
"여행이 끝날 즈음 일곱 권짜리 책으로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 앨런 가넷,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中
이렇게 우리는 창의성을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신비한 어떤 영역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자면 '뮤즈'의 선물이라고나 할까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과처럼 말이죠.
또 곧잘 우리는 창의성을 비범한 천재들과 연관짓기도 합니다. 위대한 창작물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천재들에 의해 만들어지는거라 여기죠. 흔히 우리가 '창의력에 관한 영감 이론'이라 부르는 생각은 바로 이렇게 위대한 창작물은 천재들의 영감에 의해 탄생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물론 조금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여기 그 중 두 개를 골라 소개해 봅니다.
빅데이터 전문가이자 마케팅 분석회사 트랙메이번TrackMaven의 CEO인 앨런 가넷Allen Gannett이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앨런은 자신의 직업을 살려 빅데이터 전문가 답게 데이터 분석을 통해 창의성의 비밀을 풉니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부터 유명 셰프, 히트 싱어송 라이터, 인기 유튜버에 이르는 소위 창의성 분야의 '천재 크리에이터'들을 찾아 인터뷰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그들 사이의 공통점을 수집합니다. 그러고는 상업적 성공을 일궈낸 창작품 뒤에 숨은 공식(패턴)을 발견, "크리에이티브 커브(Creative Curve)"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가 말하는 크리에이티브 커브는 사실 뭐 대단한 그림은 아닙니다. 그저 친숙성과 선호도 간의 관계에 관한 종형 곡선이죠. 사람들은 "익숙하면서도 약간 색다른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의 반영입니다.
어떤 노래를 한 번 더 들을 때마다 좋아하는 정도는 조금씩 커지다가 정점에 이른다. 그때부터는 한 번씩 더 들을 때마다 호감도가 떨어진다. 이러한 종형 곡선이 바로 내가 말하는 '크리에이티브 커브'이다.
— 앨런 가넷,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中
많은 성공한 창작물들이 이 곡선의 흐름을 따릅니다. 초기 과격한 관심 단계를 지나면 익숙함과 신선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달콤한 '스위트 스폿(Sweet Spot)' 지점 —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 에 이르게 되고 점차 진부해 지다가 마침내는 구식이 되어 소멸해 가는 패턴이죠.
굳이 창작물만 그럴까요?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패턴이 다 이런 것 아닐까도 싶습니다만, 아무튼 모든 성공한 '천재 크리에이터'들은 이 곡선의 존재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식하고 그 패턴을 잘 이용했다는 게 저자의 생각입니다. 세계적인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도 이 패턴을 따랐고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스 역시 이 패턴을 따르고 있었다고 말하죠.
비틀스의 실험적인 특징은 크리에이티브 커브와 일치한다. 비틀즈는 특정 실험적 시도와 사운드를 선보인 다음, 청중들의 반응이 좋으면 횟수를 천천히 늘려가다가 노출 빈도가 과다하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그런 시도와 사운드를 버렸다.
— 앨런 가넷,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中
이어 앨런 가넷은 창작자들이 상업적 성공에 최적화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사용하는 패턴을 4가지로 묶어 '크리에이티브 커브의 네 가지 법칙 Four laws of the creative curve'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합니다.
법칙#1 소비: 성공한 창작가들은 깨어 있는 시간의 20%를 자신의 창작 분야에 속한 자료를 소비하는데 사용함으로써 '아하!'의 순간을 위한 벽돌을 쌓는다.
법칙#2 모방: 성공한 창작가들은 창의적인 선배들이 이미 확립해 놓은 패턴을 어깨너머로 보고 체득하는 방식으로 비범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법칙#3 창의적 공동체: 성공한 창작가들에게는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웅덩이를 지날 때 강력한 에너지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법칙#4 반복: 창의적인 사람들은 모두 아이디어를 다듬는 자신만의 방법을 갖고 반복해서 다듬어 나간다.
조앤 롤링과 그녀의 작품 역시 바로 이 크리에이티브 커브의 4가지 법칙을 정확히 따른다고 책의 저자 앨런 가넷은 말합니다. 롤링은 어려서부터 손에 잡히는 대로 소설을 읽었고(소비), 머릿 속에 생각이 떠오른 뒤에도 5년 동안 카페에서 창의적인 반복 작업에 몰두했으며(반복), 크리스토퍼 리틀과 같은 협업자와 프로모터가 있었기에(창의적 공동체) 그 같은 성공이 가능했다고 말입니다.
롤링의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그녀의 창작 과정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실제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다.
그녀는 번개를 맞은 적이 없다.
그녀는 창작의 로또에 당첨된 적도 없다.
그녀는 읽고 계획을 짜고 쓰는 데 몇 해를 보냈고, 그 치열한 노고의 결과물이 ⟪해리 포터⟫였다.
— 앨런 가넷,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中
어떤 면에서 우리 인간은 모두 '따라쟁이'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모방하죠. 모방은 친밀감을 불러 일으키고 유대감을 만들어 내는 진화의 산물입니다. 누군가가 우리와 똑같이 행동하면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그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이 모방이 창작과 창작물의 영역에 적용되면 아주 재밌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고 말하는 있습니다. 바로 바로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스쿨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는 조나 버거Jonah Berger 교수입니다.
조나 버거는 자신의 책 ⟪보이지 않는 영향력⟫에서 성공한 창작물에 대해 이런 의문을 제기하죠.
하지만 이런 성공이 생각보다 더 무작위로 일어났을 수도 있지 않을까?
— 조나 버거, ⟪보이지 않은 영향력⟫ 中
그럴까요? 우선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보죠.
요즘 누구나 휴대폰 속에 음악 앱 하나쯤은 들고 다닐 겁니다. 멜론이든 벅스든 애플뮤직이든 혹은 다른 뭐든 간에 그 음악 앱을 열면 순위가 매겨진 인기곡 차트가 전면에 나옵니다. '인기곡'이란 다름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많이 선택해서 들은 곡을 말합니다. 그런데 왠지 '인기곡'이라고 하면 더 좋아 보이고 한번쯤 더 눈길이 가게 되지는 않나요? 어떤 이유로 인해 우연히 어떤 곡이 인기곡 차트에 오리게 되면 그 노래는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해서 받게 되고 결국 이런 '되먹임' 현상을 통해 점점 더 인기를 얻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조나 버거는 ⟪해리 포터⟫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롤링이 초고를 보낸 처음 열두 곳의 출판사에서는 롤링의 작품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소설이 너무 길다고도 했고 동화책은 이윤이 남지 않는다고 하며 가는 족족 거절을 당했죠. 심지어 최종적으로 출판을 약속한 출판사에서도 처음 발행하기로 계약한 부수는 고작 500부 였다지요.
그러면서 조나 버거는 묻습니다.
최고의 성공을 거둔 작품이 다른 작품보다 명백하게 뛰어나다면, 왜 전문가들이 그런 작품을 못 알아봤던 걸까? 왜 그렇게나 많은 출판사가 J.K. 롤링과 계약할 기회를 놓쳤던 걸까?
— 조나 버거, ⟪보이지 않은 영향력⟫ 中
그리고 그 원인을 사회적 영향력에서 찾습니다. 좋은 콘텐츠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흥행작과 실패작의 이유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타인의 영향력에 따라 히트작이 결정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하면 우선 이를 믿어보게 된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상품은 신뢰감을 준다. 많은 사람이 구매했다면 분명 좋은 상품일 테니 말이다.
— 조나 버거, ⟪보이지 않은 영향력⟫ 中
이쯤 되면 궁금해 집니다. 만약 우리가 시간을 되돌려 다시 과거로 간다면? 그때도 ⟪해리 포터⟫가 지금처럼 위대한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자리매김될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마침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 성공 이후, ⟪쿠쿠스 콜링⟫ 이라는 추리소설을 썼습니다. 작가의 명성이 아닌, 소설 그 자체로 평가 받기를 원했던 그녀는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으로 책을 출간하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책은 흥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재밌는 점은, 어느날 갑자기 그 책이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역주행'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그 책의 진짜 작가가 롤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라네요.
창의성은 언제나 갈구의 대상입니다 — 아니 실은 '창의성'보다는 '성공'(또는 돈?)이 갈구의 대상이라 해야 좀더 정직한 표현이려나요? 앨런 가넷 책의 제목처럼 말이죠. (참고로 앨런 가넷 책의 원서 제목은 "The Creative Curve: How to Develop the Right Idea, at the Right Time" 으로 '돈'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가능하면 창의적인 사람이 되려 하고 창의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자 애씁니다. 물론 그런다고 모든 사람이 다 탁월한 창작자가 되고 위대한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는 없겠죠. 똑같이 노력하고 똑같이 '4가지 법칙'을 따른다 해도 누군가는 성공하고 또 누군가(아마 드러나지 않는 대다수?)는 성공하지 못하는 게 현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지길 기다리거나 무작정 운(運)에 기댈 수만도 없는 노릇이니. 쩝!
앨런 가넷의 생각과 조나 버거의 생각. 얼핏 둘은 달라 보이지만 그 속엔 공통된 한 가지 주제가 있어 보입니다. 바로 세상의 모든 창작과 창작물은 결국 사회적 소산이라는 사실. 창작자의 비범함도 창작물의 인기도 결국 사람들 속에서 만들어 지고 창의성 역시 사회를 벗어나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창의성과 천재는 사회적 현상이다.
https://platanustree.com/books/9788925565163
https://platanustree.com/books/9788954644808